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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ete Nov 20. 2018

나 이런 거 불편해


네덜란드 공항에서 갈아타는 날, 나는 점점 더 많아지는 한국 남자들의 등장에,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이 가라앉고 한숨이 나왔다. 다시 저 문화에 들어가야 하는 건가? 다시 저, 무례하고, 자신들이 어떤 사고와 행동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주류를 잡고 있는 문화 속으로....?


나는 남성을 혐오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남성을 좋아하고 아끼고 귀하게 여긴다. 내 주변엔 많은 남자사람친구들이 있고 나는 그들을 좋은 사람, 좋은 친구로 생각한다. 그러나 무례하고 권위주의적으로 나오는 한국 남성이 너무 많아서 그런 남성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반감과 불편한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남자사람친구들 중에도 부지불식 간에 그런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대강 넘어가는 편이다. 그들의 다른 좋은 점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점점 그들의 부지불식 간의 행동이나 말도 그냥 보아 넘어가기 힘들 때가 있다.


작은 예들은 이런 것이다. 나는 염색전문미용실에서 염색을 하곤 한다. 그곳엔 염색만 하러 오는 사람들이 늘 드나드는데, 개중엔 남자어르신들도 계신다. 여자어르신들이나 젊은 여성들은 앞에 사람들이 꽤 있다 하더라도 자리에 앉아 기다린다. 예약해서 가도 되고, 예약하지 않아도 기다려서 염색을 하는 동네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된다. 그러나 남자어르신들이 오면 그들은 "나 지금 저녁 약속 있어서 빨리 해야 하는데" "나 지금 애들이 와서 만나야 하는데" "지금 안 돼요? 빨리 가야 하는데"라는 말들을 한다. 문제는 사장님이신 아주머니가 너무도 친절하고 남을 배려하는 스타일이면서 상대가 불편해하는 것을 못 견디기 때문에 그렇게 안달을 하는 남자어르신들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이다. 아마도 아주머니 역시, 여자보다 남자가 불편하고, 그들이 급하게 재촉하는 것이 마음 불편하기 때문에 얼른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일 게다.


그렇게 해서 남자어르신은 나를 비롯하여 기다리고 있던 여성들을 젖히고 먼저 염색을 했다. 머리카락이 짧고(사실 뿌리염색이기 때문에 머리카락의 길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숱이 별로 없기 때문에 금세 한다고 아주머니는 구실을 대셨지만 나는 속으로 마뜩지 않았다. 그 어르신은 새치기 염색을 하면서도 이것저것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했다. 자신이 어느 모임에 가서 사회를 보면 아줌마들이 얼마나 까무러치며 웃는지, 거기에서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그 사회를 준비하기 위해 몇 시간을 공부하는를 묻지도 않았는데 이야기하고, 미용실의 안마의자에 앉자 이거 안마해봐도 되는지 묻고, 누구에게서 샀냐고 물으며, (사장) 아주머니 애인이 사준 것인지를 물었다. 그리고 (사장) 아주머니의 언니가 차를 드시겠냐고 묻자 "이쁜 여자가 타주면 뭐든 맛있지" 하며 마시겠다고 했다.


이런 것이다. 이런 것은 누구나가 싫어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인데, 아직도 이런 남자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새치기 염색까진 봐주겠는데, 점점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아저씨(실은 할아버지), 이제 그만 좀 하시죠. 그 말들 중 대부분이 성희롱인 걸 아세요? 염색도 새치기하셨는데, 좀 조용히 좀 합시다. 이게 바로 공기 오염이라는 거예요. 귀가 피곤하고 마음이 피곤해요"라고 하고 싶은 욕구를 가까스로 참았다. 그곳에서 사업을 하시는 나의 단골가게 사장님을 불편하게 해드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도 이제 마흔을 넘겼고,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여자는 사회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면 잘 어울리지 못한다. 특히 싱글은 어린 여성 대우를 받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할 때에도 싱글벙글 웃으며 애교를 떨며 상냥하게 말을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면 또 상대 쪽에서 못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그 말의 의도를.

오늘은 2kg짜리 강아지를 포대기에 싸서 안고 지하철 플랫폼 벤치에 앉았다. 스크린도어 공사 중인 역이었는데, 스크린도어 사고가 일어날까봐 관리요원들이 늘어서 앉아 있었다. 나는 훈련을 받은 관리요원들이라고 당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60대 정도로 보이는 관리요원 아저씨 한 명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강아지에게 계속 자신에게 오라는 손짓을 하거나 말을 시키거나 자신의 손을 핥으라고 손을 내밀었다. 스크린도어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벤치였는데, 그곳을 감시하고 관리할 사람이 오히려 지하철 승객을 불편하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럴 때 대부분의 개주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살짝이 웃으며 "우리 개가 이러이러해요"라고 우리 개를 귀엽다고 해주는 이에게 상냥하게 응수해주는 것이다. 그게 '이웃 간의 정(?)'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무례와 옛날 식의 '정'은 한끝 차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것도 하기 싫어졌다. 나는 감기 기운도 있고 아픈데 이런 감정노동까지, 그것도 자신의 할 일은 하지 않고 무례하게 다가와 가만히 있는 강아지에게 계속 질척대며 급기야 짖게 만드는 사람에게 상냥한 대꾸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응수를 하지 않으니 몇 분이나 강아지에게 말을 걸고 장난을 치고 싶어 하던 아저씨는 돌아가 자기 자리에 앉았다.


얼마 전엔 어떤 남성이 잡지에 쓴 내 글을 보고 한번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내가 쓴 글의 주제에 대해서 논의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맨 마지막에 "페이스북에서 검색을 해보면 제가 대략 어떤 사람인지 알 겁니다"라고 붙였다. 내가 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페이스북에서 검색을 해보아야 하나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어떤 사람인지 가서 한번 보고 돌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페이스북 메신저에 "000이시죠?" 하고 떴다. 나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페이스북 친구를 하고 싶지 않아 확인을 하지 않았다. 어쨌든 어떤 부분에 대해 논의를 하고 싶다 하니 6시 반에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그는 다시 연락을 해와서 6시 반이면 식사를 하고 올 거냐, 아니면 같이 할 거냐고 물었다. 점점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몸도 아파졌다. 시차적응도 안 되고 감기 기운도 있어 몇 주 후에 만나자고 답을 보냈더니 그는 이렇게 메일을 보내왔다. "제가 어차피 그곳에 갈 일이 있어서 그런데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하더라도 30분 정도 인사차 만나 커피를 하자"는 것이었다. 상대가 몸이 좋지 않고 아프다는데도, 만나본 적 없고 대화한 적 없는 사람이 몰아치며 만나자는 이 무례함.  


도대체 이 모든 불편함들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내가 20-30대만 해도 이런 것들을 불편해하면 안 되는 것들이라 생각해서, 나는 내 감정을 무시하거나 누르고 상대에게 맞추었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인데 무례하게 대해오더라도 웃으며 응대하고, 젊은 여성이라고 이상하게 말을 하며 다가오는 기혼자에게도 최대한 예의 바르게 행동하려 했다. 성희롱적인 발언을 하는 남자어르신들에 대해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때론 그게 성희롱인지도 몰랐었다. 그리고 더 어렸을 때라면 초면이라도 어떤 주제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니 그래도 잘 대면을 하자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참을 수 없다. 나는 나의 불편한 감정과 직관을 믿게 되었다. 아직까지 상대에게 대놓고 말을 하진 않지만(물론 더 심해지면 말을 한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되도록이면 거리를 두고 말아버리지만, 나는 나의 불편한 감정이 옳은 것이란 걸 이제사 알게 되었다. 불편한 건 불편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행동들이 어떻게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지 전혀 모르는 한국 남성들의 문화에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 아직까지 나는 잘 알지 못하겠다. 그러나 적어도 이젠 내가 어느 정도 정한 선에서 더 나아가면 조근조근 나의 입장을 펼쳐나가고 그것을 언어화하여 말할 수 있다.

어떤 행동들이, 어떤 말들이 무례한 것인지, 권위주의적인 것인지,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것인지 모르는 이유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도 자기 자신이 집안의, 또는 사회의 중심인 삶을 오래 살아왔기 때문이다. 지하철에 앉으면 상대를 위해 옆으로 약간 물러나는 사람은 내가 겪은 바로는 모두 여성이었다. 다리를 쩍 벌리고, 또는 넓은 자리를 그대로 차지하여 옆에서 불편해하거나 말거나 앉아 있는 사람은 내가 겪은 바로는 모두 남성이었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어가면 남자는 외롭댄다. 평소에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고 처신하니 외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남성들이 결코 이런 것은 아니다. 나는 일부 남성들이 이런 남성들로 인하여 무척 억울할 수 있음을 알고 있고, 무례한 여성들도 많을 것임을 인지한다. 그러나 이 땅에서 오랫동안 힘 없고 약하고 불편을 감내해야 했던 성별은 대체로 여성이었고, 그 여성들은 그런 상황으로 말미암아 기본적인 '배려'를 배워왔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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