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추고 생각한다
나이 서른이 되기 전, 문학도였던 나는 곧잘 혼자 여행길에 올랐다. 그건 객기와 방황의 중간쯤 됐다. 뭘 알고 가는 것도, 그곳에 누가 있어서 가는 것도 아니었다.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해 가장 먼저 떠나는 표를 끊고 낯선 곳으로 출발했다. 이 여행에서 돌아올 때는 멋진 문장 하나 얻어 오리라.
창대한 그 결심이 무색하게 고속버스에 오르기만 하면 나는 창문에 머리를 부딪치며 잠만 잤다. 가을로 접어들어 제법 찬바람이 불 때 땅끝 해남을 거쳐 보길도로 향했다. 도착한 첫날, 인심 좋은 민박집 부부는 한껏 보길도 자랑을 했다. 윤선도가 머물렀다는 세연정과 동백, 몽돌 등 그곳만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몽돌은 보길도의 자랑이라 함부로 육지로 가져가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저녁을 먹고 혼자 바닷가에 나가 앉았다. 왜 이름이 몽돌인지 증명이라도 하듯 가까이서보니 몽글몽글 예쁜 돌들이 천지였다. 귀한 그 돌을 보는 순간 나는 하나를 갖고 싶었다. 그곳에 누워 수천 년 동안 바다를 품었을 그 돌을 갖고 싶었다. 육지로 가지고 나가면 안 된다는 금기와 먹물 같은 어둠은 내 도둑질을 더욱 부채질했다. 두리번거리며 주머니에 주먹만 한 몽돌 하나를 집어넣었다. 하나만 넣어 가려니 아쉬워 큰 것 두 개를 더 넣었다.
다음날부터 걸어서 보길도를 다니기 시작했다. 시치미를 떼고 걸었지만 바람이 등 뒤에서 계속 이렇게 소곤거렸다. ‘네가 한 일을 다 알고 있어!’ 그러거나 말거나 기어이 몽돌 세 개를 짊어지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일주일을 넘게 호된 몸살을 앓았다. 몽돌은 집 어디에 둬도 어울리지 않았다.
탐진치는 세 가지 독이라 했다. 몽돌을 갖고 싶은 마음은 욕심이다. 그렇게 무거운데 왜 다시 바다에 갖다 둘 생각도, 지나는 길에 슬쩍 내려놓을 생각도 못 했을까. 어리석음이다. 오직 가져야 한다는 욕심만 들끓어 눈이 멀었다. 그 무거운 욕심을 어깨에 짊어진 채 걷느라 여행은 엉망이 되고 몸뚱이가 망가지는 것도 몰랐다. 돌인데도 그렇게 욕심을 냈다. 만약 그것이 돈이거나 보석이었다면 어땠을까. 어떤 돌이건 지금도 돌을 볼 때마다 그 때의 내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린다. 평생 죄를 진 기분으로 산다.
※ 이 글은 불교신문(2017.04.26)에 연재했던 에세이를 다듬어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