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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Sep 08. 2017

가끔 지난사랑에 안부를 묻고 싶은 날

영화 '시인의 사랑' 리뷰

'시인의 사랑' :) 2017년 개봉 / 김양희 감독 / 양익준, 전혜진, 정가람 주연


★★★


<SYNOPSIS>

지금 이 감정은 뭐죠?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마흔 살의 시인은

시를 쓰는 재능도, 먹고 살 돈도, 심지어 정자마저도 없다.

그리고 시인의 곁에는 무능한 남편을 구박하면서도

세상에서 그를 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

팍팍한 현실에서도 진짜 시를 쓰는 일이 뭘까 매일 고민하는 시인,

그리고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아내 앞에

어느 날 파도처럼 위태로운 소년이 나타나고, 시인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그 사람 생각이 자꾸만 나서요.




잘 지내요.

그래서 슬픔이 말라가요.


내가 하는 말을

나 혼자 듣고 지냅니다.

아 좋다, 같은 말을 내가 하고

나 혼자 듣습니다



나는 너를 이용했다.

3000만 원의 상금을 위해 너의 사랑을 샀다.

그렇게 생각하는게 편했다.


나의 사랑은 연민이었고,

나의 사랑은 동정이었고,

나의 사랑은 환멸이었다고.


그게 일상이 벅찬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이었노라고 확신했다.


결국 나의 오만한 확신은

차마, 안부조차 물을 수 없는 수많은 밤이 돼 돌아왔다.




내일이 문 바깥에도 도착한 지 오래되었어요.

그늘에 앉아 긴 혀를 빼물고 하루를 보내는 개처럼

내일의 냄새를 모르는 척합니다.


잘 지내는 걸까 궁금한 사람 하나 없이

내일의 날씨를 염려한 적도 없이

오후 내내 쌓아둔 모래성이

파도에 서서히 붕괴되는 걸 바라보았고

허리가 굽은 노인이 아코디언을 켜는 걸 한참 들었어요.

죽음을 기다리며 풀밭에 앉아 있는 나비에게

빠삐용, 이라고 혼잣말을 하는 남자애를 보았어요.



시인은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라

습관처럼 말하면서도

나는 너를 대신해 울어줄 순 없었다.

너의 눈물은 곧 나였으니까.


"사는데 사랑이 전부는 아닐테니까"

내게는 사랑이 곧 진부한 일상이었으니

너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다만, 조금 더 짙어진 것뿐이라고

다만, 조금 더 생각날뿐이라고

다만, 조금 더 손을 뻗어볼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나의 삶이 너에겐 짐이었나보다.

끝끝내 내가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너에게 갔을 때,

너는 삶을 이유로 나를 떠났다.




꿈속에선 자꾸

어린 내가 죄를 짓는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아침마다

검은 연민이 몸을 뒤척여 죄를 통과합니다.

바람이 통과하는 빨래들처럼

슬픔이 말라갑니다.


잘 지내냐는 안부는 안 듣고 싶어요.

안부가 슬픔을 깨울 테니까요.

슬픔은 또다시 나를 살아 있게 할 테니까요.



네가 떠난 후에

꼭 마침표가 찍혀질 것만 같았던 내 삶도

꾸역꾸역 써내려져 갔다.


군데군데 쉼표는 있었지만,

자주 멈춰서야 했지만.

그렇게 너는 또다시 일상이 되었다.


내가 너와 사랑을 했을 떄

가장 두려운 게 있었다면,


그 언젠가 시간이 많이 흘렀을때

너를 예로 들어 위로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었다.

무척이나 담담하게,

마치 빛바랜 추억을 이야기 하듯


때로는 찬란하고, 이따금씩 눈물겹던

우리의 사랑이 함부로 아름다운 것이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사랑이 떠나가는가 보다.

그렇게 시가 쓰여지는가 보다.


나는 아직도 종종,

지난 사랑의 안부가 궁금하다.





김양희 감독은 영화도 시처럼 만드는 재주가 있다.


한 장면 한 장면에

은유와 직유를,

역설과 반어를 담았다.


지극히 친절한 결말이 조금 아쉽지만,

그 마저도 시가 주는 낭만이라 생각해야겠다.


양익준과 전혜진의 합이 매우 좋다.

양익준이 껄렁하게 건네는 대사에

전혜진이 알차게 받는다.


김양희 감독의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영화.

'시인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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