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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근영 Feb 13. 2022

일단 앞으로

자, 이제 시작이야 내 꿈을

 엄마도, 주변 사람들도 내가 가진 것이 많다고 했는데 나는 그 말에 동감하지 못했다. 그냥 해본 게 많을 뿐이지 잘하는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 일들로 돈을 벌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 정도로 잘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사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도.


 나에게 '돈을 번다'의 기준은 교사로 일하면서 버는 정도(돈, 방학, 복지 그 모든 것)로 터무니없이 높았어서 내가 가진 능력으로 그만큼 벌 수 있는 다른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진 능력을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나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교사뿐이었다. 그게 아니란 걸 지금은 알지만. 시야가 너무 좁았었다.


 아무리 그랬어도, 그렇게나 힘들어한 학교를 왜 떠나지 않았느냐고, 학교에서 버티는 몇 년간 내 몸과 마음이 다 이렇게나 쇠약해졌는데도, 나를 무너뜨리고 있는, 겨우 버텨야만 하는 그 직업을 왜 손에서 놓지 못했느냐고 누군가는 물을 수도 있겠다.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다. 그리고 난 그것들 중의 대부분을 교사로 일하면서 번 돈으로 할 수 있었다. 교사로 일하는 건 너무 힘들었지만 그렇게 했던 일들은 참 즐거웠다. 그렇기 때문에 난 학교에 가야 했다. 무언가를 하기에 시간과 돈은 늘 한정적이고, 교사로 일해서 얻는 돈과 방학 없이는 그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중에서 몇 가지만 하면 되지 않냐고 할지도 모다. 그러면  돈을 많이 벌지 못할 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까. 글쎄, 왜 그러지 못했을까? 그렇게 하면,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듯했던 학교 일을 그만둘 수 있었을 텐데. 욕심이 너무 많았을까. 는 그 재미있고 즐거웠던 일들 중 단 하나라도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했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무언가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그때는 몰랐나 보다. 그러니 그중에 직업으로 삼을 단 한 가지만 빼고 나머지를 다 버리기란 얼마나 어려웠는지. 하나도 내려놓고 싶지 않은데 단 하나만 남기고 다 내려놓으라니. 나에게 교사 말고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일은 없다고,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긴 하지만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그중에는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서 더 그랬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떻게 보면 그렇게나 힘들었던 학교 생활이 내 전부였다. 고3 시절에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내 인생이 망할 거라고 생각했듯이, 나는 교사를 그만두는 일도 그렇게 여겼다. 교사를 그만두면 내 인생이 끝나버릴 거 같았다.


 게다가 교사는 지금까지의 삶에서 내가 유일하게 성취한 것이었다. 아니, 아닌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기준은 너무나도 이상적이어서 나는 번번이 그 기준에 닿지 못하고 실패하곤 했다. 그런데 유일하게 그 기준을 만족한 적이 임용고시를 치고 합격했을 때이다. 임용고시를 7등으로 합격했을 때에야 나는 '아, 나도 마음먹으면 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때서야 그렇게 느꼈다. 실제로 내가 마음먹은 대로 해왔던 것은 아주 많았음에도. 나는 수능을 못 쳤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교대를 갈 수 있을 정도의 좋은 성적을 받았었고, 혼자서도 씩씩하게 많은 나라를 여행했으며,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 무엇도 재지도 따지지도 않고 깊게 몰입했었는데. 그 많은 나의 성취를, 그것들을 해오며 느꼈던 더없는 즐거움을 왜 다 없는 걸로 해버렸을까.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정작 내게 남은 것은 즐거웠던 순간의 감각들 뿐인데.


 2019년에 학교를 그만뒀을 때에도 난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지 못했다. 안정적인 수입과 다른 직업에는 없는 방학이 내 사고를 완전히 사로잡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초등교사처럼 방학이 있고 안정적인, 그러면서도 적당히 내가 견딜 수 있을 거 같은 직업으로 가는 길을 택했었다. 내가 머리로는 괜찮다고 해도 마음으로는 그게 틀렸다는 걸 느끼고 있으면서 그랬다.


 그래서 직업 면에서 내가 완전히 새로운 길로 가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이를 먹고 내 취향이 쌓이면서, 호호 할머니가 되어서도 하고 있을 것 같은 일들 빼고는 다 가지치기가 되었기 때문에 결정을 내릴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의 선택을 아무 거리낌 없이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걱정이 없거나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취미로서 좋아하는 일은 아무 망설임 없이 도전해 왔었지만 직업으로 좋아하는 일을 해보려고 하는 것은 내게는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니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취미로 즐기는 것과 직업으로서 하는 것은 많이 다를 테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더라도 좋아하는 일만 할 수는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아직 경험해 본 적은 없기 때문에 몸에 새겨진 건 아닐 테지만. 그래서, 이번엔 직접 뛰어들어 몸으로 경험을 해보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포기할지도 모른다. 좋아는 하지만 직업으로는 못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 좋아는 하지만 힘들고 돈 벌기도 어려운 직업보다 내가 좋아하진 않지만 수입도 괜찮고 편한 교사 생활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꼭 해보려고 한다. 해보지 않으면 모르니까, 그리고 해보고 싶으니까. 내가 어떤 결정을 할지 열린 마음으로 지켜볼 거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내가 무엇을 선택하든 이젠 불평불만하지 않겠다. 내 모든 선택의 결과는 내가 지는 거니까.


 이제야 그렇게 결심한다. 나는 조금 더 어른에 가까워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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