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의 소파 위 단상
늦은 오후인 저녁 5시 10분경.
중등인 큰아이와 초등인 작은아이가 집에 도착했다.
사교육은 예체능만, 그 외의 공부는 집에서 하는 아이들이라
보통의 아이들 보다는 이른, 퇴근을 마친다.
평소 같으면 귀가한 아이들에게 간식을 챙겨주고
곧 저녁준비를 할 시간인데
하품이 연신 나오면서 피곤한 느낌이 든다.
지난밤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잠을 설쳐서 그런 건가? 잠이 쏟아진다.
낮잠을 잘 자지 않지만.. 오늘은 낮잠 한숨 잤으면 싶다.
마침 남편으로부터 야근을 한다는 톡을 받은 터라
식사준비에도 부담이 없어서 한숨 자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애들 저녁으로는 압력솥으로 새 밥을 하고
어제 만들어둔 꽈리고추를 넣은 소고기 장조림과
금방 부쳐 따끈따끈 한 달걀프라이를 올리고
참기름 쪼로록 뿌려 장조림 비빔밥을 만들어 주면 되겠다.
새 국에 새 반찬은 아니지만 항상 잘 먹는 메뉴니까 괜찮을 것이다.
좋아하는 과일을 - 요즘은 골드키위 - 깎아 함께 내놓으면 초라하게 보이지 않겠지.
애들 간식을 챙겨주면서 "엄마 피곤해서 조금 잘게."라고 말한다.
내가 낮잠을 잘 동안 아이들은 공부를 하거나 놀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스마트폰 타이머로 40분을 맞춰놓고 소파에 눕는다.
무릎담요를 덮고 누워 있노라니 이보다 더 포근할 수가 없다.
낮잠은 항상 옳다.
눈을 감고 누웠지만 주변의 소음 때문에 바로 잠에 빠져들지는 않는다.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자고 있다.
20분쯤 잤을까.
갑자기 요란스럽게 페이스톡이 울린다. "따라라라 따라라라~
잠에 막 빠져들고 있었는데 누굴까! 짜증이 확 난다.
인상을 조금 쓰면서 전화기를 들어본다.
동생이다.
동생의 아이들이 동생 폰으로 영상통화를 걸어온 것이다.
"얘들아. 00 이가 영상통화 했어!" 하며 아이들을 바꿔준다.
반갑게 인사를 한 아이들은
만나지 못한 동안에 새로 사들인 장난감들을 부리나케 갖고 와서 자랑 배틀을 시작한다.
영상에 동생도 등장한다. 때맞춰 아이들이 나의 모습도 영상에 비춰 준다.
"안녕! 얘들아!" 잠결이지만 조카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동생과도 손인사를 나눈다.
동생이 소파에 누워있는 내 모습을 본다.
"헐, 언니 자는 거야? 이 시간에 잠을 왜자. 애들 밥 줘야지."
나는 자세를 바로 하면서 "어, 그냥.."이라며 말을 흐린다.
동생의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뜨끔하기도 하고 왠지 화도 나서
"얘들아, 할 말 없으면 이제 끊자. 밥 먹어야지."라고 말하며 통화를 끝내도록 유도한다.
전화를 끊고 나니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짜증이 난다.
나는 대개는 성실한 주부다.
매일 새 밥, 새 반찬을 만드는 사람이고
청소도 열심히, 아이와 엄마표 공부도 하는 사람인데!
오늘따라 낮잠이 자고 싶어서는 저런 말을 듣다니.
하아.
동생은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다.
탄력 근무를 하기 때문에 출근도 빠르고 퇴근도 빠르다.
5시면 퇴근을 하고 이미 집에 도착하는 걸로 알고 있다.
동생은 퇴근하고도 이것저것 챙길일이 많아 집안을 바쁘게 돌아다니다가
조카들이 졸라서 영상통화를 걸어 주었을 것이고
나에게 한 말도 별생각 없이 나온 말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는데도 왜 이렇게 짜증이 나지.'
그건...
동생의 말이 내 마음속 버튼을 눌렀기 때문일 것이다.
아줌마의 자격지심 버튼.
'전업주부는 편하잖아.'
'직장인처럼 뺑이? 치지 않잖아.'라는 다수의 시선과
그 시선을 반박할 수 없기에 가지게 되는 마음.
당연하게도 워킹맘의 그 치열함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맞아서
나는 오늘도 조금 작아지고
작아진 내 모습이 못나보여 화가 난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들 얘기를 던지는데
기다렸다는 듯 부들부들하는 내 모습 참 당당하지 못하네.
가만히 속내를 들여다보니
순간적으로 솟아오른 화는 가라앉았지만 입맛이 영 쓰다.
'나도 내가 원해서 전업된 거 아니거든요. 전업주부는 낮잠도 못 자나. 흥'
다시 스마트폰 타이머 40분을 맞춘다.
소파에 털썩 누우면서 발 언저리로 내려간 무릎 담요를 다시 끌어당겨 덮는다.
"엄마 다시 조금 잘게 얘들아."
"알았어요 엄마."
'애들 저녁밥이 조금 늦어지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