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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근영 Feb 18. 2022

삶의 계절

계절에 따라 산다


 새벽에 일찍 깨 차를 마시다가 곧 우수였던 거 같아서 모리시타 노리코의 「계절에 따라 산다」의 우수 부분을 펼쳐 읽었다. 읽으면서 절기는 어쩜 이리도 딱 들어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수 꼭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아침부터 제법 봄 같더니 낮에는 한층 기온이 올라갔다. 계절에 맞지 않게 포근한 날씨라 이대로 진짜 봄이 오는 게 아닐까……하고, 무심코 기대하고 말았다.
 하지만 ‘입춘’이 지나면 다시 한겨울로 돌아간다. 사실은 입춘부터가 가장 혹독한 계절의 시작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다음 날이 되자 달콤한 기대를 깨부수듯 강렬한 한파가 찾아와 기온이 뚝 떨어졌다. 이른 봄에는 난기류에 휩쓸리듯이 기온이 급격히 오르내리며 몇 번이고 여진이 반복된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한 번 죽은 계절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 험난한 길을 통과하는 중이라고.

 …

 그다음 날에는 비가 내렸다. 차갑게 얼어붙었던 하늘이 아주 살짝 누그러졌다.
 오늘은 ‘우수’. 눈이 비가 되고, 얼음이 물로 변하는 계절이라고 한다.


 입춘 지나고부터 급격히 추워지더니 이틀인가 전에는 부산인데도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질 만큼 추웠던 게 떠오른다. 그리고 내일은 우수, 정말로 비 예보가 있고 그 후로 날씨가 점점 풀린다.

 그런데 이 절기들이 삶에도 존재하는 건 아닐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작년 상반기가 내 입춘이었던 건 아닐까? 살아오면서 내내 혹독한 추위를 버텨나가고 있는 듯했는데 작년 초부터는 뭔가가 깨인 것처럼 갑자기 다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기억조차 희미한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서는 제일 마음 편했을 때여서, 앞으로 쭉 괜찮을 거라는, 이제 봄처럼 포근하고 따스한 날이 계속 이어질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봄에 들어서는 입춘이 지나자마자 다시 한겨울로 돌아간 듯 급격히 추워지는 것처럼, 나도 이제 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지 일 년도 채 되기 전에 다시 매서운 칼바람 속에 내팽개쳐졌다.

 다시 교사 생활을 하는 거, 분명 이번에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또다시 견딜 수 없을 만큼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12월에 급성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겨우겨우 나를 지탱하고 있던 끈마저 끊어져 버린 느낌이었다. 내가 아프고 싶어서 아팠던 것도 아닌데, 아파서 학교에 못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 가기 싫어서 내가 아프기를 스스로 선택한 것만 같았다. 터무니없는 비약이었지만 정신적으로도 너무나 몰려있던 때여서 그렇게 느꼈다. 게다가 몸이 아프니 마음도 함께 쇠약해져서 다시 학교에 가는 것이 너무나 걱정되고 두려웠다. 실제로, 나 대신 보결을 들어가고 계신 선생님들께 너무 죄송해서 몸이 다 회복되기도 전에 출근했을 때, 약해진 내 몸과 마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아이들이 너무나 힘들고 또다시 쓰러질 것만 같아 무서워서 교감 선생님께 도저히 학기를 마무리하지 못하겠다고, 정말 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이번에는 정말 도망치지 않으려고 했는데 또 도망쳤구나 싶어서 심한 자책감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대체 뭘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우울하고 무기력했다. 그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의 홍수를 견딜 수가 없어서 1월에는 거의 온종일 잠만 잤다. 배도 고프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올해 임용고시를 다시 치기로 마음먹었으니 공부를 하려고 해도 내가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가 않았다. 작년 상반기까지는, 그전에도 임용고시를 높은 성적으로 통과한 만큼, 다시 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있었는데 그 자신감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채였다. 지금까지 계속 실패했듯이 앞으로도 계속 실패하지 않을까? 나는 이제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아르바이트도 그다지 많이 경험해보지 않아서 내가 한 사회생활이라곤 교사 생활이 거의 다였는데, 몇 번이고 다시 시도했던 그 모든 경험이 실패로 돌아가고 나니 나는 마치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암담해졌다. 다시 교사의 길을 가지도,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지도 못한 채로 갈팡질팡했다.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서, 무엇을 해도 또 실패할 것 같아서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시 교사가 되는 것이 두렵고 자신이 없어서 역시 임용고시는 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가, 어쨌든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니까 어떻게든 마음 잡고 다시 인강을 듣다가, 일주일 간격으로 계속 생각이 왔다 갔다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마음을 털어놓았더니 단 이삼 주만이라도 교사 일 말고 다른 일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다시 교사가 되는 것도 자신 없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도 자신 없다면 계속 하던 것 말고 다른 것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임용고시를 치고 다시 교사가 된다고 해도 그동안의 경험과 다를 거라는 생각이 별반 들지 않았고, 그 새로운 일이란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 내가 그것으로 뭔가를 성취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뭐 어떻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거의 못 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을 수 없어도 그동안 즐거울 테니 그것으로 됐지 않냐, 그 즐거운 일을 함으로써 내가 느꼈던 설렘과 기쁨은 보석 같은 흔적으로 남을 테니까 그걸로 되지 않겠냐. 그런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론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내가 교사 생활이 힘들다고 자꾸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도 다른 비교할 만한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 나는 자꾸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데 취미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과 직업으로 삼는 것은 다를 테니 고민만 하는 것보단 일단 경험을 해보고 결정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나는 그동안 좋아하는 일과 좋아하지 않는 일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만 생각했지, 그 외에 다른 것은 별로 고민하지 않았었다. 내가 비교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 아닌지에도 차이가 나지만, 그 외에 고용 면에서 안정적인지, 평균 이상의 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 시간적 여유와 여가가 있는지, 어떤 복지들을 제공해주는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감수해야 하는 직업인지 육체적으로 힘든 직업인지 등등 거의 모든 것이 다르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일 중에 선택하라고 하면 당연히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겠지만, 앞선 모든 것을 고려하여 선택하라고 하면 제각기 내리는 결론이 다를 것이다. 아마도 나도 이번에 여러 방식으로 그걸 경험해보면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확실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나머지는 뒤로 제쳐둘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보다 안정적인 삶을 위해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만 남겨둘 건지. 그래서 이번에는 새로운 길로 가보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향해 발걸음을 디뎌볼 것이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의미 있는 시도가 되겠지.

 올해 그 결론을 찾아가는 새로운 도전이 여전히 혹독한 겨울 속을 헤쳐나가는 길일지, 눈이 비가 되고 얼음이 물로 변하는 봄에 가까운 여정일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확실한 건, 언제고 봄은 반드시 올 것이고 이 새로운 시도 끝에 나는 그 봄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지금은 매서운 추위 속에서 걷는 것 같아도 언젠봄비가 내리고 얼음이 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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