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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스 Sep 19. 2022

현실에는 없는 판타지

우영우 판타지

소위 기사감이 되는 사건들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곤란하고 안타까운 사연 전부가 기사가 되는 건 아니다. 극악무도한 강력 범죄가 아닌 다음에야 과거 사건의 연결고리나 최근 세태의 관련성 등 사회적 함의를 따라간다고 보면 된다. 세상을 등진 이들의 죽음 대부분은 한 줄의 기사로도 보도되지 않을 때가 많지만, 지난달 수원 세모녀 사건  달랐다. 나름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나라에서 생활고를 겪다 숨진 이들은 8년 전 서울 송파구 세모녀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2014년의 비극이 반복된 것이다.



최근 서울 강서구 서진학교를 취재한 건 이러한 연장선에 있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의 성장기를 그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리에 종영했다. 덕분에 사람들은 굳이 공부하지 않아도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문을 연 다음 셋을 세고 다른 공간에 들어간다거나(낯선 공간에서 적응할 물리적 시간을 주기 위함) 아침, 점심, 저녁 모두 같은 메뉴로 식사하는 모습(본인의 루틴을 깨지 않고 안정된 상태를 지속하기 위함)이 그 예다. 발달장애인 주인공의 성공에 열광하고 그의 사랑을 진심으로 응원했던 사람들, 내 취재의 첫 단추도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장애인 학교를 짓게 해달라고 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호소하던 그 학교, 서진학교를 다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직접 가보니 학교는 생각보다도 더 빨리, 그리고 안정적으로 지역사회에 안착했다. 주민들이 우려했던 집값 하락 없었, 지난해엔 서울시 건축분야의 최고 권위상인 건축상도 받았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하교할 때 아쉬워하는 학생들의 표정을 보고 어느정도 짐작했었지만, 교장선생님께서 자랑하는 일명 ‘서진학교 모닝콜’은 다른 학교에선 찾아볼 수 없는 문화다. “너 서진학교 가기 싫구나? 안 깨워야지?”하면 자던 아이도 벌떡 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지난 2017년 당시 기꺼이 자신들의 무릎을 내었던 어머니들을 찾아나섰다.


판타지죠. 그래도 우영우한테 너무 고마워요.
우영우를 보다가 현실에서 자폐인을 만나게 되면
사람들이 훨씬 더 우호적으로 대할 것 같거든요.

어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우영우가 사는 행복한 나라는 판타지에 가까웠다. 서진학교에서 차로 10분 거리에선 여전히 장애인과 비장애인 복합문화시설 어울림플라자 설립을 놓고 수년 째 지역주민과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은 그래도 공사 첫삽이라도 떴지, 아예 무산된 곳들도 있다. 현실 속 우영우들에게 드라마는 아직 머나먼 얘기가 맞았다. 장애인 부모가 무릎을 꿇고 호소해야 겨우 학교 하나 들어설 수 있는 사회, 그게 2022년 대한민국이다.



무릎까지 꿇으면서 호소해서
편견들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거예요.
이젠 정말 절망스럽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어머니의 담담한 목소리가 그 어떤 말보다 아팠다. 그간 마음 속에 얼마나 많은 생채기들이 있었을까. 인터뷰 도중 울컥한 순간들이 많았지만, 결국엔 눈물을 참지 못했던 어머니의 말이 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저희 아이보다 더 오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거든요. 근데 자기 자식이 먼저 하늘나라 가기를 바라는 부모들은 없잖아요. 저희 애가 장애 아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바라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게 정상적인 사회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5년 뒤에 혹시 기자님을 다시 만나서 인터뷰할 기회가 된다면 “아, 기자님 그때는 제가 저희 아이를 두고 어떻게 죽나 생각했는데 이제는 한 쪽 눈은 감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드디어 그런 세상이 되었네요.” 하고 꼭 그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꼭 다시 만나 뵙겠다고 약속했다. 당장 오늘만 해도 기자일 못해먹겠다고 욕을 하고,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푸념하는 생계형 기자일지라도 앞으로 5년은 더 해야겠다. 다른 건 제쳐두더라도 그 약속만큼은 꼭 이뤄지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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