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안-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때쯤 무렵 어느 부동산이 보였다. 그곳에는 ‘당신의 돈의 가치를 높여 줍니다’ 라고 써있었다. 그걸 보고선 그 아이는 말했다. “엄마 왜 구지 저렇게 말 하는 거야? 사람들도 못알아듯잖아” 그러자 그 아이의 엄마는 말했다. 그것은 다 좀 있어보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때 그 아이의 눈을 난 잊지 못한다.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아이의 말은 공격적이였고 화가 났다기 보다는 이해가 안됀다는 눈빛이였다. 내가 반박을 해 보자 그 아이는 날 똑바로 쳐다보며 다시 반박했다. 그때 그 아이의 몸 주위에는 반투명한 빨간 막이 설치되어 있었고 난 그걸 호기심의 열정의 막이라 부르기로 했다.
난 그 아이가 더 성장했으면 바란다. 다른사람이 주는 스트레스 그대로 번역해 압박에 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한때 호기심 내 친구들이 흔히 말해 쓸대없는 호기심이 넘쳐났다. 그래서 난 종종 이상한 아이가 되곤 했다. 친구들은 날 우습게 대했다. 내가 그런 질문을 할때면 그 아이들은 내가 자신들을 웃기려고 그런말을 했으리라 생각하고 억지로 웃어준다. 그보단 비웃음에 가까울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나뭇잎에게는 성별이 있을까? 저기 저 떨어지는 나뭇잎은 여자일까 남자일까? 난 저 나뭇잎이 여자였음 좋겠어” 라는 류의 질문은 그 아이들의 놀림거리를 만들어 주는 공장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난 이런 사소한 호기심이 마음에 들었다. 난 그 호기심의 꼬리를 물때마다 행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들은 너무 정해진 틀에서 오래 산 나머지 그 틀에서 꺼내줘도 똑같은 형태를 유지했다. 난 나눔을 좋아했다. 그래서 내 상상력을 호기심을 친구들에게 나눠줄려고 보여줄려고 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정해진 것 외에는 받아드려질 힘이 없었나 보다. 내가 덮어놓은 뚜껑속 파리가 맴도는 것처럼.
어른들은 왜 자라나는 새싹의 구멍을 막고 다른곳에 인위적으로 구멍을 뚫어놓을까? 꼭 그속으로 나와야만 정상인 듯이 다른 곳에서 자란건 마치 잡초라는 듯이 굴었고 그렇게 학습시켰다. 아름다운 잡초도 있을 수 있다. 무조건 잘못된거라고 그 ‘잡초’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쓸모가 정해진다면 매우 슬플 것 같다. 그래서 진정한 친구든 가족을 만들기 위해선 내 종류를 밝혀선 안됐다. 그게 곧 내 분수이고 내 수준이자 쓸모였기 때문이다.
얼마전 난 귀여운 곰돌이를 생일 선물로 받았다. 난 진심으로 행복했었다. 약간 엄청 비싸보이는 디자인 이였기 때문이였다. 그래서 그걸 선물해준 언니가 갑자기 고마웠다. 나를 신경써 준 것 같아서. 나를 위해 돈을 들인 것 같아서 난 좋았다. 그걸 들고 집에가 어서 열어서 품에 안아보았다. 보들보들한 촉감이 아주 마음에 들었지만 아껴야 한다는 느낌 때문에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해 놓고 자세히 보고 있었다. 꼬리 부분에 작은 택이 있었다. 분명하게 매이드 인 차이나 라고 돼 있었다. 난 갑자기 싫어졌다. 언니도 곰 인형도 선물 받았다는 것 자체도 하지만 곧 미안해 졌다. 그리고 곰인형 에게 말했다. “비싸지 않아도 돼 네 이름값만 하면 된거야 넌 충분히 예쁘니깐 네 이름표에 너무 실망하지마 그건 그냥 널 분류하는 사람들의 기준일 뿐이야 거기에 맞추지 않아도 돼 넌 나에게 최고의 선물이니까” 난 다시 그 인형을 쓰다듬어 주고 잠자리에 들었다.
어느 사람들은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종류를 보곤 한다 그 사람의 이름표를 보고 그 사람의 가치와 쓸모를 판단하곤 한다. 난 그게 필요없다고 본다. 다른사람에게 신경쓰며 손이 다이지도 않는 곳에 택을 때려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난 그 택이 붙어있는 사람중 가장 나은 사람이니 더 험하고 기준 높은 곳으로 뛰어들려 하지 말자.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 잘보이면 돼는 것이니. 누구나 날 사랑할순 없다. 다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주면 그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을 순 있다. 내가 이상하다고 스스로 말하며 다른사람들이 정해놓은 그 틀 안에 너무 머무르려 하지 말자. 메이드 인 차이나 여도 그건 곰돌이 인형이란건 변하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