Merry Christmas, Mr. Lawrence

기록한다는 것

by jrajvxjthrkk



별점을 매긴다. 별점은 영화가 남긴 여운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기도 한다. 영화에 대한 분석이나 개인적인 감상은 기록으로 남기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별점은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때 보았던 영화는 간단한 줄거리조차 잊혔다. 어쩌면 나는 영화를 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다시 폰을 들고 앱을 실행한다. 4점. 그래, 하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 별점만이 남아있다.


책장에는 많은 책이 꽂혀있고 앱에는 843편의 영화가 의미 없는 별점을 달고 있지만, 나는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그만큼의 책을 읽고 그만큼의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만을 기억한다. 그 책을, 그 영화를 봤던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류이치 사카모토가 지난 3월 세상을 떠났다. 비록 그의 팬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남한산성과 레버넌트를 통해 그를 존경했다. 다시 그의 음악을 찾아서 들어본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M.A.Y. in the Backyard, 그리고 Germination.


몇 해 전 부슬비가 오던 어느 토요일, 압구정 CGV로 다큐멘터리 코다를 보러 갔었다. 별점도 남겼다. 4점. 뉴욕 거리와 류이치 사카모토를 클로즈업. 역시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에, 어쩌면 비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그의 자서전을 주문했다. 몇 년이 지난 이번 주 출근길에 이르러서야 첫 장을 넘겼고 오늘 2023년 5월 21일 일요일, 그의 1996 앨범을 들으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Merry Christmas, Mr. Lawrence.

Rain.

The Last Emperor.



전장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마지막 황제를 찾아볼 생각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꼭, 별점과 함께 기록도 남겨볼 생각이다. 떠나간 그가 세상에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남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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