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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너, 일상의 위대함을 보여주다

-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슬픔과 고독을 견디며 오늘도 자신만의 길을 걷는 당신을 위한 이야기




많은 것들이 사라져 갔다. 기억의 첫머리에서 맴돌거리는 장면하나. 아장아장 뒤뚱거리며 엄마와 아빠 사이를 줄타기하던 아이. 그 아이가 바라보던 밝은 창이 있던 방. 어느 날 찢어진 문풍지 사이로 우리  엄마 언제 오는지 빈마당을 들여다보며 하염없이 기다리던 유년의 시절.


그 시절을 지나 진주역에서 경부선 기차를 타고 내린 역광장. 그 광장에 소북이 쌓인 눈더미를 헤치고 셔틀버스가 산 중턱에 올랐을 때 내가 다닐 대학이 하얗게 거기 서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멀리 떠난 길이었다.


윌 스토너는 집에서 15마일 떨어진 분빌 너머로 가본 적이 없었지만 달걀을 팔고 산 옷을 입고 먼지 묻은 수레를 얻어 타고 그의 나이 열아홉 살 때 컬럼비아에 있는 미주리 대학 농과대학에 진학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처음 접한 후 묘한 경험을 했다. 자신의 몸을 떠난 정신이 공중에서 춤을 추며  빙글빙글 도는 환희에 젖는 순간을 접했다.


그때 그는 농업과 문학 사이에서 고민을 한다. 스토너는 굽은 등과 휘어진 손가락으로 땅을 일구는 부모님과 문학의 심연에 잠든 파랑새를 생각하며 갈등하고 있을 때 영문학 개론 담당 교수가 말을 한다.


모르겠나, 스토너 군?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어?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스토너는 문학밖에 몰랐다.  술과 파티를 멀리했고  배움과 가르침만이 생의 전부였다. 세계대전의 화마 속에서 애국심의 발로와 영웅주의를 버리고 대학 도서관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했다.


하루하루 강단에 서는 것만이 자신의 본업이었고 나머지는 무의미했다. 비록 빛나는 명예와 드높은 평판을 얻지 못했지만 스토너는 영문학자로서 자부심은 그의 심장이었다.


그 아무리 삐뚤어진 자들이 그를 멸시하고 조롱하더라도 우뚝 솟은 존엄만은 단 한 치도 무너뜨리지 못했다. 평범한 일상을 고요하게 지낼 뿐이었다.


내가 국문과를 선택했을 때 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침묵했고 어머니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시인이 되지 못했다. 80년대 대학은 최후탄과 짱돌, 수업거부와 강의실 폐쇄가 철마다 이어지고 배워야 할 시는 거리에 있었다. 나는 온전히 배우지 못했고 결국 대학 밖으로 밀려났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내가 하는 일의 의미‘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반평생을 흘러 보냈다. 출판사에서 교육벤처기업, 창업과 외국계 보험회사, 학원강사 등을 거치면서 삶은 닳고 닳아 얇은 백지가 되어버렸다. 겨울 미풍에도 흔들리고 찢어질 위험한 생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벌거숭이 몸으로 들판에 누운 채 바람이 지나가고 여우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내 방랑과 불행의 고리에서 생애 마지막 여자를 만나 결혼했고 내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스토너는 첫 여자를 만나 결혼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의 아내에게 말했다.


‘녀석에게도 누군가 잘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돼’


그러나 여자는 좋은 아내가 되겠다는 약속은 평생 지켜지지 않았고 스토너는 사랑을 고집하기보다 침묵으로 일관했다. ‘자기 세계에 빠진 여자’ 에게서 가족의 의미는 없었다. 사랑했던 딸마저 원하지 않은 결혼을 한 후 결국 자신을 떠났고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했다.


스토너의 일생은 불행의 구름 속에 휩싸인 종이연처럼 위태로웠다.

억지로 굴러가는 결혼생활과 특정교수의 악랄한 비방과 모함 속에서 스토너의 유일한 안식처는 그의 서재이자 강의실이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만난 한 여자. 한 생의 불행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그녀를 만나고 있으면 삶의 환희가 흘러넘쳤고 그의 몸에서 푸른빛이 나고 붉은 꽃이 피었다.


하지만 불륜의 올가미에 걸린 두 사람의 사랑은 파탄을 맞고 급격히 무너져가는 스토너의 상실감은 육체의 병으로 퍼져 결국 치명적인 암으로 생을 마감한다.


존 윌리암스의 장편소설 ‘스토너’는 평범했던 한 남자의 생을 다루며 우리가 빛나는 훈장이 없어도 우리의 삶은 위대하다는 사실을 말한다.
존 윌리엄스와 그의 작품 스토너


다수의 보통사람들은 빛나는 명예나 큰 업적 없이 평범하게 살다 간다.

일상의 자질구레한 사건과 사고를 경험하고 사랑과 이별, 죽음을 겪으며 어느 순간 때가 되면 생을 마감한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분노하고 슬퍼하며 가끔은 기쁨을 느낀다.


특별할 것도 없는 스토너의 인생이 어떤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힘든 고난을 대하는 그의 차가운 무심함과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견고함 때문일 것이다. 그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이성적 논리로 불필요한 감정을 절제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이 해야 될 일에 깊이 파묻혀 있는 장면은 평범한 인간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다. 책과 문학, 가르치는 것은 그가 평생 동안 집중한 삶의 과녁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스토너의 인생이 평범한 사람이 거둔 위대한 승리라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그 자신도 임종 직전 최선을 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드러내며 자기 자신의 삶에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라고 자문한다.


‘스토너’의 작가 존 윌리암스는 평범한 우리 일상의 세계에서 그 어떤 ‘기대할 것’을 의지처로 삼아 나아갈 것을 당부한다. 우리의 삶은 하나의 세계를 잉태하고  소멸되는 별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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