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in Oct 19. 2021

너의 표정, Your Faces

영화감독 박찬욱의 첫 사진전 

2021.10.09

너의 표정, Your Faces

KUKJE GALLERY BUSAN 국제갤러리 부산 


이번 박찬욱 감독의 사진전 <너의 표정>은 부산 국제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 국제 갤러리가 아니니 주의!) 나도 당연히 서울 국제 갤러리에서 하는 줄 알았는데, 부산이어서 부산국제영화제를 간 김에 시간을 아껴 다녀왔다. 국제 갤러리 부산점은 부산 망미동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F1963 내부에 위치해있다. 국제 갤러리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 공간들, 카페, 식당 등이 있어 부산 여행 중이라면 색다른 여행 코스로도 추천한다. 그리고 우연일지는 몰라도, 10월에 시작하는게 부산국제영화제 시점이랑도 맞물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찬욱 감독의 사진전? 


맞다, 우리가 아는 그 박찬욱 감독이.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등의 명작을 남긴 한국 대표 감독 박찬욱 감독이 맞다. 

박찬욱 감독은 사실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사진동아리에서 작업하고 세계 각지에서 영화 관련 작업을 할 때도 틈틈이 사진 촬영 작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동생 박찬경 작가와 함께 프로젝트 그룹 '파킹 찬스' ( 나중에 파킹찬스에 대한 스터디도 해봐야겠다.)를 만들어 2018년에는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사진전을 열었고, 서울 용산 cgv 아트하우스에 있는 박찬욱 관에서 최근 작 사진들을 번갈아 선보이기도 했었다. 


더불어, 영화 <아가씨> 개봉 이후 영화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모아 사진집 <아가씨 가까이>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 사실 아버지께서 취미로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잘 찍으셨다.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졌고 아버지의 아사히 펜탁스 카메라를 갖고 놀았다. 대학 진학하면서 영화과를 가고 싶었지만 감독 일이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다른 전공을 택했는데 영화 동아리가 없어서 사진 동아리에 가입하게 됐다. " 

"미술도 하고 싶고 영화도 하고 싶었는데 이도 저도 안되니까 비슷한 매체인 사진에 끌렸다. 거리를 다니면서 소위 스트릿포토를 많이 찍었다."  _ 박찬욱 

사실, 사진은 영화의 연장선상이거나 혹은 그 먼저이다.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서 동시대 수많은 영화인들에게 사진은 진지한 취미로 여겨지곤 했다. 

크리스 마르케는 사진을 재료로 영화를 만들기도 했고,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는 자신의 영화 세계를 폴라로이드로 농축하여 담아내기도 했다. 

래리클락은 10대들의 서브 컬쳐를 주제로 사진을 찍다가 영화 <키즈>를 만들기도 했다. 




너의 표정. 너는 누구인가. 

영화 감독으로서가 아닌 사진가로서의 박찬욱은 사람을 넘어서 모든 것에서 서사와 표정을 찾는 관찰자이다. 자연과 인공물들이 우연과 필연을 겹쳐 만들어내는 여러 양상들 속에서 인간의 표정 혹은 '존재'의 표정을 찾아 포착해낸다. 이러한 포착들은 인간, 비인간을 넘어서 존재 그 자체에게 깊이 공감하고 정서를 투영하는 과정을 만들어낸다. 

" 여기 스토리텔링의 구속에서 풀려난 이야기꾼이 있다. 카메라를 메고 혼자 걷는 박찬욱에게는 수정해야 할 콘티도 상태를 살펴야할 배우도 감독의 승인을 기다리는 소품도 없다. 대신 그는 천천히 움직이면서 발견을 기다린다. 진짜와 가짜, 자연과 인공, 죽은 것과 산 것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돌연 미소를 짓거나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는 순간을 고대한다. 여기서 '연출'은 어느 때보다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난다. " _ 전시 서문 (김혜리) 

 

우리는 종종 살아있지 않은 것에서 연민과 뭉클함을 느끼기도 하니까. 오랫동안 함께 지냈던 자전거를 버리지 못해서 울던 나를, 내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나의 첫 번째 책상을 떠나지 못해 그에게 편지를 썼던 8살의 나를 기억한다. 박찬욱은 그러한 세계에서 자연을 연출도구로 스스로의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모든 존재'를 자신의 캐릭터로 이끌어들이는 과정을 사진을 통해 구현한다. 



단순히 오래 지냈던 물건 뿐만 아니라 물성을 지닌 모든 것에는 표정이 있다. 그것이 우리와 교감하는 순간이 1초이든 영원이든 말이다. 박찬욱은 그저 지나갈 수 있는 순간들에 단순히 '기록하고 싶다.' 라는 충동성을 넘어서 그들이 품고 있는 서사와 감정에 교감하기를 제안한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왔다고 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고 미묘한 특성이 표정과 감정이라면, 자연이라고 혹은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물이라고 그런 특성을 안 지니고 있을까. 


" 사진가 박찬욱에게 세계는 표정의 총합이다. 자연과 인공물에서 발견되는 색채, 형태, 빛, 구도 등의 조형의 기호들은 그의 사진에서 모종의 성정을 띤다. 사물과 표정은 어디에서든 이목구비와 사지에 해당하는 형상을 무의식적으로 찾아내는 우리의 본능을 통해 완성되기도 하고, 하나의 대상을 시지각의 초점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다른 형상으로 인식하는 게슈탈트의 전환으로도 발생한다. " _ 김혜리 (전시 서문) 


" 사진은 아무에게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고, 오늘 카메라를 들고 나갔는데 아무것도 못 찍고 돌아와도 오늘 못 찍으면 내일은 뭔가 맞닥뜨리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어 참 좋다. 그렇다고 내가 사진을 가볍게 생각하고,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취미로 여기냐면 그건 절대 아니다. 사진은 영화보다 오히려 내 일상에 더 밀착해 있다. 영화는 날 잡아서 각본 쓰고 편집하지만 카메라는 내 몸 가까이에서 떨어진 적이 없다. 카메라를 든 나는 어디를 가도 촉각이 곤두서 있고 뭔가를 만나 놀랄 준비가 되어있다. " 

사실, 전시 제목이 <너의 표정>이지만 위의 서술한 것과 같이 우연의 표정들을 마주하는데 재미가 있는 사진들도 다수 있는 반면, 박찬욱 개인의 '순간적 놀라움'이 담긴 사진들도 다수 있다. 그러니까, 이번 사진전의 작품들은 그가 만들어낸 영화들과 같이 세밀한 기획과 연출하에 한 가지 주제를 잡고 찍어낸 것들이 아닌, 박찬욱이라는 예술적 자아를 가진 사람이 일상 속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한 시선으로 포착해낸 경이의 순간들이 담긴 사진들을 한데 묶어낸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이번 개인 전시에 걸린 작품들은 영화 감독 박찬욱의  필모그래피 기준으로 시기를 나눈다면 2013년의 <스토커> 작품부터 현재 제작 진행 중인 <헤어질 결심>을 만드는 기간까지의 사진들이다. 이러한 시기적 시점은 박찬욱의 사진 '매질' 선택에서도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2013년 이전에는 필름과 35mm 카메라, 중형 카메라까지 다양한 아날로그 카메라들을 활용했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 걸린 2013년 이후 작품들의 특징은 모두 '디지털' 사진이라는 점이다. 사실 디지털 카메라는 더욱 발전한다는 의미가 역설적으로 필름카메라의 성질을 디지털로 구현한다는데 의미가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관계가 변증적이라는 점도 참 매력적이다.




박찬욱과 사진이라는 두 가지 존재 자체에서 오는 아우라

 

박찬욱 감독은 이번 전시에서 배우, 인물 사진 제외, 미술간 연작 제외, 절 사진 제외, 아가씨 사진 제외하고 풍경과 정물을 위주로 배치했다. 아름다운 절경 등도 보기 어렵다. 감독의 말로는 '이런 걸 왜 찍었을까?' 하는 의문을 들게 하는 작품들 위주로 전시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진 자체로 보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작품들로. 


사실 이런 질문은 '박찬욱'이란 사람이 갖고 있는 문화적 권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고, 그걸 부정하거나 비판할 수는 없다. 그가 영화로 보여준 세계가 많은 사람들에게 대중적인 동시에 예술적으로 통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 이게 왜 전시장에 걸려있지?' 라는 의문이 '이상하다' 거나 '가치가 없다' 라고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박찬욱 감독이니까 무언가의 의미가 있겠지.' '그의 시선이라면 이상하더라도 들여다볼만하다.' 라는 반응을 이끌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것 자체가 '사진가'로서의 존재감을 만들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박찬욱' 개인이 갖고 있는 특성 때문에 사진을 한 번 볼 것을 여러번 지켜보고 서있게 만드는 것도 맞다. 이것 자체가 작가가 지닌 힘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작품이 작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대중적으로 그의 필모를 알고 그의 스타일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작품을 들여다보는 태도가 반사적으로 고쳐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전시를 방문할 예정이라면 혼자보다는 동행과 함께 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의 사진 한장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굉장히 다양하기 때문이다. 각자의 상상력을 강력하게 자극하는 사진들로 다른 사람 눈에는 이게 어떻게 보이는지 서로 이야기하면서 보면 훨씬 오래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전시인 것 같다. 




사진의 태도는 사진가가 만드는 것. 


개인적으로 나도 디지털 카메라와 필름 카메라를 소지하고 다니며 마냥 놓치기 아까운 순간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휴대폰 카메라와 달리 수동 카메라와 자연이 그 단 1초에만 만들어내는 순간적인 우연은 단순히 포착이 아니라 세상 운명이 만들어낸 연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박찬욱의 <너의 표정> 전시가 넓게 주는 가치는, 이러한 풍경 스냅 사진에도 작가의 태도적 의도만 명확하다면 충분히 그 찰나의 연출 자체가 임팩트 있는 예술성을 발현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만들어내는 것이 익숙한 세계에서 우연 속에서 만들어진 것의 특성을 찾아내는 것이야 말로 인간 -비인간 -인간 -비인간의 변증법 그 자체를 시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사진들이 더욱 사람들에게 분명하고 강력한 메시지를 던질만큼이 되게 하려면 사진가인 '나의 존재' 자체가 더 깊어져야 한다는 배움과, 

내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태도가 틀리지 않았음을 위로 받는 전시였다. 

내가 존경하는 씨네 21의 김혜리 기자가 이번 전시에 관한 인터뷰를 도맡고, 전시 서문을 작성해서 박찬욱의 볼거리 뿐만 아니라 김혜리의 읽을거리 또한 풍부한 전시이다. 


김혜리 기자와의 인터뷰도 깊이 읽어볼만한 텍스트이기 때문에 첨부한다. (영상도 있다.) 



http://m.cine21.com/news/view/?mag_id=98586


http://m.cine21.com/news/view/?mag_id=98587



https://www.youtube.com/watch?v=vAjJcdLTDkg




매거진의 이전글 내 안에는 내가 너무도 많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