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시작'의 순간에 시작된 모임
함께여서 고맙다.
"같이 독서모임 해볼래요?" 사실은 잘 모르는 이가 나에게 물었다. "좋아요." 오래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사실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어요. 그래서 많이 바빠질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거예요." 그것이 우리의 '일단 시작'이었다. 돌아보면 꽤나 신선했던 2019년 여름이었다.
그 해에 우리 집 둘째는 3살이 되었다. 2년을 꽉 채워 24시간 함께 했던 시간에 안녕을 고했던 시기. 그의 첫 사회생활, 어린이집 등원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주변에 관심을 갖다 보니 그간 온라인으로만 접하던 사람들의 오프라인 모임이 궁금했다. 그래서 오프라인 모임에 하나씩 참석해보기로 했다. 자주는 아니었기에 나갈 때마다 어색했고 그저 한 구석에 앉아 가만히 그곳은 어떤 세상인지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 모임 중 하나에서 '일단 시작' 멤버들을 처음 만났다.
저녁 시간 강의가 있었던 날이었다. 강의 후 이어진 뒤풀이 자리에서 맥주 한 잔을 하다가 집에 갈 시간이 됐다 싶어 먼저 일어났다. 바쁘게 지하철을 타러 갔는데 거기에 두 사람이 있었다. 그 두 사람은 이미 아는 사이 같았고 나는 제대로 인사를 건네본 적도 없어 쭈볏쭈볏했는데 어떻게 대화를 시작하게 됐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셋 다 같은 지하철을 탔기에 이어진 대화에서 셋 다 아들만 있음을 알고 빠르게 친밀도가 높아졌다는 것만 선명하다.
아직은 낯선 이에게서 독서모임 제안을 받았지만, 나에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 당시의 나는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중이었으니까. 새로운 시작을 목전에 두고 있었기에 더더욱 새로운 시각이 필요했으니까.
'일단 시작'하자던 우리의 시간은 어느새 2년 반이 흘렀다. 느슨한 연대라고 말하면서 이렇게까지 끈끈하게 채울 수 있을까 싶게 알차게 채우며 흘러온 시간이었다. 두 달에 한 번 하는 독서모임이 중요한지 매일같이 단톡방에서 나누는 대화가 더 중요한지 생각해 보면 이미 우리의 주객은 전도된 지 오래다. 사실 어디에서든 충분히 독서는 할 수 있는 사람들. 중요한 건 그 자리에 우리가 있고, 덕분에 우리의 시각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하철에서 만났던 두 사람 외에도, 우리의 모임 첫날에야 제대로 대화를 해 본 한 명을 포함해 네 명이 이 모임의 멤버다. 정말 신기한 건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지 싶게 각자가 다 다르다는 것. 더 신기한 건 그와 동시에 어쩌면 이렇게 같을 수 있지 싶게 또 서로 비슷하다는 점이다. 많이 다르고 많이 닮았다.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구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모든 가정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고 다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고. 나는 그 말을 이렇게 해석하곤 했다. 행복을 두고서는 자세히 분석하는 사람들이 없기에 피상적으로 보니 비슷해 보이고, 불행에 대해서는 관심이 너무 많아서 지나치게 들여다보니 서로 다른 이유가 다 보이는 거라고.
그런데 우리 모임 멤버들을 보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서로를 너무 비슷하면서도 너무 다르다고 느끼는 건 그만큼 서로를 잘 알기 때문.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 그만큼 많이 털어놓고 위로하고 조언하고 지켜봐 주었기 때문. 어쩌면 톨스토이가 말한 대로 모든 가정이 비슷한 이유로 행복해 보이고 다 다른 이유로 불행해 보인다는 건 두 가지 경우 모두 한쪽만 보았기 때문. 어차피 내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것이기에 행복이나 불행 모두를 내 맘대로 보고 싶은 부분만 보아서가 아닐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알게 된다. 밝은 면과 어두움 모두를. 동전의 앞뒷면 모두를. 행과 불행 모두를. 같은 점과 다른 점 모두를.
이렇게 말하지만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모두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해도 2년 반은 모든 것을 알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느 관계와 다르다고 느끼는 건 모두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지금의 서로를 응원하는 일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 이어서이다. 중요한 건 우리 서로가 가진 각자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일. 비슷하기에 할 수 있는 응원을 하는 일. 다르기에 할 수 있는 조언을 해주는 일. 다만 평가하지는 않는 일. 그래서 늘 고맙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나를 이 관계 속으로 초대해주었음이.
시작을 주제로 릴레이 글을 써보자고 제안한 '일단 시작'의 리더가 우리 모임의 시작을 첫 글로 썼다. 그 글을 읽고 바로 이불을 박차고 나왔다. (일어날까 말까 망설이던 토요일 아침 7시였다.) 풋풋했던 우리의 시작을 얼른 쓰고 싶어 근질거려서.
왜 온라인 상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골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혹시 나에게 나도 모르는 끌리는 힘 같은 게 있는 거 아닐까 약간 기대도 하면서. 그런데 아주 심플한 대답이 돌아왔다. 사는 곳이 가까워서. 그래서 모임 하기 좋을 것 같아서였다고. 하핫. 그렇군. 실은 조금 힘이 빠졌다고 지금에야 고백한다. (남편에게 왜 내가 좋으냐고 물었을 때 진짜 의미 없는 게 분명한 '예뻐서'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와 조금 비슷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정말이지 우리의 집이 가까웠던 건 너무나 다행한 일이다. 그래서 '함께'가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일단 시작'을 하며 우리는 무수히 다른 시작들을 했다. 나 역시 그렇다. 언제나 걱정이 많은 나는 시작들마다 걱정이 앞섰고 그런 나를 누가 이해할까 싶을 때마다 그들에게 털어놓는다. 참으로 안전한 연대이므로. 걱정하는 내가 그들과 다를지라도 그들은 이해할 거라 믿으므로. 참 고맙다. 마음껏 징징대고 마음껏 자랑할 수 있는 그들이 있어서. 언제나 넘치게 위로하고 넘치게 기뻐해 주는 그들과 함께여서.
* '일단 시작'의 시작 시점에 내가 개인적으로 시작하던 일은 책 쓰기였다. 엄마로만 살던 내가 갑자기 책을 쓰겠다고 하면 우습지 않을까 걱정하던 꼬꼬마 쏘냐라서 친구들에게는 털어놓지 못한 도전이었다. 그걸 첫 모임날 꺼내놨었다. 그리 가깝지 않았기에 더 쉽게 이야기를 꺼냈던 것도 같다. 그리고 그날 나는 넘치는 응원을 받았다. 아직 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때였는데도, '당신이라면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는 이야기도 해주었었다. '일단 시작'하던 그 순간에 '일단 시작'이 있어서 참으로 고마웠다고 이 글을 빌어 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