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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쟁이 Nov 12. 2024

템포의 미학

(1) 템포의 기원

지금이야 이런 저런 이유로 일본과 대만이 해외 여행의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홍콩을 처음 방문했던 2017년 즈음만 해도 국내 여행의 트렌드 중 가장 큰 축은 홍콩이었다. 양가위 풍의 영화가 인스타를 지배했고 홍콩이 담고있는 형형색색의 풍경과 이질적이면서 뭔가 닮아보이는 생활 상은 한국인의 눈을 사로잡았다.


개인적으로도 '맛'을 숭상하기에 홍콩에 대한 기대를 품고 홍콩을 향한 여정을 떠났다. 그리고 목도한 홍콩의 첫 모습은


'지침과 당혹감'


호텔에 도착해서조차 무언가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정말이지 몇 개 되지 않은 여행 일정임에도 너무나 지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최근 개인적 근황을 아는 친구들은 하나 같이 짐짓 놀란 표정을 감추며, "왜?"라고 물어왔다. 어쩌면 지난날 내가 보여줬던 길과는 다른 선택을 했기에 그랬을지도, 내 입에서 정말 썡뚱맞은 대답이 나와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올해 상반기와는 전혀 다른, 너무나 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곳에서의 삶은 상당히 역동적이다. 직무 특성을 넘어설 만큼의 업무 속도와 그 안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상호작용까지 무엇하나 빠르지 않은 것이 없다. 정성들여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연조차 하루 이틀 지나보면 먼 어느새 과거 속의 한 페이지에 기록되어 있다.


어쩌면 너무나도 열정적이지만 정말이지 차가운, 그런 공간 속에서 하루의 상당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다행히도, 어느 집단에서건 아무것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진 않았다. 그것이 운동이 되었건 일이 되었건, 주목을 못받을 순 있어도 무력하게 무언가를 흘려보낸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 옛날 홍콩에서의 경험처럼 이 회사에 들어와 내가 처음 느낀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집에 돌아와서까지 지치고 잠을 쉬이 들지 못했다. 무언가 내가 있을 자리가 없을 것 같은 그런 무력감 때문에.


두 경험의 교차점은 바로 '무력감'이 나를 휘감았다는 사실이다. 홍콩에서의 첫 날은 이방인으로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그저 '관찰'할 수 밖에 없는 개인으로서의 무력감이었다. 지금 회사에서의 첫 날은 너무나도 빠른 흐름 속에서 그 흐름을 쫓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했기에, 내 자리가 없었기에 '배제'되었다고 느꼈던 것에 기인했다.


아무것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기에, 오히려 그 무력감들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템포는 저마다 다양하다. 누군가는 새벽같이 일어나 일이나 운동을 하는 한편, 누군가는 느긋한 삶을 살아간다. 근면과 성실로 일어난 나라답게 열심히 사는 삶에 대한 추구는 여기저기서 피어오르지만, 사실 삶의 템포에는 옳고 그름이 존재할 수 없다. 타고난 생활과 기질이 다를 수밖에 없기에 더더욱.


그러나, 템포에 미학은 존재한다. 열심히 사는 삶에 대한 지향은 결국 어떤 것이 더 '멋져'보이냐는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대답이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는 템포에 미적 기준을 설정해 두었다.


템포가 '빠른 것'이 좋은 것이라는.



여유로운 삶은 동경될 뿐, 추구되지 않는다. 요새 유행하는 추구미라는 단어를 통해 이 개념을 이해해 본다면, 모든 이들의 추구미는 템포가 빠른 삶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는 신체적, 정신적 한계가 존재한다. 템포가 무한정으로 빠르게 가다보면 나타나는 수많은 질병과 '번아웃'은 아름다워야만 하는 빠른 템포에 우리 현대인이 적응해서 발생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홍콩의 경험과 현재 회사의 경험은 그 결말이 나지 않았기에 확언할 수 없지만, 그 시작과 달랐다. 홍콩은 여전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행지 중 하나이며, 현재의 직장 역시 빠른 템포에 적응하여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


그러나, 지울 수 없는 의문 하나가 남는다. 과연 우리는 템포 속에서 안온한가. 템포가 빠른 것이 맞는가.

빠른 템포라는 티키타카 속에 우리는 숙련이라는 긴 과정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2편 템포의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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