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를 처음 공부할 때는 막막했습니다.
이름은 끝도 없이 많고, 비슷해 보이는데 미묘하게 다르고, 커버 범위도 제각각이었습니다. 하나하나 외우려고 할수록 더 헷갈렸습니다.
그래서 방식을 바꿨습니다.
항생제를 “목록”으로 보지 않고, 구조로 보려고 했습니다.
먼저 크게 세 덩어리로 나눴습니다.
β-lactam 계열, 그 외의 그람 음성 커버 약제, 그리고 특수 균종을 담당하는 약제들.
그 다음에는 세대별로, 그리고 커버 범위가 넓어지는 방향으로 다시 정리했습니다.
예를 들어 cephalosporin은 1세대에서 4세대로 갈수록 그람 음성 커버가 확장된다는 흐름을 먼저 이해했습니다.
이렇게 세 개씩 묶어보니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세대는 주로 그람 양성,
3세대는 그람 음성 확장,
4세대는 더 넓은 범위.
단어를 외우는 게 아니라, 이동 방향을 기억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피부 감염, 호흡기 감염, 복강 내 감염처럼 임상 맥락 속에 넣어보니, 항생제가 더 이상 단독 정보가 아니었습니다.
“이 균을 커버하려면 이 계열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인과가 생겼습니다.
결국 제가 한 일은 단순했습니다.
많은 약을 줄인 게 아니라, 묶었습니다.
- 세대별로 묶고
- 커버 범위로 묶고
- 임상 상황으로 묶고
이 과정을 거치자, 개별 약물은 구조 속의 위치를 갖게 되었습니다.
위치가 생기니 기억은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지금은 예전처럼 하나하나 떠올리려 애쓰지 않아도, 구조를 떠올리면 그 안에서 이름이 같이 따라 나옵니다.
항생제를 다 외웠다고 느끼는 순간은,
사실 다 기억했기 때문이 아니라,
구조를 기억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정리본을 만들게 되었고,
나중에는 동기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PPT까지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느낀 건, 설명은 이해를 압축하는 과정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내가 모호하게 알고 있던 부분을 더 명료화 하여 슬라이드 한 장으로 정리하고,
구조를 명확하고도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아래는 제가 강의한 파일의 링크입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boVPckI9mTgu89BxclFlgS9DWYtZg6If/view?usp=share_link
암기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구조 없이 암기하면 흩어집니다.
구조를 만든 뒤의 암기는 오래 갑니다.
항생제 정리는 제게 “구조화의 힘”을 처음으로 체감하게 해준 예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