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딱 좋겠어!

책의 바다에 치는 밀물

by 지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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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의 독서 소모임에서 독서 모임 플랫폼, 집 근처의 서점까지 여러 곳을 거쳤지만 그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했다. 대학의 경우, 졸업하면서 자연스레 멀어진 것이었지만 그 외에는 내 의지가 아니었기에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정 좀 붙이려 하면 사라져 버리는 기묘한 현상에 낙담해 있던 중 인스타그램에서 한 서점의 게시물을 보았다. 연남동 끝자락에 위치해 있는 파란 책 모양 로고가 아름다운 서점, 책방 밀물의 조조 독서모임 모객 글이었다. 토요일 오전 10시에 모여 각자 가져온 책을 한 시간 반 동안 읽고 30분에서 한 시간가량 읽은 것을 나누는 모임이었다. 모임 책이 따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 하루 짜리 모임이라는 점에서 부담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방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연남동의 끝과 성산동의 초입에 위치한 책방 밀물에 가기로 했다. 이때는 알지 못했다. 이 골목을 매일같이 드나들게 될 줄은.


첫 모임에 내가 들고 간 책은 비엣 타인 응우옌의 소설 『동조자』였다. 수많은 문학상을 받았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박찬욱 감독이 영상화한다는 소식 때문에 골랐던 책이었다. 600페이지가량의 두꺼운 책이라 그런지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기에 마음잡고 읽자는 생각으로 모임에 들고 갔다. 처음 방문한 서점의 분위기는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아늑했다. 책을 읽고 만나는 독서모임은 해보았지만 모임 공간에서 책을 읽는 것은 처음이었다. 내 곁에 다른 누군가가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나 역시 집중해 독서하게 됐다. 첫 모임에서 다른 사람들이 어떤 책을 가져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느낀 감정이 꽤 좋았던 것임은 분명히 기억한다. 그 후로도 계속해서 책방밀물을 방문하였으니 말이다.

그 후로 같은 모임에 한 번 더 나갔고 책을 구입하러 방문하기도 했다. 물론 책방지기님이 나를 기억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모든 손님에게 그러하듯,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즈음, 서점을 팔로우하면서 관련 소식을 받아 보고 있던 중 책방밀물에서 외부 행사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보았다. 마포 아트 센터 앞에서 여러 서점이 모여 각자가 선정한 도서를 판매하는 행사였다. 시간 부자였던 나는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굳이 그 행사를 찾아갔다. 여러 서점의 부스를 방문하다 책방밀물의 부스를 마지막으로 방문했다. 서점지기님은 내 이름을 부르며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고 나를 반겨주었다.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다. '아, 이 서점이 망하기 전까진 계속 가겠구나!' 하고.

책방밀물에 꾸준히 드나들 수 있었던 것은 공간에 대한 애정과 책방지기에 대한 신뢰가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또 하나 중요한 점이 있다. 책과 관련된 다양한 기획들 덕분이다. 온라인으로 하는 책 읽기 / 글 쓰기 인증 모임부터 오프라인으로 하는 다양한 독서모임들까지.


여러 기획들 중 내가 가장 먼저 참여했던 것은 '만취백일장'이라는 행사였다. 책방밀물뿐 아니라 같은 골목을 공유하는 카페 멜롭스, 그로서리 겸 레스토랑 플라스틱가드너, 공유직업실 허송세월, 네 작은 가게들이 합심하여 만든 나름 대규모의 기획이었다. 참가비를 내고 신청하면 반팔티 2개와, 각 가게의 굿즈를 증정했고 샹그리아와 과자를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었다.


행사는 백일장이라는 이름답게 글 쓰기와 관련된 여러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먼저, 백일장의 주제는 동네/골목이었다. 나는 '내가 사랑한 동네'를 주제로 한 편의 에세이를 제출했다. 강원도 홍천의 연봉리, 부산의 장전동, 서울의 신림동과 성산동을 적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전형적인 글을 쓰지 않았나 싶어 아쉽기도 하다. 글 쓰기 이후에는 각 가게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참여하고 싶은 곳을 고르면 되었는데, 책방밀물에서는 강병융 작가의 문학 쓰기에 대한 강연이 있었고, 허송세월에서는 노아 바움백의 <오징어와 고래> 상영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둘 중 하나라도 참여하는 게 맞지만 당시의 나는 아무것도 신청하지 않았다. 멜롭스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만 하였다. 다행히도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어 함께 대화를 하며 방문해보지 못했던 허송세월과 플라스틱가드너에 대한 얘기를 들었고 방문을 다짐하게 되었다. 이 행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작은 가게들이 모여 큰 행사를 했다는 점도 있지만 이 날을 계기로 내가 책방밀물뿐 아니라 주변의 다른 가게들까지 사랑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서점에 대한 애정이 동네에 대한 애정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성산동이란 동네에 대한 애정이 커진 만큼 책방밀물에 대한 애정도 더욱 깊어졌다. 이는 참여하는 독서모임에의 변화를 가져왔다. 비정기적으로 진행되는 하루 짜리 모임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한 달 단위로 참여하는 좀 더 긴 호흡의 모임들에도 신청하기 시작했다. '심야 작업실'과 '느슨한 일요 독서회'가 그것이다.

심야 작업실은 수요일 혹은 목요일 중 하루를 선택하여 저녁 7시 반부터 10시까지 책방에 모여 하고 싶은 글 작업을 하는 모임이었다. 몇 개월간 심야작업실에 참여하며 시나리오를 쓰기도, 소설과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 다여섯 명의 인원이 모여 글을 썼지만 각자 작업만 할 뿐 대화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고 편안했다. 심야 작업실을 그만하게 된 이후, 나와 같은 공간에서 작업을 했던 사람 중 조해진 소설가가 있었다는 말을 듣고는 조금 나대볼걸 하고 후회했지만 말이다.


느슨한 일요 독서회는 말 그대로 일요일에 느슨한 마음으로 모여 독서를 하고 나누는 모임이었다. 이 독서모임은 분야가 정해져 있었는데, 인문·사회 도서를 위주로 읽는다는 규칙이었다. 평소 문학을 위주로 읽었지만 인문 계열 책에 대한 관심도 컸기에 이 분야의 책들을 조금 더 많이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이 모임은 책방지기님이 아닌 J님이 진행했다. J님은 주로 철학 서적을 읽었다. 철학 입문서나 교양서가 아닌 철학자의 한 이론을 다룬 두꺼운 책이었다. 이 독서모임의 원년 멤버로 보이는 P님도 범상치 않았다. 읽는 책도 특색 있었지만 그 설명이 남달랐다. 책을 자신의 것으로 완전히 흡수하여 말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녀가 혹시 교수님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독서모임에서는 나 역시 범상치 않은(?) 멤버로 인정받았다. 매주, 매달 모임에 가져오는 책이 다양하고 신선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느슨한 일요 독서회에서 나는『먹지 못하는 여자들』, 『한자 줍기』, 『문예 비창작』,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헤테로토피아』, 『교정의 요정』등의 책을 읽었다. 이 중에서 한 권, 아니 하나는 그게 무엇이든 너무 정이 없으니,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권을 골라보자면 『문예 비창작』과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를 꼽고 싶다.

『문예 비창작』은 문학에서 보수적으로 사용되는 인용과 차용, 심지어 도용까지 더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비독창적성, 비창조적 글쓰기를 주장하는, 기존의 문학적 글쓰기 책과는 다른 주장을 하는 도서였기에 기억에 남는다. 이 주장에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새로운 생각을 해볼 수 있던 점만으로도 읽어볼 가치가 있던 책이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혼자는 절대 해볼 수 없던 생각이었다. 일요 독서회 멤버들 역시 이 생소한 주장에 관심을 보였다. 『문예 비창작』은 책방밀물에 방문해 느슨한 일요 독서회에서 무얼 읽을지 고르던 중 발견한 책이었는데, 제목이 적혀있지 않은 실험적 표지와 듣도 보도 못한 주장을 하는 서문에 매료되어 고른 것이었다. 이것이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면 하루 만에 오는 시대에 직접 서점에 방문에 책을 사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알지 못했던 책을 발견하는 재미. 그 서점에 방문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책을 직접 집어보고 만져보고 살펴보고 읽어보는 재미.

그다음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를 읽었다. 한 북튜버가 추천하는 영상을 보고 궁금해져 고른 책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는 제목 그대로,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 친구와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감상하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미술 작품을 보는가?라고 묻는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이 책 역시 새로운 관점을 전달해 주는 책이었다. 누구든 각자의 방법으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에겐 장애인 상태가 누군가에겐 일상의 상태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문학을 가장 많이 읽는 독자이기에 사와 소설 등을 통한 깨닫는 은은한 배움이 가장 효과적이고 깊다고 생각해 왔다. 직접적으로 어떤 가르침을 주지는 않지만 문학적인 문장을 통해, 이야기와 인물을 통해, 은유와 상징을 통해 스며들게 하는 배움이 최고라고 여겨왔다. 지금도 문학만이 전달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느슨한 일요 독서회를 통해 배웠다.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듯이 인문학 도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과학책도, 경제경영서도, 자기계발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취향은 어쩔 수 없지만 편식이 되지는 않도록 잘 조절하고 싶다. 건강한 독서를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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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달간 책방밀물에 꾸준히 방문했다. 모임이 있어서, 책 구경을 하려고, 때로는 그냥 수다를 떨러 가기도 했다. 그사이 수많은 책을 샀고 여러 독서모임에 참여했으며 많은 북토크를 들었다. 책방밀물은 소설에 가장 집중하는 서점이므로 독서모임에서 나는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 『멜라닌』, 『간단 후쿠』와 같은 소설을 주로 읽었고 소설가들의 북토크에 주로 참여했다. 서점을 자주 드나들게 되면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들과 친구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이곳은 내게 서점일 뿐 아니라 쉼터이자 학교 그리고 친목의 장이 되었다.


책방밀물이 단순히 서점을 넘어 안식처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이런 화합의 모습 덕분이었다. 주변의 가게들과의 화합, 서점 손님들끼리의 화합 그리고 서점과 서점의 화합까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책방밀물이 있는 연남동-성산동 쪽에는 서점이 아주아주 많다. 도보 10분 거리 내에 서점이 대략 다섯 개는 있다. 내가 만약 이런 곳의 서점 주인이라면 경계가 됐을 것 같다. 나의 고객이 다른 서점에 가지 못하게 신경 쓰지 않았을까? 하지만 내가 아는 이곳의 서점들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책방밀물과 무슨서점이 그랬다.


두 서점은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비슷한 시기에 오픈한 가게다. 큐레이션에 열심이고 손님들에게 친절한 두 서점에 차이가 있다면 책방밀물은 소설을 중심으로, 무슨서점은 에세이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이다. 각자의 특색 정도로 볼 수 있는 이 차이를 두 서점은 하나의 북클럽으로 엮어냈다. '서랍에 여름을 넣어두었다'와 '서랍에 겨울을 넣어 두었다'가 그것이다.

이 북클럽은 24년 여름과 25년 겨울 각각에 한 작가의 소설과 에세이를 한 권씩 읽고 나누는 모임이다. 여름에는 이승우 작가의 소설 『생의 이면』과 에세이 『소설가의 귓속말』을, 겨울에는 권여선 작가의 소설 『푸르른 틈새』 그리고 에세이 『술꾼들의 모국어』를 읽었다. 온라인(인스타그램 라이브)으로 함께 정해진 분량까지 독서를 하고 조금의 감상을 나눴다. 몇 주간 두 권의 책을 함께 읽고 대화하는 경험은 꽤나 재미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독서하는 경험은 있었지만 한 책의 같은 부분을 동시간에 읽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시간 안에 정해진 분량을 읽어야 한다는 조급함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더 깊고 즐거운 감상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기에 평소보다 더 집중해 읽을 수 있었다.

『생의 이면』과 『푸르른 틈새』는 두 작가의 첫 작품이면서 단편이 아닌 장편이라는 특이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어린 시절을 거쳐 대학생이 된 주인공을 다룬다는 공통점도 있다. 함께 라이브에 참여한 멤버들은 『생의 이면』의 부길과 『푸르른 틈새』의 미옥에 흠뻑 빠져들어 때로는 자신을 투영하면서, 때로는 쟤는 왜 저래 하며 몰입의 독서를 했다.

온라인 모임이 끝나고 나서는 오프라인 모임을 가졌다. 두 모임 모두 두 번씩 시간을 가졌다. 두 계절의 첫 번째는 모두 일종의 시험 형식으로 진행됐다. 서점지기들이 『생의 이면』영역과 『푸르른 틈새』영역으로, 소설을 기반으로 간단한 문제들을 만들었고 이를 함께 풀어보는 것이었다. '서랍에 여름을 넣어두었다'의 두 번째 모임으로는 그즈음 출간되었던 이승우 작가의 신간, 『고요한 읽기』 북토크를 진행했고 '서랍에 겨울을 넣어두었다'에서는 두 번째 모임으로 '사연 있는 포틀럭 파티'를 진행했다. 각기 다른 매력으로 두 모임 모두 충만한 시간을 가졌다.

주력 분야가 다르다지만 어찌 되었든 '책'이라는 같은 상품을 파는 두 곳이 경쟁자가 아닌 동료가 된 것은 다시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두 서점은 '겹겹이 하나가 되는'이라는 황인찬, 전욱진 시인의 미공개 시를 발표하는 프로젝트, 3주년을 기념하여 벌인 대형(?) 프로젝트 '우리가 사랑한 마음들'까지 많은 것을 함께했다. 나와 같은 길 위에 서 있는 사람을 보았을 때, 그보다 빠르게 뛰려 하는 것이 아닌 함께 뛰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요즘에 참 중요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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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밀물은 여러 사람의 진심이 담긴 공간이라는 점에서 오래오래 살아남았으면 하는 곳이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곳을 거쳐온 입장에서 이곳이 곧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2년간 유심히 봐왔기에 알 수 있다. 이곳이 쉽게 없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밀물의 책방지기님은 일 벌이기를 참 좋아한다. 일하기 싫다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 걱정투성이지만 벌인 일은 꽤 잘 해내고 무엇보다 인스타그램에 이를 감각적으로 공유한다. '아주 커다란 맥주잔에 책 마시기'란 이름의 독서모임과 '연말을 촉촉하게(독서 결산)'가 그 예일 것이다.


'아주 커다란 맥주잔에 책 마시기'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책맥 모임이다. 김은지 시인의 시집 『아주 커다란 잔에 맥주 마시기』에서 가져온 이름으로 책방에 모여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였다. 늦은 밤, 서점에 모여 맥주와 과자를 먹으며 각자 가져온 책이나 제공받은 『아주 커다란 잔에 맥주 마시기』혹은 서점의 샘플 도서를 읽었다. 조금 취기가 오른 채로 각자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꽤 즐거웠다. 맥주 탓인지 기억력의 문제인지 두세 명을 제외하곤 어떤 책들을 읽었다고 했는지 벌써 잊었지만 그 당시엔 책 소개를 꽤 흥미롭게 들었다.


'연말을 촉촉하게'는 연말을 마무리하며 한 해를 정리하는 행사였다. 함께 영화 한 편을 보고 편지를 써보는 '촉촉한 편지 쓰기'와 한 해 동안 읽은 책을 정리하는 '촉촉한 독서 결산', 그리고 한 해를 키워드별로 정리하는 '촉촉한 연말 회고'까지 세 개로 나누어 진행된다.

나는 2024년도 '촉촉한 독서 결산'에 참여했다. 일 년 동안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부터 시작해 가장 좋았던 책을 뽑는 시간까지 가졌다. 난 총 65권을 읽어 모임에서 가장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이 되었다. 많은 종의 책을 읽었다는 사실에 뿌듯해할 시기는 지났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024년, 일 년간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도서로는 조용미 시인의 『초록의 어두운 부분』을 골랐다. 당연히 소설을 고를 것으로 생각했을 터인데 의외의 선택에 다들 신기해했다. 그동안 여러 시집을 읽으며 좋은 시를 여럿 발견했지만 시집 전체가 통으로 좋은 경험은 처음이었기에 『초록의 어두운 부분』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나 홀로 어떤 책이, 영화가 좋았는지 연말 결산을 간소히 해보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만나 나누기는 처음이었다. 다른 이들의 올해의 책에 영업을 당하고 나 역시 『초록의 어두운 부분』을 영업하며 우리는 책으로 취향을 공유했다. 머쓱하게 인사하던 사이에서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2025년도 '촉촉한 독서 결산'을 앞두고 있다. 며칠 남지 않았는데 어떤 책을 올해의 책으로 가져가야 할지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가장 좋았던 책이 있긴 한데 자꾸만 다른 책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참 즐거운 고민이다.


책방밀물에서 내가 구한 것은 단순히 독서모임을 할 장소나 사람이 아니다. 그 이상의 것, 함께 읽고 나누는 것의 즐거움부터 보다 다채로운 독서모임 세계로의 확장 그리고 책으로 모두가 하나 되는 느낌까지. 책으로, 독서모임으로 느끼고 배울 수 있는 폭넓고 깊은 경험을 나는 이곳, 책방밀물에서 했다.

부디 이 공간이 오래오래 살아남아 더 많은 책을, 모임을, 경험을 내게 안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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