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과제 신청할 때 학문분야를 잘 골라야 하는 이유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연구계획서를 제출 할때, 신청자는 '평가요청학문분야'를 선택해야 합니다. '평가요청학문분야'에 대해서 신청요강 등에서 그 개념을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은 과제의 평가와 선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평가요청 학문분야를 선택하는 과정은 신청자가 작성한 계획서와 그 연구의 내용에 이름표를 달아서 구체성을 부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예시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탈리아 남부지방의 문화유산과 이를 주제로 한 문학 연구'라는 연구의 계획서를 제출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비전문가인 제가 보기에 이는 이탈리아 역사, 이탈리아어 문학, 이탈리아 지역학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ㅁ 역사학 - 서양사 - 이탈리아사

ㅁ 인문학 - 기타서양어문학 - 이탈리아어문학

ㅁ 사회과학 - 지역학 - 남유럽 -이탈리아

위의 세가지는 매우 다른 분야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럼 신청자가 위의 학문분야 각각을 선택하는 것은 어떤 결과를 발생시킬까요? 간단히 말하자면, 연구자가 선택하는 학문분야에 따라 연구과제의 '경쟁자' 그룹이 달라지게 됩니다. '이탈리아사'를 선택하면 역사학과 관련된 다른 연구과제와 함께 역사를 전공한 평가자에게 평가받게 될 것이고, 그 중에서 과제를 뽑게 됩니다. 만약 지역학을 선택하게 된다면, 아예 사회과학 과제들과 함께 사회과학자에게 평가를 받게 되겠지요. 그리고 그 안에서 선정과제가 나오게 됩니다.

이로 인해 해당 과제가 선정되는데 현실적인 두가지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인문학분야는 사회과학 혹은 예술체육학 분야보다는 신청하는 과제가 많기 때문에 많은 예산이 배정(인문학-사회과학은 차이가 크지는 않다고 알고있습니다) 되고, 많은 과제가 뽑힌다.  이것은 많은 과제가 뽑히는 만큼 많은 경쟁자가 있으니 결국 똑같은 것이라고 볼수 있는데요.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10명중에 1등하는 것보다는 100명중에 10등안에 드는것이 훨씬 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평가자 자신의 학문분야와 관련이 없는 과제를 받았을때는 아무래도 그 과제에 대해서 평가가 안좋을 확률이 높다. 그 과제의 가치를 못 알아볼 확률도 높고, 자기 학문분야의 과제에 더 관심이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사를 전공하신 연구자가 10개 과제를 평가하는데, 1개 과제는 이탈리아사인거 같기도 하고, 이탈리아 문학인가 싶기도 하면 해당 과제에 관심을 갖고 평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보입니다. 이탈리아사 전공한 평가자에게 이탈리아사 50% 이탈리아 문학 50%인 연구계획서는 평가하는 데 흥미가 떨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평가요청학문분야를 제대로 선택함으로서 내 연구계획서를 제대로 된 자리에 두고, 적합한 사람에게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신청자의 계획대로 다 이뤄질수는 없지만, 내 연구과제(연구계획서)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특성이 무엇이고, 어떤 과제들과 어떤 학문분야에서 평가받을 때 선정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시로 든 과제가 이탈리아 역사에서는 흔한 내용이지만, 그를 주제로 한 문학의 관점에서는 새로운 과제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연구자가 제출한 심사요청 분야를 그대---로 적용하지는 않습니다. 평가하는 기관에서 전문가를 섭외하여, 분류를 다시하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이 과제는 이탈리아사 분야의 과제가 맞나요? 해당 분야 다른 과제랑 같이 분류해서 평가해도 될까요?'를 검증하고 분류합니다. 다만, 중간 어느지점에 있다면, 신청자의 선택이 분명히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분류하는 전문가도 '이건 무조건 이탈리아사야!'하는게 아니라면, 신청자의 선택을 고려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전문가조차 연구계획서의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지요.

결론을 이야기 하자면, 신청자는 연구계획서를 제출 할때에 이 과제가 어떤 학문분야로 평가 받아야 하고, 어떤 과제들과 묶일 때 돋보일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다른것과의 차별성 만을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차별성만 생각하게 되면, 당신의 과제는 평가자에게는 자신의 학문분야와 상관없는 재미없는 연구계획서가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