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 떠나기 전 알아야 할 감정 수업
가족여행 떠나기 전 알아야 할 감정 수업
-가족여행을 통해 드러난
부모의 욕망과 회복의 심리학-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베네치아 거리는 돌바닥과 다리, 좁은 골목으로 가득했습니다. 우리가 묵을 에어비앤비 숙소도 3층(한국식으로는 4층)에 있었기에, 큰 캐리어는 버스 정류장 근처 짐 보관소에 맡기고 3박 4일 치 짐만 따로 챙겼습니다.
숙소로 향하면서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가는 관광객들을 보며, 우리 가족은 “힘 빼지 않고 유능하게 여행을 시작했다”는 뿌듯함에 들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숙소 현관 앞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호스트가 알려준 비밀번호는 맞는데,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몇 번이나 다시 시도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땀은 흐르고, 피로와 초조가 겹치면서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졌습니다. “혹시 오늘 일정이 다 꼬이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까지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사실 더 힘들었던 건, 상황 자체가 아니라 ‘당연히 이렇게 하면 돼야 한다’는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의 당혹감이었습니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30분 넘게 별별 방법을 다 시도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한참 뒤 도착한 호스트의 답은 간단했습니다.
“손잡이를 왼쪽으로 돌리세요.”
그제야 문이 열렸습니다. 너무 단순한 해결책에 우리 가족은 동시에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늘 ‘문은 오른쪽으로 돌린다’ 고만 생각했던 습관이 발목을 잡았던 겁니다. 그날 깨달았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익숙한 방식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요. 작은 문고리 앞에서 무너진 건 일정이 아니라, 내가 ‘당연하다’고 믿어온, 그래서 의문을 품어보지 못했던 습관이었습니다.
제 가족은 아직도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 흥분합니다. 그때의 황당함이 그만큼 컸던 거죠. 일부러라도 예전에 하지 않았던 방식을 생각해보고자 하는 태도를 더 가볍게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큰 사건이었습니다.
이집트 다합에서는 불편함이 오히려 기회가 된 적이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저녁마다 정전이 되기를 기다렸거든요.
다합은 외국인 여행자가 많이 찾는 휴양지라 늦은 밤에도 불빛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숙소 옥상에서 별을 올려다보면 드문드문 보이긴 했지만, 도시의 불빛 때문에 쏟아지는 별을 보기엔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갑자기 정전이 되었습니다. 순간 당황했지만, 곧 소리쳤습니다.
“돗자리 들고 옥상으로 가자!!”
세 식구는 돗자리와 쿠션을 들고 우당탕탕 옥상으로 뛰어올라갔습니다. 주변이 온통 깜깜해진 그곳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별들로 가득한 밤하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돗자리에 나란히 누워 감탄하며 별을 바라봤습니다. 잠시 뒤 하나둘 불빛이 다시 켜지자, 우리는 아쉽게 방으로 돌아왔지요.
그 뒤로 집에서 편히 별을 보고 싶을 때면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아, 정전 안 되나?”
“정전되면 또 옥상에서 별 볼 수 있을 텐데~”
정전이라는 작은 위기 덕분에, 쏟아지는 별을 보며 가족이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막에서 별을 보기 위해 일부러 1박을 했을 때는 추위 때문에 별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는데, 오히려 예상치 못한 불편함이 더 큰 선물을 안겨준 셈이었습니다.
문고리는 당연히 오른쪽으로 돌리는 것, 정전은 곧 불편한 것- 이런 고정관념은 단순한 습관이 아닙니다. 예측할 수 없는 불안을 막으려는 작은 심리적 방어이자, 익숙한 문제를 빠르게 처리하는 방식이기도 하지요. 문제는 우리가 고정된 방식에만 매달릴 때 생깁니다. 너무 당연해 보여 의문조차 품지 못하고, 새로운 생각의 여지도 닫히게 되거든요.
낯선 환경에서 기존 방식이 통하지 않는 순간, 예측 가능성은 깨지고 불안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새로운 경험의 기회도 열립니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AI가 빠르게 세상을 바꾸고 있는 지금, 부모의 경험과 지식만으로는 아이의 미래를 재단하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부모가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전하는 확신과 가치관도, 사실은 아이가 겪을 수 있는 좌절과 불확실성을 막아주려는 심리적 방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 대신 불안을 막아주려 하면, 결국 아이의 소중한 경험을 빼앗고 사고의 유연성을 가로막게 됩니다.
오히려 불안을 함께 견디고 감당할 때,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립니다.
여행지에서 문고리 앞에 멈칫했던 순간은 “다른 방식도 있구나”, “내 방식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구나”라는 태도를 길러 줍니다. 정전 속에서 오히려 별을 바라볼 수 있었던 순간도 “좋지 않다고 여겼던 것이 어떤 상황에서는 오히려 선물이 될 수도 있구나”를 배울 수 있었던 장면이고요. 그 순간의 불안을 견디며 얻게 되는 이 마음들은 낯선 여정을 유연하게 헤쳐 나가게 하고,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서도 즐거운 추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우리는 익숙한 방식이 통하지 않고 계획된 대로 되지 않을 때 불안을 느낍니다. 그리고 여행은 늘 예측을 깨뜨립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 새로운 길이 열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걸, 여행 속 작은 사건을 통해 배웠습니다.
1. 우리가 힘들어하는 순간, 사실은 상황이 아니라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까 봐 두려운 마음 때문일 수 있습니다.
2. “내 방식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구나”라는 깨달음이, 여행도 아이와의 관계도 더 자유롭게 만듭니다.
3. 불편함도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삶을 더 넓게 보는 창이 될 수 있습니다.
※ 이 콘텐츠는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의 ‘2025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