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청세는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라는 이름의 청소년 인문 토론의 장입니다. 정세청세는 청소년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타인을 존중하는 민주 시민으로 성장하길 꿈꿉니다. 2019년 현재까지 36개 지역에서 2만 4천 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참여했으며, 올해 정세청세에서는 “삶이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도록”이라는 주제로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있습니다.
정세청세 브런치 열번 째 글은 2019 정세청세 총괄기획팀장으로 활동한 배준익 님의 이야기입니다. 청소년 시절 정세청세에서 꿈을 꾸었으며, 청년이 되어 다시 정세청세로 돌아온 이유와 정세청세가 꿈꾸는 정의로운 세상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배준익 님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2018년 1월의 겨울은 유독 추웠습니다. 기상청에서 발간한 『2018년 이상 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약 2~3주 정도의 기간에 관측된 우리나라의 기온은 1973년 이후 최저였다고 합니다. 유달리 추웠던 그 겨울을 저는 선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 겨울이 몸과 마음 모두가 꽁꽁 얼어붙은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4년간의 대학 생활을 마치고, 저는 졸업만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졸업 이후의 삶은 전혀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었죠. 일 년간 준비했던 임용고시에서 떨어져 ‘백수 생활’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시험에서 떨어진 건 분명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게 저를 고통스럽게 한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었어요. 이미 1~2년 전부터, 저는 무기력증과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것에도 감동을 느끼거나 열정을 느끼지 못하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습니다. 학창 시절에도 겪어보지 못한 이런 감정의 이유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제 마음을 읽어내던 중, 제게 떠오른 하나의 단어는, ‘꿈’이었습니다.
한때 저는 꿈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꿈’ 하나만 생각해도 가슴 설레는 소년이었죠. 제 꿈은 교육을 통해, 청소년이 가진 순수한 힘과 열정을 통해 세상을 좀 더 정의롭고 아름다운 곳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런 꿈을 갖게 해 준 공간은 바로 정세청세였죠. 나와 비슷한 눈망울을 가진, 나와 비슷한 감수성과 꿈을 가진 청소년들과 모여 더 좋은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은 저를 설레게 했습니다. 특히 또래의 친구들과 학교와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저는 청소년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나아져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세청세는 제가 힘든 청소년기를 이겨낸 원동력이자, 앞을 바라볼 수 있게 한 꿈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른이 된다면 좀 더 많은 청소년들이 저처럼 아름다운 꿈을 꾸고, 그 꿈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생활, 군대 생활을 거치며 제가 맞이한 세상은, 정세청세에서 꿈꾸던 세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현실은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거칠고 험난하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은, 복잡한 공간이었습니다. 사회는 꿈꾸는 사람을 원하기보다는 순리에 따르는 사람을 원하고, 혹 꿈을 꾸더라도 그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그저 순리대로 흘러가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또, 저는 단지 꿈을 꾸는 사람에 머물러서도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순리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방황하였습니다.
‘나는 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나는 꿈을 이룰 힘과 능력이 있을까? 나는 너무 추상적인 꿈,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그렸던 건 아니었을까? 애초에 내가 이 꿈을 이루고 싶어 하는 게 맞긴 했나?’라는 고민이 이어졌고, 한때 저를 살아있게 했던 ‘꿈’이라는 단어는, 이제는 오히려 제 삶에서 생기를 빼앗아 가는 독극물이 되었습니다. 저는 순수하게 꿈을 꾸며 행복해하는 소년도 아닌, 꿈을 한 단계 한 단계 이루어가며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는 어른도 아닌 애매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던 2018년 1월,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던 저는 무작정 내일로 기차여행을 떠났습니다. 처음 도착한 여수에서는 노래로만 들었던 ‘여수밤바다’를 구경하기도 하고, 여수 오동도에서 나 홀로 산책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도착한 순천에서는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습니다. 그 덕에 방문객이 하나도 없는 낙안읍성에서 깨끗한 눈 위에 제 발자국을 마음껏 새겨놓았죠. 하얀 눈은 제 마음을 어느 정도 정화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여행이 끝나갈 무렵, 제가 마지막 행선지로 선택한 곳은 부산, 인디고 서원이었습니다.
‘정세청세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인디고 서원에 간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저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이 새겨진 공간에 잠시 머물렀다 감으로써 제 마음을 달래고 싶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어렴풋하게, 저는 인디고 서원에서 제 삶을 일으킬 수 있는 근본적인 동력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인디고 서원에 방문했고, 그간 놓치고 있었던 정세청세가 여전히 청소년들이 꿈꿀 수 있는 소통의 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저는 다시 정세청세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정세청세의 구성원이 된 지도 2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2년간 만족스러울 정도는 전혀 아니지만 나름대로 정세청세 활동에 힘을 썼습니다. 누군가 정세청세 활동을 통해 삶의 활력과 열정을 완전히 되찾았냐고 묻는다면, 그렇게 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정세청세 활동으로 인해 이전에는 없었던 고민이 생겨나고, 더 많은 어려움과 마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정세청세는 자발적으로 모인 청소년들의 인문 토론 공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세청세가 갖는 힘이 크고 순수한 것이죠. 누가 시켜서 오지 않고, 어떤 조건도 붙이지 않고, 어떤 직관적인 이득도 바라지 않은 채, 그저 더 좋은 세상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그 가치를 삶에서 실현해 보려는 꿈을 가진 청소년들이 만드는 자리이니 말입니다. 청소년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발적인 동력은 정세청세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절대 포기하지 않은 원칙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에게 공부하라는 요구, 시험 잘 보라는 요구는 상당히 강제적이고도 의무적입니다. 그 점이 청소년들을 불행에 빠뜨리는 원인이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 또한 입시 공부입니다. 정세청세의 구성원들 역시 여기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정세청세의 청소년들은 자신에게 행복과 보람을 주는 것은 입시 공부가 아닌 정세청세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충분한 시간을 정세청세에 투자하지는 못합니다. 주말에도 학원에 가야 하는 청소년들이 많기 때문에, 정세청세 회의를 위해 잠시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루에 3~4시간만 잘 수 있는 강행군 속에서도 짬을 내어 회의에 왔다는 청소년의 말을 들으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문제집을 푸는 와중에 정세청세 준비를 위해 따로 책을 읽고 영상을 찾아보는 것도 적지 않은 부담이죠. 막상 그렇게 정세청세를 개최해도, 토요일 반나절을 인문 토론에 쏟으려는 청소년은 소수이기 때문에, 만족할 만큼의 청소년 참여자를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저히 행사를 준비할 시간이 나지 않아서 결국 행사 개최를 포기하거나, 행사 참여를 신청한 청소년이 한 명도 없어서 기획팀원들끼리 조촐한 행사를 여는 경우도 생기곤 하죠.
성인이 되어서도 정세청세에서 활동하는 총괄기획팀원들의 여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학생에게도 학업의 무게는 그리 가볍지 않습니다. 대학 과제 때문에 밤을 새워야 하는 경우도 있죠. 게다가 성인이 되면서 치솟은 생활비를 해결하고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면, 하루 중 정세청세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정말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저처럼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이 되면, 이 시간에 취업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내밀곤 합니다. 청소년에게도, 그들과 함께하려는 성인에게도, 현실의 무게를 견뎌내면서 정세청세 활동을 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2년 동안, 힘이 든다는 이유로 정세청세 활동을 도중에 그만둔 기획팀원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모임이니 활동을 중단하는 것도 온전히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는데 말이죠. 힘이 들고 부담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정세청세를 떠나지 않는 이유, 그건 결국 ‘꿈’이 아닐까요? 정세청세 토론에서, 모든 청소년은 얼굴에 진지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평소에는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펼쳐 놓지 못했던 자신의 이야기들, 바보라고 놀림 받을까 봐 풀어놓지 못했던 자신의 꿈을 정세청세에서는 마음껏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거기에 대해 반박하거나 태클을 걸지 않습니다. 심지어 서로 반대되는 생각을 이야기하는 경우에도, 서로 비난하거나 표정을 굳히지 않습니다. 정세청세라는 따뜻한 공간 안에서, 청소년들은 온기를 잃어가는 자신의 꿈에 다시금 따스한 숨을 불어 넣습니다. 마치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꿈은 참 다양합니다. 누군가는 여성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꿈꾸고, 누군가는 동물들의 생존권이 보장받는 세상을 꿈꿉니다. 또 누군가는 범죄자가 강력히 처벌받음으로써 좀 더 안전한 사회에서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누군가는 가정 배경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지 않는 세상을 꿈꿉니다. 정세청세의 구성원들이 꾸는 꿈, 상상하는 세상은 아직 오지 않은 세상입니다. 이 꿈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정세청세에서는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꿈들의 밑바닥에는 공통적으로 인간에 대한 ‘따뜻함’과 ‘사랑’이 녹아 있습니다. 정세청세는 청소년들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꿈을 꾸도록 돕는 공간입니다.
2019년을 보내고 2020년을 맞이하면서, 저도 제 꿈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내년에는 경제활동을 시작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있습니다. 더불어, 2020년에도 정세청세의 구성원으로서 활동하는 게 저의 작지 않은 꿈입니다. 2019년을 시작하면서, 저는 정세청세 기획팀원들에게 “떠나고 싶지 않은 정세청세를 만들고 싶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에 저도 그랬지만, 많은 정세청세 기획팀원들이 1~2년 정도 정세청세를 경험한 뒤, 각자의 자리로 흩어지고 맙니다. 아마 그만큼 현실적인 문제들이 삶 깊숙이 자리하기 때문이겠죠.
물론 언제까지나 정세청세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특히나 청소년 인문학 모임이라는 특성상, 성인으로서 정세청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 2020년에도 정세청세 기획팀원 활동을 계속할 것인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습니다. 지금의 제게 그저 한없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꿈을 꾸는 게 맞는 일인지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정세청세를 떠난다면, 저는 아마 더 이상 꿈을 꾸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꿈’이 여전히 저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게 만들고,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 또한 ‘꿈’이 아닐까요. 정세청세가 제게 준 새로운 고민과 어려움은 결국 제가 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지점입니다.
2020년, 정세청세는 언제나처럼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꿈을 꿀 것입니다. 2019년에 새로운 기획들과 시도들이 있었던 것처럼, 2020년에도 새로운 기획들과 시도, 새로운 꿈이 생겨나겠죠. 2019년을 함께 한 정세청세의 구성원들, 이전에 정세청세를 경험한 사람들, 나아가 아직 정세청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함께 2020년 정세청세에서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