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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에세이

by 장순혁

금빛 물결이 너울지고
황혼을 바라보는 어느 노인
눈물을 흘린다

주름 투성이인 눈가를
주름 투성이인 손으로
말없이 닦는다

소년은 자라 청년이 되었고
세월이 지나 청년은 노인이 되었다

유년시절부터 같이 손잡고 큰
소녀는 자라 처녀가 되었고
세월이 지나 노인이 될 틈도 없이
청년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노인의 주름진 손에는
아직 처녀의 온기가 남아있다

노인의 주름진 눈에는
아직 처녀의 모습이 담겨있다

노인이 바라보는 곳,
노인이 걸어가는 곳들마다
처녀가 없던 적이 없다

노인이 죽으면
더는 처녀를 기억할 사람이 남아있지 않는다

처녀가 존재했다는 사실마저
세월 앞에 빛이 바랠 것이다

그래서 노인은 오늘도 삶을 살아간다
이 세상 속 유일하게 처녀를 기억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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