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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꼬투리 Jun 24. 2024

세상에 해로운 감정은 없다

<인사이드아웃 2>를 보고

며칠 전에 본 <인사이드아웃 2>.

사춘기에 접어든 주인공 라일리에게 새롭게 찾아든 감정들의 이야기입니다.

불안, 당황, 따분함 등이 사춘기를 맞이한 라일리에게 새로 찾아온 감정들이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저는 '노스탤지어(추억) 할머니'에게 눈길이 갔습니다.

극이 진행됨에 따라 간간이 등장하는 노스탤지어 할머니는 말 그대로 추억에 잠기게 만드는 감정이었는데,
할머니로 모사한 부분도 재미있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은연중에 '라떼'를 말하고, 그렇게 꼰대가 돼 간다고 하는데 과거를 회상하며 그리워하는 감정을 형상화한다면 정말로 영화에서처럼 노인의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매우 짧게, 초조연 역할로 등장하는데 아직 어린 라일리에게 추억이라는 감정은 정말이지 조연에 불과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인사이드아웃 2> 어쩌면 인사이드아웃 3? 4? 쯤엔 주연이 지 않을까? 

상상력에 감탄하며 내내 몰입해서 재미있게 잘 본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극초반에 기쁨이는 자꾸만 주인공에게 쌓인 나쁜 기억들을 저편으로 보내버리는데

그 장면에서 '어, 저러면 안 되는데?' 했는데 역시나 픽사는 그걸 놓치지 않았습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메시지를 주는 픽사!!).

역시나 주인공의 기억을 조작하여 자아를 만드는 건 옳지 않다며 감정들끼리 깨닫는 부분에서 공감도 했습니다.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데는 희로애락을 모두 담은 경험과 기억이 큰 역할을 하는 거니깐요.


며칠 전, 저는 15년쯤 되는 인연과 연을 끊게 됐습니다. 무엇이 원인이든 많은 추억을 공유하며 지냈던 사람과
인연이 지속되지 않으니 마음의 데미지가 상당하더군요.
마침 그 사람과 잘 지내는, 그리고 이 상황을 잘 아는 분과 최근에 만났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돼 너무 안타깝고, 우리가 함께 했던 추억이 지속될 수 없어서 아쉽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사실 저와 만난 분과 인연이 계속 이어진 것도, 지금은 연이 끊긴 그분  덕분이라 못내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저의 결혼식 주례는 초등학교 은사님이 해주시고, 22살 어학연수 때 만난 영국 영어학원 선생님이 하객으로 오십니다. 사회는 고등학교 친구가, 축사는 대학교 친구가 해줍니다.

제 인간성을 과시하려는 게 아니라, 이토록 오래된 인연들이 지속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노스탤지어 할머니'가
제 안에 크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할머니가 영화 속 불안이나 기쁨이처럼 비대해진다면 저는 현재가 아닌 과거에만 살아가는 꼰대 of 꼰대,
그리고 과거를 놓지 못하는 미련한 중년의 라일라로 살아갈 것입니다.

연이 끊긴 사람 때문에 괴로워하는 저에게 한 친구가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어떤 한 시절에 인연이 닿아 잘 지내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그 시절인연을 언제까지나 붙들고 살 수는 없는 거라고, 그러니 이제 그만 놓아주라고요.

그래서 저는 마음을 조금 비우려고 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열일하는 그 사람과의 기억만큼은 노스탤지어 할머니에게 잠시 휴식을 주려고 합니다.  

<인사이드 아웃>을 보며 느낍니다.
세상에 저에게 해가 되는 감정은 없는 것 같아요.

불안이라는 감정이 있기에 성취감을 느끼고, 슬픔을 느껴야 성숙해지고, 기쁨을 알아야 삶의 동력을 만들며, 당황이나 소심함이 있어야 조심성을 배우며, 지루함을 느껴야 바쁜 일상을 사랑하게 되니깐요. 그 모든 감정의 목적과 목표는 하나입니다. 

내가 행복해지는 것. 

그러나 그 행복도 영원하지 않기에, 그 많은 감정을 쇠똥구리의 쇠똥처럼 열심히 꾹꾹 눌러 동그랗게 만들어야 비로소 만끽할 수 있다는 걸, 저는 이제 좀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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