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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약시 Oct 13. 2022

10년을 사귀었는데 장거리가 4년이라고?

그런데, 4년간의 장거리가 우리에게는 큰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연애를 오래 했다. 오래 하려고 오래 한 게 아니었다.


그냥 하루하루 사귀다 보니 한 달이 넘어가고 100일이 넘어가더니 1000일을 넘기기 시작했고 그렇게 년도가 쌓이더니 10년 차가 되어버렸다. 그 안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헤어질만한 이유가 없었다. 남들은 헤어질만한 이유라고 하는 사건들도 있었는데 왜 우리에게는 그렇게 시답잖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우리 둘이 서로에게 얼추 잘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잘 맞는 인연은 아닌 것 같다. 객관적으로 따져봤을 때, 이렇게 오래 만났으면 싸움의 횟수는 줄어야 할텐데 오히려 최근에 더욱 다툼이 많아지고 있다. 큰 싸움은 아니지만 전에보다는 많이 다툰다. 우리가 이제야 서로의 입장이 비슷해져서 그런 듯하다.


10년간 특이한 연애를 지속했다. 우리는 장거리 연애를 오래 했다. 군대와 유학과 시험 준비까지 합치면 약 4년의 기간을 장거리 연애로 지냈다. 근데 그 안에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난 바빴다. 


그가 군대에 가있을 때,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으며, 대학을 다니던 때라 학생회 임원도 시작했었고, 대학교 동아리 회장에, 꼴에 아르바이트비를 더 벌어보겠다며 그 와중에 행정 장학생까지 신청했었다. 이 모든 것에 학점까지 놓치지 않으려 아등바등 하루를 버텨가니 남자 친구가 없음에 오히려 안심하기에 이르렀다. 지금과는 달리 그 당시에 군대는 핸드폰 반입이 불가했었고 우리는 주 1회 토요일 오전에만 전화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오히려 우리가 오래 만났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숙하지 못했던 나의 곁에 그가 있었다면 아마 엄청난 스트레스와 화를 감당하지 못해 감정을 마구 쏟아냈을 수 있다. 옆에 없었기 때문에 그 단계까지는 가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도 굳이 나에게 면회를 강요하거나 요청하지 않았다. 군인이 된 그가 할 수 있던 최대한의 배려였다. 그렇게 나는 나의 생활에, 그는 그의 생활에 완벽히 적응했다. 그렇다고 서로가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서로의 생활을 존중해서 강요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우리가 서로 보고 싶을 때는 면회를 가기도 하고, 휴가 때 같이 놀기도 했었다. 당연히 군인이었던 그는 나의 무자비한 활동에 살짝 불안해하곤 했는데, 정작 나는 고무신을 거꾸로 신거나 할 여력이 없었다. 저 많은 일들을 수습하는데 정확히 2년이 걸렸고 그가 전역해버렸다.


그간 나는 돌연 교환학생을 결정했다. 그냥 인생에 한 번은 해외에서 공부하고 살아보고 싶은데 혼자는 가기 무서웠다. 그래서 학교가 울타리가 되어준다니 냅다 신청하고 싶었다. 그가 전역하자마자 우리 사이는 교환학생이라는 또 하나의 시험대에 올라버렸다. 심지어 떠나는 나라는 남들이 다 가는 그런 곳도 아니었다. 지금은 유튜브의 영향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그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였다. 그 나라는 VPN을 켜야만 연락이 가능한 보안마저 엄격한 국가였고, 시차까지 있어 연락하기가 힘들었다. 심지어 비자에 문제가 있어 출국하면 다시 돌아와 학업을 마칠 수도 없던 상황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1년을 생이별했다. 그 당시 그는 나를 절대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왜 거기에 간 건지, 그럼 나는 지금도 대답한다. "그냥".


참 재밌는 연애다. 이런 장거리를 서로 아닌 누군가가 이해해줄 수 있을까? 이야기해보지는 않았지만, 당연히 서로는 서로가 헤어지게 될 줄 알았을 것이다. 근데 끈질기고 질긴 연줄이 이어져있는지 아직까지도 만나고 있다. 근데 신기한 건 이 위의 일화들을 우리에게는 정말 별거 아닌 소소한 일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오히려 저런 것보다 서로의 생활습관, 말투가 우리를 화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게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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