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네와 문어로 살지 않을 결심

by 섬세영


나는 신발을 좋아한다. 가방은 수 년 전에 캐리어 사면서 사은품으로 받은 백팩 하나, 동생이 사다준 '빌리엘리어트' 뮤지컬 굿즈 에코백 하나, 옆지기가 대학 졸업을 축하하며 사준 작은 미니백 하나 정도가 내가 드는 가방의 전부이지만 신발은 꽤나 많다. 가게 출근시에는 주로 발이 편한 슬리퍼를 신고, 학교에 가야 하는 날은 조금 더 (내 기준) 격식있는 크록스를 신는다. 겨울이 가까워지면 크록스에 내피를 껴 신거나 두툼한 운동화를 신곤 한다. 1년 365일 중 360일 정도를 위에 언급한 신발만 신고 사는 사람인것에 비해 신발 욕심은 비대하다. 가게에 출근용으로 신는 슬리퍼 이외에도 슬리퍼 종류만 서너 개는 되고, 하이힐로 총칭되는 굽 있는 신발도도 굽의 종류별로, 스타일별로 진열해두고 살고 있다. 잘 안어울리는 로퍼도 신고 싶다는 욕심 하나로 구매한 것이 있고, 운동화는 밑창 떨어져 버릴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까지 합치면 대여섯켤래는 된다. 아직까지는 명품 소비에 일말 관심이 없지만 명품 구두만큼은 빠삭할 정도로 신발에 대한 욕심이 넘쳐 흐른다.


신발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애정은 초등학교 고학년 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뚱뚱이로 살면서 마음에 드는 옷을 마음껏 입지 못한 한을 신발을 신으며 해소했다. 신발은 내가 아무리 뚱뚱해도 맞는 사이즈가 있었다. 사춘기 학생이 신기에는 좀 유아틱한 디자인부터, 형형색색의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것이 유일한 멋내기였다. 물론 비싼 신발은 아니었다. 3만원대 신발이 주를 이루었고 메이커 없는 신발도 많았다. 요즘 유행하는 운동화가 어느 브랜드의 무슨 모델인지 꿰고 다니는 여타 학생들과 다르게 그저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신발을 골랐을 뿐이다.


20살이 넘어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구두를 사모았다. 구두는 성질 급하고 몸무게 많이 나가는 내가 신고 다니기에는 영 불편하지만 그저 보는 것 만으로고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이 역시 비싸고 좋은 브랜드의 제품은 아니라 지하상가표 구두나, 폭탄세일 하는 인터넷 제품 을 구매하고 학교 옆 시장에서 파는 샌달을 사모았다. 한달에 이 만원 정도 투자해서 구두를 한 켤래 산다고 하면, 일년이면 12 켤래가 된다. 학기말이 되어 기숙사에서 짐을 빼는 시기가 되면, 옷보다 신발을 넣은 박스가 훨씬 클 정도가 된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매 학기말이 되면 이 신발들을 정리 하면서 이제 다신 신발을 사지 않으리라고 다짐 또 다짐을 하지만 매번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나는 신발장 가득 신지도 않은 신발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이런 나를 보며 엄마는 늘 네가 지네냐며 안신는 신발 좀 다 정리하라고 성화였다. 발은 두개인데 도대체 신발이 왜 이렇게 많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물론 나는 다 필요하다는 되지도 않는 변명으로 그 수 많은 신발을 끌어 안고 사는 지네의 삶을 택했다.


발이 두개이면서 두개가 아닌 삶을 사는 것은 신발에서 그치지 않았다. 뜨개를 시작하고 나선 문어발의 삶이 더해졌다. 하나를 완성 시키기도 전에 다른 뜨개 거리에 눈이 돌아가 새 바늘과 새 실을 집어들곤 하는 것이다. 가디건을 뜨다가 곰인형을 뜨고, 곰인형을 뜨다가 가방을 뜬다. 가방을 뜨다보면 다른 스타일의 가방이 눈에 들어오고, 한동안 소품을 만들다보면 다시 옷을 만들고 싶어져 조끼를 뜨기 위해 실을 고르고 있다. 뜨고 싶은 마음에 미리 구해둔 도안도 여러개 이다. 이렇게 어난 문어발은 신발과 마찬가지로 자주 쓰는 발 두어개를 제외하면 일년에 한 두번 정도만 손에 쥐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 오늘 나는 계속해서 새로운 뜨개거리를 찾아 인터넷 서핑을 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다른 이들이 뜬 것을 보고 이것저것 스크랩도 하고, 도안을 찾아 헤메었다. 그러는 동안 정작 내 손을 기다리는 문어발들에겐 작은 손길조차 주지 못하였다. 문뜩 신지도 않을 신발을 여럿 사고, 완성 시키지도 않을 뜨개거리를 늘리는 모습에서 소란스러운 내 마음이 보였다. 어디 하나 집중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이들에게 반영된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신발을 정리하려 한다. 오래 신어 밑창은 닳고 뒷축은 무너진 신발은 버리고, 나에게 어울리지 않지만 욕심만으로 끌어 안고 살았던 신발들은 중고거래 어플에 올려 제 주인을 찾아주고자 한다. 내게 가장 잘 어울리고, 내가 가장 잘 신는 신발들만 남겨두고 그들만을 아껴주려 한다.


더 이상 뜨개 문어발을 늘리지 않고 지금 바늘에 걸려있는 실들에게 어여쁜 모습을 찾아줄 것이다. 한 코 한 코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그들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를 보듬는다.


추워지는 이 계절, 나의 공간에 가득 찼던 물건은 조금 덜어지겠지만, 그 자리에 따뜻한 마음이 가득차길 바라본다.



이전 18화불확실함을 불안해 하지 않는 삶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