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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Nov 25. 2020

나는 왜 찐따가 되었나

평범한 날의 심심한 깨달음

“찐따 같아.”

오랜만에 만난 한 친구와의 대화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기분이 나빴다. 집에 돌아오며 생각했다.

 ‘찐다 같은 게 뭐지?’


구글에 [찐따]를 쳐봤다. 이렇게 나왔다.


찐따는 '어수룩한 사람', '찌질한 사람',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는 비속어이다.


읽으면서 ‘나 같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기에도 나는 아직 어수룩해 보일 정도로 순진한 면이 있고, 순수성을 지키고 싶은 영역이 있으며, 이것 때문에 어떤 사람들 틈에선 재미없는 사람이 된다.


친구는 그냥 농담으로 혹은 말버릇으로 말했을지 모르나 어쨌든 내 정곡을 쿡 찔렀다. 맞다. 나는 ‘찐따’다.


그렇다면 나는 왜 찐따가 되었나. 왜 쿨하고 fancy한 사람들처럼 잘 놀고 현재를 즐기지 못할까.


우선 두렵다. 새로운 인간 종족들을 만나 새로운 사건 속에 나를 던져놓고 그 리스크를 감당하는 게 두렵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가보지 않았던 장소를 가고, 새로운 세계관에 나를 던져놓았을 때 생길 수 있는 예측불허의 불운들이 무서운 것이다. 혹여나 생길지 모르는 불운들을 해결하려면 시간을 내고 자본을 들여야 할 텐데... 그러기엔 지금 내 삶도 빠듯하다. 너무 바쁘다.


이미 ‘연기’를 하기 위해 지난 몇 년간 나는 꽤 큰 리스크를 감당해왔다. 돈도 많이 썼다. 빚도 생겼다. 몸도 마음도 많이 소진했다. 그래서 또 다른 자극들을 받아들일 여유가 나지 않는다. 해야 하는 데 아직 못한 일도 한가득이다. 프로필도 다시 찍어야 하고, 에이전시도 돌아야 하고, 독백 영상도 더 찍어보고 더 많은 곳에 지원하고 나를 알려야 한다.


써놓고 보니 못내 아쉽다. 나에게 돈이 좀 더 있었더라면 조금 더 시간을 낼 수 있었을까. 색다른 세계관을 맞닥뜨릴 여유가 내 안에 생겼을까. 결국 자본주의 하에서 고군분투하는 나이기에 결국 ‘자본의 문제’로 모든 것을 귀결시킬 수밖에 없는 나다.


쿨내 진동하고 욕구와 욕망에 솔직한 사람들 틈에서 나는 할 말이 별로 없다. 내 욕망이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연기 잘하는 것, 무대 위에서 진짜의 순간을 만나는 것, 훈련된 몸과 마음을 가지는 것... 돈을 많이 버는 것, 알바를 하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는 것, 내 공간을 가지는 것, 해외여행을 자주 갈 수 있게 되는 것, 가격을 안 보고 옷을 살 수 있게 되는 것... 이런 것들이다.


쿨하지도 화끈하지도 않은 욕망을 가진 나는 한동안은 비웃음 당하는 삶을 면치 못할 것 같다. 어쩌면 평생 동안 그럴지도. 어쩌겠는가. 이게 나인데.

그냥 쿨한 사람이 되기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저염식 식사 같은 심심한 내 취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신건강에 더 이로울 것이다. 동시에 찐따 같은 내 욕망을 이루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겠다. 혹시 아는가... 심심한 내 욕망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그 어떤 것보다 화려하고 황홀하고 뜨거울지.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누군가 쿨하게 봐줄지.


2020.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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