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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g Nov 17. 2022

오무라이스

생각해 보면 내가 처음으로 ‘오무라이스’라는 단어를 들은 것은 초등학교 4학년 여름이었다. 아버지가 도시락을 챙겨 이른 아침 출근을 하시고 아침잠 많은 나까지 일어나 학교에 가면 그제야 한숨 돌리신 어머니가 즐겨 보던 아침 프로에서 우연히 떠들어댄 ‘오무라이스 레시피’가 그 시작이었다. 지금이야 그 병아리색의 따끈하고 폭신한 계란 이불을 덮은 짭짤하고 감칠맛도는 볶음밥이 그리 보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멋을 잔뜩 낸 식당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맛까지 훌륭한 분식집에서도 쉽사리 볼 수 있는 메뉴가 아닌가. 하다못해 초록창에 ‘오무라이스 전문점’을 찾아보면 만원 안팍의 훌륭한 ‘오무라이스’ 전문점이 산개해 있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적. 90년도에는 적어도 그랬다. 외식이란 으레 무언가 축하할 일이 있는 날. 생일, 혹은 내가 시험을 잘 보았다던가 중요한 손님이 오시면 하는 것이었기에 ‘오무라이스’라는 어쩐지 심심하면서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를 선택할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서 엄마가 직접 하기에는 퍽 수고로운 것이어서(적어도 우리 이여사에게는 그랬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여름. 아침 프로에서 떠들어 댄 ‘채소 먹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해주면 제격이라는 오무라이스 레시피’가 아니었다면 나는 더 늦은 나이에 오무라이스를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뇌리에 각인되었던 것과는 달리 처음 먹었던 오무라이스는 영 맛이 없었다. 우유를 넣어 폭신폭신 말랑말랑한 계란은 우유가 없는 냉장고 사정 때문에 우유 대신 맹물을 타 밍밍하고 퍽퍽하기까지 했으며 그레이비소스 대신 넣었던 다시다 때문에 볶음밥은 짜고 느끼한 맛이 가득했다. 하기야, 엄마도 당시에 ‘오무라이스’를 먹어 본 적이 없었으니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오무라이스’라는 것이, 어린 내 뇌리에 콕 하고 박힌 것을 보면 그날 내가 느낀 것은 후라이팬을 두 개를 씻어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편식하는 딸내미를 위해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은 엄마의 애정이 느껴져서가 아니었을까.     


아무튼 서른 네 살. 이제는 두 아들의 엄마가 된 나는 지금도 종종 ‘오무라이스’를 만들기 위해 주방에 선다. 물론, 내가 먹기 위해서는 아니다. ‘오무라이스’라면 쌍 따봉을 날려주는 두 아들과 남편 때문에. 이십 년 전 엄마가 해준 것에 비하면 훨씬 더 발전된 맛이다. 나는 어떻게라도 야채를 먹이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진 엄마가 아니기에 적당히 햄도, 양파도 적당히 넣어 볶음밥을 만드니까. 적어도 내 주방에는 그레이비소스는 없지만 병조림으로 된 토마토 스파게티소스가 언제든지 있으니까. 그리고 엄마 심부름이라면 군말 없이 움직여주는 큰아들이 있으니까. 물론 제법 번거롭다. 후라이팬에 찬밥과 적당히 야채를 넣어 착착 볶아주는 볶음밥 대신 계란을 곱게 풀어 밥 위에 덮어줘야 하는 수고로움과 두 배로 늘어난 설거지까지 생각하면 나도 가끔은 그냥 김치볶음밥이나 먹을래……?하고 아들의 눈치를 살피지만, 아무렴 어떨까. 폭신폭신한 계란과 짭짤하고 감칠맛 나는 볶음밥을 한 술에 얹어 입에 ‘와앙’하고 밀어 넣는 모습을 보노라면 웃음이 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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