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ID: 이핀
안녕하세요, 이핀입니다.
'IDeal'이라는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기에 앞서, 마지막 에필로그 글에서는 저의 이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필로그 글의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동안 진행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잠시 얘기하려고 합니다. 우선,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것은 거창한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추상적인 개념인 '이상'에 대한 저의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이상적인 사람들이 가진 자신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살펴보고, 그리고 이러한 요소에서 비롯된 고민들이 있다면 나누고 싶은 개인적인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이상적인의 의미를 가진 'IDEAL'에서, 앞의 ID를 더 강조하고자 'IDeal'로 정했습니다. 5분의 ID가 부제목으로 들어가 있었던걸 쉽게 확인하실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익명의 ID로 자신의 이야기를 편안한 환경에서 풀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ID를 강조함으로써 정체성을 의미하는 'identity'라는 단어 또한 드러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좋은 계기로 이 프로젝트를 작게나마 실현하게 되어서 기쁜 마음입니다.
무엇보다도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흔쾌히 참여해 준 5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꺼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기회로 여기고 많은 얘기들을 나누어주셔서 덕분에 많은 것을 느끼고, 또 배웠습니다. 혹여나 이 프로젝트 글을 마지막까지 읽어준 분들이 있으시다면 그분들께도 너무나 감사한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최근에 세미나를 통해 배웠던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하는데요. 여러분은 '자아이상'과 '이상적 자아'의 차이를 아시나요? 슬라보예 지젝은 "'이상적 자아'는 주체의 이상화된 자기 이미지(스스로 되고 싶은 모습, 타인이 그렇게 봐주기를 원하는 모습)이고, 반면 '자아이상'은 내가 내 자아 이미지 속에 새겨 넣고자 하는 응시의 작인으로, 나를 감시하고 나로 하여금 최선을 다하도록 촉구하는 대타자이자 내가 따르고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자아이상은 스스로 생각하고 원해서 만들어낸 이상인 반면에, 이상적 자아는 타인이 바라는 것을 마치 자신의 이상향으로 간주한 형태인 것이죠. 모쪼록 많은 분들이 본인의 '자아이상'을 실현해내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합니다. 지금까지 프로젝트 'IDeal'을 지켜봐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저는 굉장히 이상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전 예전부터 '인권'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가치인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것이라고 여겼거든요. 그래서 고등학생 때 과제나 프로젝트를 하면 무조건 인권 관련 주제로 탐구했던 기억이 나요. 돌이켜보면 이렇게 인권에 관심을 두고 여러 활동을 하면서, '추상적이다'라는 느낌이 꽤 많이 들었어요. 뭔가 아무리 공부하고 탐구를 해도 해결 방안이 뚜렷하게 나오지 않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올해 여러 세미나에 참여하게 되는 좋은 경험을 했는데, 그때 세미나에서도 인권 관련 주제가 나오면 제가 참 이상적인 사람인 게 느껴지더라고요. "인권 보장은 어떠한 문제의 뚜렷한 해결 방안이 되지 못한다,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현대 사회의 흐름이다"라는 말을 생각보다 많이 듣게 되었어요. 그런 마음이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의 대부분일지언정, 제가 이 가치관을 포기하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웃음) 여전히 저는 가끔씩 사람들이 3초만 더 고민하고 배려하면 이 세상의 문제는 다 해결될지도 모르겠다는 희망도 가지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것 같긴 한데, 저는 가족들을 우선적으로 여기는데요. 친구들이랑 약속을 잡을 때도 가족과 같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면 대부분 가족들이랑 있는 걸 택해요. 그리고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데에도 가족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는 걸 최근에 친구랑 대화하다가 깨달았어요. 가족들이 저한테 무언가를 강요하는 타입은 절대 아닌데, 제가 외동이라 그런 건지 전 제가 내리는 모든 결정에 있어서 스스로 가족을 고려하더라고요. 예를 들면, 진로를 결정할 때도 이 직업에 대해서 가족들이 어떤 반응일까?라는 걸 암묵적으로 고려한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신기했어요. 지금까지 전 제가 하고 싶어서 이런 선택이 도출된 거라고 믿었는데, 무의식 중에 가족을 의식하면서 선택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냥 어릴 때도, 성인이 된 지금도 제게 믿고 맡겨주시는 편이니 스스로 부모님이 실망하시지 않을 선택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대부분 제가 원하는 것과 부모님이 바라는 쪽이 비슷해서 별 마찰은 없는데,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런 가치관이 어떻게 되어갈지 혹은 변하긴 할지는 의문이네요. 이게 이상적이라고 느낀 까닭은 요즘 많은 친구들이 부모님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은 다른 것이니,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전 여전히 제 선택과 부모님의 의견을 결부해서 생각하니, 가치관이 다소 다르다는 걸 최근에 많이 느꼈어요. 물론 부모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건 아니고, 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부모님은 어떻게 느끼실까? 라며 그 반응을 고려하는 거라 간접적이긴 하지만요.
- 원래부터 가진 성향이기도 하지만 '인권'이라는 것을 저의 가치관으로 삼게 되면서 제가 더 타인을 공감하고 배려하게끔 만들었던 것 같아요. 가끔 지나칠 정도로 상대방을 배려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걸 진심으로 싫어하고, 저를 희생해서라도 다른 사람이 상처 안 받게 하려고 노력해요. 그 사람이 이 얘기를 들으면 어떨까? 하면서 말하기 전에 최대한 신중하게 고민하고, 행동도 조심하려고 해요. 물론 제가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일 때도 있어서 마음대로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요. 부모님이 "이렇게 배려하면서 살면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래!"라는 말을 자주 하셨어요. 그래서 가끔 너무 배려하다가 제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도 많았는데, 지금은 저를 챙기면서 잘 지내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가치관도, 정체성도 다 이상적인 사람일지도 모르겠네요.(웃음)
또, 언젠가 사람들의 인권이 원활히 보장되게끔 일조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정책이나 제도의 중요성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요. 무슨 문제든 구조적인 흠결을 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방식으로 다양한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위치에서 일을 하고 싶습니다.
- 제게 가장 영향을 많이 주었던 철학자는 니체와 아도르노였어요. 니체의 경우는 제 가치관과 관련해서 영향을 받았고, 아도르노는 제 관심분야와 밀접한 학자라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문구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된 니체의 철학은 제 삶의 가치관을 확립하는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니체는 고통과 악을 극복할 수 있는 궁극적인 방안은 오히려 자신이 겪는 고통과 악을 자신의 삶과 힘에의 의지의 고양을 위해서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결국, 지상의 ‘운명’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사랑하는 자가 바로 강한 인간이라고 표현한 것이죠. 그래서 저는 앞으로 주어진 상황 속에서 스스로 문제를 직시하고 극복하여 성장의 발판으로 만들겠다는 가치관을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아도르노의 경우는 그가 말한 '대중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아도르노가 이야기한 것인지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질서(동일성)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예술이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저는 평소에 독립영화를 비롯해서 영화, 드라마 등 많은 작품들을 즐겨봐요. 그리고 이런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난 뒤에 주변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작품에 대해 깊게 들여다보는 걸 좋아해요. 또, 뮤지컬도 굉장히 자주 보는 편이고, 관심 있는 전시회가 있으면 관람하고, 책도 되도록 자주 읽으려고 하는 편이고요. 전반적인 대중문화 및 예술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문화의 힘이 그 무엇보다도 강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문화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주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고요. 그래서인지 아도르노가 말한 대중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그가 대중문화가 자본주의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는데, 그렇다면 이미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현재의 시점에서 대중문화의 긍정적 영향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책 중에서 가장 영향을 받았던 책을 꼽아보자면, '주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있어요. 사실 니체의 철학을 가치관으로 삼고 나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보니, 우왕좌왕할 때도 많았던 것 같아요. 근데 이 책에서 자신의 가치관이 영구적인 것이라고 여기지 않고, 필요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바꿔가며 자아를 확립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굉장히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저는 무조건 가치관이 생기면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평소에 있었는데, 계속 생각해보니 앞으로 살아가면서 변화를 거치며 가치관이 바뀔 수 있을 테고, 그럼 그런 과정이 모두 자아 확립과 같은 선상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생각의 변화도 생겼고,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 뚜렷하게 이상적인 가치관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외부활동을 할 때 제 가치관과 밀접한 것들로 선택하는 것 같아요. 문화 진흥 및 공공외교와 관련된 대외활동도 해보고, 인문학/철학과 관련된 장학재단에서 최근에 활동도 했어요. 그렇게 제가 관심이 있어도 대학에서는 채울 수 없었던 요소가 있으면, 외부에서 채우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활동을 해가면서 더 깊이 있게 제 가치관을 다룰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았고,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니 제 얘기를 하는 게 더욱 편한 기분이 들었어요.
- 제가 가진 이상적인 가치관을 놓아버릴까 봐 겁이 날 때가 많아요. 그게 가장 큰 고민이고 제겐 어려운 일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저는 타인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라 그런지, 타인에게 영향을 많이 받아요. 그래서 주변에서 너의 이상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걱정이 많이 됩니다. 제가 긍정적인 말보다는 부정적인 말을 더 기억하고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 그런지, 이런 말들에 타격을 많이 입더라고요. 계속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결국 제가 스스로 가치관을 무너뜨릴까 봐 불안한 마음이 큰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그 무엇보다도 제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들이니까 잘 간직하고 있는데, 앞으로 현실 사회에 더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무너지지 않고, 지금처럼만 이상향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계속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으로 남아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 글쎄요. 아직까지는 해결 방안을 고민하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우선은 제가 많이 배우고, 지식을 쌓아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아무리 관심이 많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모르는 내용이 많은 느낌이에요. 그래서 계속 관심 분야에 있어서는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찾아보려고요. 그리고 제가 잘 모르는 분야일지라도 피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생각입니다. 박학다식한 사람이 좋잖아요?(웃음) 많은 것들에 지식이 있으면 언젠가 다 쓸모가 있을 테니까요. 사실 제가 원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덧붙이자면, 최근에 사르트르가 정의한 '지식인'에 대한 내용을 읽었는데요. '지식인이란, 자신과 관계없는 문제에도 상관하는 사람, 세계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 자신의 학문적 명성을 인간의 이름으로 사회와 기존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이걸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려고요. 저는 제가 꿈꾸는 이상향을 계속해서 간직하고 마침내 실현해내기 위해서는, 이렇게 지식을 쌓고,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을 옳은 방향으로 활용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저의 고민이 사라지리라 믿어요.
- 일단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타인보다는 저에게 집중하는 태도가 때로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누군가가 아니라고 반박할 때, 저의 생각을 뚜렷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장을 하려면, 제 말에 일리가 있어야 할 테니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것들이 필요할 것 같아요. 앞서 말한 것처럼 제가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제 말이 누군가에게 영향력이 될 수 있는 위치에 있거나 하는 방법이 존재할 것 같네요.
- 느리더라도 이상적인 사람들의 생각이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통해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연대의 힘'에 대한 고민이 해결이 된 듯해요. 가끔은 지배권력이 견고한데, 연대가 실질적인 해결수단이 되느냐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다른 분들께도 세부 질문으로 물어봤는데, 연대는 여전히 모든 해결의 기초가 되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도 지금까지의 인터뷰 내용을 보시면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과 연대를 할 용기를 가지셨으면 합니다. 저도 앞으로 용기를 낼 테니, 우리 함께 나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