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개인의 경험이며, 실명과 일부 디테일은 변경했습니다.
나는 유학생들 사이 소위 '명문 보딩'이라고 불리는, 미국 커넥티컷주의 사립학교를 졸업했다. 9학년부터 있는 학교에 10학년으로 들어간 나는 이미 형성된 친구 그룹 사이에서 방황하며 나의 자리를 찾으려고 애썼다. 밤 11시면 강제 소등되는 그곳에서 나는 외로웠고, 무서웠고, 자주 큰 압박감을 느꼈다.
자유로운 토론이 일상인 교실 이외 내가 가장 큰 해방감을 느낀 곳은 '블랙박스'라는 교내 공연장, 그리고 '트리하우스'라는 연극 선생님의 오피스였다. 입학하자마자 냅다 본 <12명의 성난 사람들> 오디션에서 전혀 경력 없는 나를 12명 중 한 명으로 뽑아주신 선생님. 연극이라는 맹렬하고 뜨거운 세계에 나를 발딛게 해 주신 그를 나는 은인이자 멘토로 여겼다.
'블랙박스'에서 리허설을 할 때는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카리스마틱하던 그는 '트리하우스'에서는 한없이 느긋하고 평온해 보였다. 나는 틈만 나면 '트리하우스'를 찾아갔다. Hi, how are you, 하고는, 내가 전날 대본을 외우다 느낀 감정, 또 연기가 내 인생에 불어넣은 생기에 대해 무작정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다. 그래도 별난 로이(가명) 선생님은 마찬가지로 별난 나를 다 받아주었다. 받아준 것을 넘어서, 함께 호탕하게 웃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로이 선생님이 게이라는 소문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처럼 받아들여져 있었지만, 내게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로이 선생님과 일대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로이 선생님은 내가 다른 학생들과 다르다는 생각에 힘겨워할 때, 단순히 다른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것이라는 확신을 주신 분이셨다.
로이 선생님의 연극에 참여한 지 2년 되던 해, 그는 인접한 기술학교 연극부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러 가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다. 그것보다 더 짜릿한 여름 방학 계획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버드 계절 수업 기간을 조정해 가며 나는 그와 열댓 명 되는 청소년들과 함께 메인 주로 떠났다. 눈부신 호수를 배경으로, 우리는 나무로 만들어진 캐빈에 지내며 매일 영화를 만들었다. 선생님과 함께 시나리오를 쓰고, 리허설을 하고, 촬영하며 나는 '이래서 내가 태어났구나' 하고 자주 생각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친구들과 호수에 뛰어들고, 함께 음식을 만들며 즉흥 연기를 하고... 우리는 서로의 (연기자 특유의) 솔직하고 개구진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서로를 점점 더 깊이 끌고 내려갔다.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그 해 여름은 내 인생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로 꼽힌다.
시간이 흘려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어느샌가 그리워진 모교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지정하는 선생님께 '우수 교사 상'을 수상하려고 하니 알려달라는 요청이었다. 내게는 최고의 선생님이 너무 많았다. 역사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려주신 페어리 선생님, 문과라고 생각한 내가 물리학을 제일 좋아하게 이끄신 무니 선생님, 천방지축인 나를 내내 지켜주신 콥 선생님... 그렇지만, 나는 이 분들이 이미 얼마나 많은 학생들에게 존경받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내 마음에 걸리는 아픈 손가락은 로이 선생님이셨다. 연극에 관심 없는 대다수 학생들 사이에서는 별난 게이 할아버지로 여겨지며, 교사들 사이에서도 종종 소외되는 것이 보였던 로이 선생님. 나는 그를 지정했고, 로이 선생님은 장문의 편지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 상이 얼마나 자신을 치유하고 자랑스럽게 했는지 표현해 주셨다. 내가 얼마나 뿌듯했는지 아직까지 기억이 난다.
그러나 2년쯤 후, 도저히 믿기 힘든 소식이 들렸다. 로이 선생님이 아동 포르노를 유통하고 소지한 혐의로 기소되었다는 것. 조금 지나서는 5년형을 받게 되었다는 것도.
상황을 이해하자 즉시 토할 것 같았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배신감이 울렁였다. 로이 선생님과 함께 웃고 울었던 모든 시간이, 내 자아의 한 부분을 빚어낸 그 풍성한 경험들이 흑백처리 된 후 검정 싸인펜으로 사정없이 망쳐지는 것 같았다.
그를 소아성애자라고 단정 짓고 나니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부분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와 갔던 여행에서 대다수의 멤버들이 남자아이들이었던 점, 그중 변성기도 오지 않았을 정도로 어린 친구도 있었던 점.
혼란스러워한 것은 물론 나만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로이 선생님과 오래 연극을 했던 동기들은 너도나도 페이스북에 자기의 생각을 공유했다. 로이 선생님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괴물이라는 친구도 있는 반면, 로이 선생님이 한 번도 행동으로 누구를 불쾌하게 한 적은 없으니 어느 정도 불쌍하게 봐야 한다는 친구도 있었다.
로이 선생님은 자기와 친했던 학생들에게 '옥중서신'을 보냈다. 나도 그 메일 리스트에 있었고, 그렇게나마 로이 선생님의 고백과 사과를 받았다. 이후 그는 특유의 활달한 문체로 감옥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 종종 업데이트하곤 했다. 나도 몇 개월 정도 관심 있게 읽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사람은 내가 아는 로이 선생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별난 것을 넘어서 악한 사람이었기에.
내게 별난 것이 아니고 특별하다고 말해주던 로이 선생님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나는 어느 날, 수신거부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