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까의 뜬금없는 영화 리뷰 - 02
<주먹왕 랄프 2:인터넷 속으로>는 전작 <주먹왕 랄프>와 비슷하면서도 달라진 부분이 많은 후속작입니다. 디즈니의 작품들이 가지는 공통된 장점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아주 쉽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잘 만들어진 캐릭터가 중요하고 맞아떨어지는 개연성이 필연적입니다.
전작 <주먹왕 랄프>는 이러한 장점을 살린 평작 이상의 작품이었지만 후속작인 <주먹왕 랄프 2:인터넷 속으로>는 아쉽게도 그러하지 못하였습니다.
해당 리뷰는 <주먹왕 랄프2:인터넷 속으로>와 전작인 <주먹왕 랄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는 리뷰입니다. 이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이 작품이 의도한 메시지는 너무나도 명확합니다.
“보다 성숙한 관계란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다.”
<주먹왕 랄프 2:인터넷 속으로>는 이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말 그대로 아등바등거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구멍 난 설정과 부족한 개연성으로 인해 관객을 설득하는데 실패합니다.
<주먹왕 랄프2>는 시작한 지 10분도 안되어서 전작의 설정을 스스로 깨부숩니다. <주먹왕 랄프>의 세계관은 오락기 속 게임의 캐릭터들이 각자의 게임 속에서 살아가며 낮에는 오락실을 방문한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모여 휴식을 취하는 설정이었습니다. 이 규칙은 지켜지지 않으면 자신들의 게임의 플러그가 뽑혀, 게임이 없어질지도 모르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자신들의 게임의 플러그가 뽑힌다는 것, 자신들의 게임이 없어진다는 것은 그들이 먹고 자고 일하며 존재하는 세상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게임의 플러그가 뽑히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게임이 없어지면 그야말로 갈 곳 없는 난민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게임 속 캐릭터들은 이를 철저하게 지키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주먹왕 랄프 2>는 이러한 설정을 까맣게 잊었는지 랄프가 오락실 영업시간 중에 자신의 게임을 이탈하여 바넬로피의 게임인 '슈가러시'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설상가상으로 바넬로피는 이제 자신의 게임을 지겨워하고 있습니다.
바넬로피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6년을 같은 트랙을 달렸고 심지어 자신은 짧은 거리를 순간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레이싱 게임인 '슈가러시'에서는 그야말로 사기성 캐릭터입니다. 경쟁자도 없고 매일매일이 반복일 뿐인 하루... 바넬로피가 지루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지루함을 느끼는 바넬로피와 그런 바넬로피를 즐겁게 해주고 싶은 랄프의 행동으로 '슈가러시'는 플러그가 뽑힐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부터 영화는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영화의 스토리가 진행되며 나타나는 ‘갈등’과 ‘사건’을 <주먹왕 랄프 2>는 러닝타임 내내 억지로 만들어냅니다. 마치 ‘랄프와 바넬로피가 인터넷 세상으로 들어가야 한다.’라는 상황을 먼저 만들어 놓고 방법을 고민하다가 자연스러운 스토리를 생각하지 못한 채 전작의 설정과 개연성을 무시해가며 억지로 '슈가러시'의 핸들을 부숴버린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이 영화의 이야기 진행은 계속 이런 식입니다. 결과를 먼저 생각해놓고 상황을 뒤에 억지로 붙이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러한 전작의 설정 파괴와 억지로 진행되는 이야기 전개가 이 영화의 첫 번째 단점입니다.
두 번째 단점은 영화 속 주연 캐릭터들이 가지는 매력의 부재입니다. <주먹왕 랄프>에서 랄프는 좀 모자란 부분이 있어서 온갖 사고들을 만들어내지만 바넬로피를 챙겨주는 착한 마음씨와 영화 후반부에 내면의 성장을 이뤄내며 자신이 벌인 일들을 수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바넬로피는 캔디킹의 계략에 빠져 온갖 부당한 대우를 받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상황을 이겨내려는 모습들을 보여주었지요.
하지만 <주먹왕 랄프 2>에서 랄프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주변을 살펴보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사고만 치고 다니는 집착남으로 그려지고, 바넬로피도 ‘레이서가 16명이나 있으니 내가 없어도 괜찮을 것’이라는 자신만의 가설로 '슈가러시'의 공주라는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니, 공주를 넘어서 1편 마지막엔 입헌 민주주의를 통한 대통령이 되지 않았었나요? 물론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모습은 바람직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본인이 현재 지고 있는 책임을 등한시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두 주연은 전작에 비해 매력이 크게 떨어지고 기억에 남는 것은 걸크러시를 보여준 ‘섕크’와 ‘디즈니 공주님’ 들 뿐입니다.
세 번째 단점은 악역의 부재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악역’을 주인공인 랄프가 동시에 맡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전작과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랄프의 생각 없는 행동으로 '슈가러시', 더 나아가 오락실 세상에 위기를 맞이한 것과 이번 작품에서 인터넷 세상에 위기가 온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랄프는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캐릭터입니다. 그렇다면 왜 전작과 비교해서 이렇게까지 랄프가 답답해 보이는 것이었을 까요. 답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악역’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작에서 랄프는 어딘가 모자라고 생각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자신도 피해자였습니다. 같이 게임을 만들어감에도 불구하고 나쁜 역할이라는 이유로 온갖 차별을 받고 있었고 거기서 그의 무리수들이 시작되었습니다. 때문에 그러한 모습들은 나름의 사유를 가지게 되었고 관객들을 ‘저 상황이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납득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절대적인 악역 캔디킹으로 인해 비난받을 수 있던 랄프의 행동들은 희미해져 가고 결말에 이르러 관객들은 ‘나쁜 캐릭터’ 목록에서 랄프를 지워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명확한 메시지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선역’과 ‘악역’의 구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전작에서 랄프는 다소 부족하지만 분명한 ‘선역’이었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주먹왕 랄프 2>에서는 그러한 절대적 ‘악역’이 없기 때문에 랄프가 벌이는 모든 사고들에 대한 관객의 분노와 갑갑한 마음이 주인공인 ‘랄프’에게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애당초 캐릭터와 스토리의 빌드업이 잘못되어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쯤 되면 관객은 영화에 대한 몰입이 깨지게 되고 머릿속에서 ‘도대체 영화의 결말을 어떻게 포장할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결국 두 주인공은 아름다운 결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든 갈등이 해소되고 갑갑했던 랄프가 보기 좋게 포장될 것이라는 결말을... 하지만 이 영화는 그 포장에 처참하게 실패합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영화 속 갈등은 억지 투성이고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심지어 랄프의 이미지는 그냥 이기적인 집착남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클라이맥스에는 마치 좀비물과 킹콩을 연상시키는 엄청난 무리수를 투척하기에 이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시각적으로 혐오감을 느꼈어요.
이러한 끔찍한 빌드업 끝에 기다리고 있는 갈등의 해소법은 그냥 말로 우정과 관계에 대해 설명하는 것입니다. 네, 믿기 힘들 수 있지만 정말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저는 이 영화가 ‘결말’과 등장시킬 ‘디즈니 IP’들을 먼저 정하고 스토리를 마치 기워 붙이듯이 만들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킹콩 같은 장면도 넣고 싶고, 디즈니 IP도 쓰고 싶고, 결말 즈음 가서 극한의 상황도 만들고 싶고, 좋은 메시지도 넣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은 다 넣었는데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지? “그냥 대사로 해결하자!” 이렇게 완성된 스토리로 느껴집니다.
랄프의 좀비들이 합체해서 만들어진 거대 킹콩 같은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게 “우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야.” “진정한 우정은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야.”라고 말로 설명하는 것이라니... 놀랍게도 이 대화에 감동했는지 최종 보스인 거대 바이러스는 웃으며 하늘로 승천합니다.
이 장면에서 대사는 훌륭했습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지금껏 ‘악역’을 같이 수행해온 랄프의 입에서 나오니 설득력과 전달력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빌드 업을 그렇게 엉망으로 쌓아놓았으니 마지막에 ‘좋은 메시지를 대사로 하는 것’만으로 여태껏 엉망이었던 장면들이 포장될 리가 없습니다. 당연히 그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전달될 리도 없지요.
이 영화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단점은 랄프와 바넬로피가 돈을 버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들은 본인의 잘못으로 핸들을 부쉈고, 본인의 실수로 핸들 값을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올려버렸습니다.
그렇게 자신들의 실수를 수습하는 과정인데, 돈을 버는 방식이 처음에는 ‘도둑질’이고 그다음은 버즈튜브에서 다른 사람들의 콘텐츠를 베껴 영상을 올리는 방법입니다. 심지어 버즈튜브 관리자는 이들을 돕기 위해 불법 팝업까지 동원합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며 그러한 옳지 못한 방식으로 번 돈은 잘못이라고 영화에서 말해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런 묘사는 나오지 않습니다. 랄프는 자극적인 영상으로 돈을 버는 것에 ‘성공’했고 어떠한 문제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표현된 것은 기껏해야 ‘악플은 나빠요.’ 정도? 심지어 그동안 랄프가 보여준 모습 때문인지, 악플에 상처 받는 랄프가 조금도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과연 이것이 디즈니의 영화로서 적절한 내용이었는가 의문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뛰어난 상상력으로 묘사한 것은 분명한 장점입니다. 특히 랄프와 바넬로피가 이베이를 검색해서 이동하는 중에 보이는 풍경은 너무나도 정교하고 압도적이어서 눈이 절로 휘둥그레집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이용하는 모습, 우리가 현실에서 사용하는 SNS에 대한 묘사는 정말 훌륭합니다. 랄프가 우뚝 서있는 구글 빌딩을 보며 ‘고글을 살 때는 저기로 가면 되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깨알 같은 웃음을 줍니다. 또한 검색엔진인 노스모어에서 일하는 캐릭터로 자동완성 기능을 표현한 장면은 이 영화의 디테일과 유머를 대표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디즈니의 IP를 활용한 장면들 역시 재치가 넘치는 것들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디즈니이기에 가능한 장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나열한 이야기와 갈등 구조에서 보여주는 수많은 단점들로 만들어진 짜증이 이 영화의 장점들을 뛰어넘는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디즈니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말 그대로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보기에는 넘치는 볼거리와 전달하는 메시지가 올바르고, 어른들이 보기에도 유치하지 않고 오히려 아는 만큼 더 재밌게 볼 수 있으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그리고 아쉽지만 <주먹왕 랄프 2:인터넷 속으로>그러하지 못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주먹왕 랄프 2:인터넷 속으로>의 평점은 10점 만점에 4점입니다. 추상적인 인터넷 세상을 구체화시킨 상상력은 훌륭했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좋은 것이었지만, 부족한 이야기 전개로 관객을 설득하는 것에는 실패했다고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