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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우 Aug 15. 2021

부산 로컬 푸드

전쟁과 가난이 나은 한국 현대사의 산 유물들

 나의 직업은 요리사이다. 서양 요리를 주로 하고 있지만 그 베이스를 주로 프랑스 요리에 두고 있다. 프랑스에서 나름 오랜 시간을 보냈기도 하였고 요리를 처음으로 배운 곳도 프랑스이기 때문이다. 사실 프랑스에서 거주하던 시절 매우 신기하게 생각했던 점 중 하나가 우리나라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듯 미식 산업 또한 수도 서울에만 주로 집중이 되어 있는 느낌이 강한데 프랑스의 경우 이름을 날리는 유명한 셰프들 중 자기가 태어난 고향에 가서 식당을 차리고 더욱 유명세를 얻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이다.


 기후학자 쾨펜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써 프랑스를 꼽은 것처럼 기후가 매우 다양하고 유럽의 최대 농업 국가인만큼 지역별 요리도 매우 다양하고 그렇기에 셰프들도 본인이 어릴 때 주로 먹고 자라던 지역의 요리에 더욱 강세를 보이는 듯한 인상을 크게 받곤 했다.


 같은 문맥으로써 나의 고향은 부산이다. 외가가 부산 토박이 이기도 하며 나고 자란 곳이 고기잡이 배들이 드나드는 항의 근처였던 터라 어릴 적 보고 자라왔던 게 지금의 요리사 인생에서 큰 자양분이 된다고 느끼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러면서 동시에 프랑스 셰프들이 자기 고향 음식에 전문성을 더욱 가지듯 내 고향 부산의 음식에는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를 찾아보던 도중 인문학적으로써는 참 씁쓸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이유인즉슨, 지금에서의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며 단군이래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조선말부터 근현대사적인 관점으로 너무나 힘들고 가난한 시기를 보내었고 부산의 로컬 음식들이 그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지금까지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하는 느낌을 진하게 받곤 하였다.


 그리하여 근현대사의 발자취가 묻은 부산 로컬 음식들을 예로 몇 가지 간단히 소개해볼까 한다.


1.돼지국밥


 6.25 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의 진두지휘 아래 인천 상륙 작전이 감행되기 이전 국군은 낙동강 이남만이 남아있는 절체절명의 시기 부산은 한국의 임시수도가 되게 된다. 그 와 동시에 수많은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몰려들게 되었고 그 결과 부산의 음식에는 지금까지도 전쟁에 의해 생겨난 음식들이 매우 많다. 국제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빔 당면도 가장 좋은 예 중 하나이고 자갈치 앞 회국수의 유래 또한 전쟁통에 먹을 게 없어 그 당시 흔하게 잡히던 가오리 회에다가 고추장과 국수를 넣고 비벼 먹은 게 지금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부산의 가장 대표적인 음식으로 꼽히는 게 사실 돼지국밥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지만 돼지국밥의 유래 또한 6.25 전쟁에서 나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함경도에서 흥남철수 당시 부산으로 피난을 왔던 피난민들이 미군 부대의 짬밥에서 남은 돼지 뼈를 우려내 젓갈을 넣고 쌀이 귀했던 시절이었기에 미군이 원조를 해주었던 밀가루로 밥 대신 국수를 만들어 넣어먹었다는 게 유력한 설 중 하나다. 

 실제로 함경남도 음식 중에서 성계탕이라는 음식이 존재하고 돼지국밥의 모태 버전으로 고려해볼 수 있는데 쇠고기나 소의 뼈를 주로 우려내어서 먹었던 남한 방식의 설렁탕과는 다른 돼지고기를 우려내어 국물로 먹는 음식이 존재한다. 영양학적으로 이는 매우 설득력이 있는 음식이라 볼 수 있는 게 실제로 매우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북유럽의 경우 소보다는 돼지를 가지고 음식을 해 먹는 경우가 매우 많다. 비교적 따뜻한 남쪽에 비하여 추운 겨울을 보내기 위해선 단백질보다도 지방을 더욱 많이 품고 있는 고기가 생존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2. 밀면


 밀면 또한 위의 언급했던 돼지국밥과 같이 6.25 전쟁에 의해 생겨난 부산 향토 음식이며 함흥냉면이 그 당시의 환경에 맞게 변형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한 음식이다. 애초에 부산에는 메밀이 구하기가 쉬운 식재료가 아녔으며 밀가루의 원조가 많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메밀면이 밀가루와 전분을 섞은 면으로 대체되게 되었고 국물 또한 돼지 국밥의 유래와 같이 미군이 먹고 남긴 돼지 뼈를 우린 육수가 밀면 국물의 베이스가 되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북한식 함흥 냉면과 부산식 밀면에서 맛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고 보인다. 흔히 더운 지방으로 갈수록 음식의 간이 세어진다고 하는데 그렇기에 밀면 또한 섬섬한 평양냉면을 떠올려본다면 맛이 훨씬 자극적이지 않나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돼지고기 수육이 올라가는 점 또한 큰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한편 냉면이라는 음식이 꼭 북한에만 존재했던 음식이 아니라는 것을 마무리로 언급하고자 한다. 조선시대 때부터 진주, 사천 쪽에서도 냉면이라는 음식이 존재하였으며 북한 냉면과의 가장 큰 차이를 꼽자면 고기 육수가 아닌 해산물 육수가 베이스였다는 게 가장 큰 차이라 할 수 있겠다.


3. 어묵


 부산의 특산물 중 하나를 꼽자면 여행을 오시는 관광객 분들이 가장 많이 사가는 먹을거리로써 어묵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요즘에는 브랜드화가 되어 백화점에서도 베이커리처럼 진열을 해놓고 파는 어묵 집도 생기는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을 해오고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듯 어묵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오뎅(おでん)에서 유래가 되었다. 사실 어묵을 언급하고 싶었던 것은 지금 우리가 먹는 어묵과 6.25 직후 먹었던 어묵의 형태가 꽤나 달랐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어획량이 훨씬 풍부했던 전쟁 직후의 시절 어묵의 형태는 지금의 어묵 반죽의 레시피에 비해 밀가루나 전분이 들어가는 비율이 현저히 낮고 생선 살의 양이 훨씬 많았으며 동그란 피쉬볼의 형태를 띄우고 있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어획량이 굉장히 풍부했고 무엇보다 지금처럼 냉장고 보급이 활발히 되지 않아 잡힌 생선을 보관할 방법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한다. 

 그렇기에 계절별로 반죽에 들어가는 생선의 종류 또한 매우 다양했으며 요리적으로 중요하게 보이는 점이 식용유를 비롯한 식물성 기름이 아닌 돼지기름 즉 라드(Lard)에다가 어묵 반죽을 튀겨 먹었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로 그 당시 돼지기름이 식용유보다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프렌치 요리사로서 지금의 기준으로 순수 돼지기름에 생선 반죽을 튀긴다는 건 가난의 음식보다도 오히려 별이 주렁주렁 달린 미슐랭 식당에서나 볼법한 매우 웃픈 상황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그 당시의 어묵 맛을 기억하는 어르신들의 말씀으로는 지금의 어묵 맛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말씀들이 많다고 한다.


4. 아구 수육


 표준말로 아귀라고 불리는 이 생선을 한국에서 먹기 시작한 지는 사실 역사가 매우 짧다. 아무래도 아귀의 생김새가 그렇게 호감형이 아니기에 먹을 엄두를 별로 내지 못했다는 설이 많다.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 정약용의 둘째 형인 정약전의 책 자산어보에서도 아귀를 먹는 방법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않음을 보아서도 위의 설에 어느 정도 무게를 실어준다.

 그에 비해 서양요리에서 아귀는 꽤나 고급 재료로써 여겨지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주로 꼬리 부분을 먹긴 하지만  스테이크로써도 매우 담백하며 수비드로 살짝 데친 후 버터로 마무리하여도 참 그 자체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생선인 듯하다. 동시에 아귀 간은 육지의 프와그라와 비교되는 바다의 별미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부산의 로컬 음식 중 하나인 아구 수육 (경남 지역에서는 아귀를 주로 아구로 부르곤 한다) 또한 가난에서 나온 음식이라고 보는 게 맞다. 어부들에게서 철저히 버림받는 생선 중 하나였지만 가난하던 시절 버리기에는 사실 너무나 아까운 생선이었고 반면에 육고기가 귀하던 그 당시 환경에 돼지고기 수육 조리법을 돼지 대신 아구로 대체하여 자갈치에서 생겨난 음식이라고 한다.

 비슷한 문맥의 음식을 또한 찾아볼 수가 있는데 지금은 가게가 2개밖에 남지 않았지만 남포동 광복동 사이 조그마하게 고갈비 골목이 아직 남아있다. 고갈비 또한 갈비를 먹고 싶으나 쇠고기가 귀하던 시절 쇠고기 대신 고등어를 갈비를 석쇠에 구워 먹는 방식으로 유래한 음식이라고 하기에 둘은 생겨난 성질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부산에 여행을 오시는 분들이나 부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조차 음식의 유래를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싶다. 꼭 유래를 알고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지만 한번 즈음은 이 음식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한번 알아보면 먹어보는 건 어떨까 한다.

 마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단순히 베토벤의 교향곡 중 하나로 써가 아닌 베토벤의 귀가 거의 완전히 멀어 초연을 하기 위해 자기 이외의 지휘자가 한 명 더 필요했었다는 점과 관현악 음악에 인간의 목소리가 최초로 들어간 인류 역사상 최초의 ‘pop’ 음악이라는 걸 알고 들었을 때 오는 감동이 더 진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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