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선샤인>잊어도 사라지지 않는 '마음의 지문'

기억은 평면인가, 입체인가?

by 느리게걷는여자

사랑하는 연인이 먼 길을 떠나기 직전, 등불에 비친 그의 그림자 윤곽을 벽에 따라 그린 여인이 있었다. 전쟁에 나서는 연인을 붙잡을 수 없었던 처녀는 사라질 존재를 선(線)으로라도 남기려 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 코린토스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지는 이 이야기는, 로마의 <박물지Naturalis Historia>에 있는 기록으로써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코린토스의 처녀’가 보여준 이 간절한 손길은 서양 미술사에서 회화의 기원이자, 인류가 발견한 가장 원초적인 '그리움의 기원'으로 회자된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2004)>은 바로 이 간절한 그리움, 그리고 기억의 본질에 관한 깊은 고찰이다. 이별의 고통을 견디다 못한 조엘(짐 캐리)은 연인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과의 추억을 강제로 지워주는 기억 삭제 서비스를 의뢰한다. 역설적이게도, 기계가 그의 뇌 속을 더듬어 사랑의 장면들을 하나씩 삭제해 갈수록 그는 깨닫는다. 지워지고 있는 것은 단지 아픈 상처가 아니라, 그 상처와 단단히 얽혀 있던 삶의 눈부신 무늬였다는 것을. 손에 잡히지 않는 연인의 기억을 선으로라도 붙잡으려 했던 코린토스의 처녀처럼, 조엘 역시 희미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사라져가는 연인의 실루엣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도주를 시작한다.


1. 우리는 왜 사랑을 평면의 추억으로 접어두려 하는가

기억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사랑에 깊이 침잠해 있는 순간의 우리는 온몸의 감각이 열린 '입체'의 상태다. 그 사람의 목소리에 섞인 미세한 공기층, 나를 바라보던 눈동자의 눈부신 떨림, 함께 걷던 겨울 길의 차가운 습도까지 전부 몸의 세포마다 스며든다. 그러나 이별이라는 거대한 가위가 찾아와 삶의 한 대목을 오려낼 때, 우리는 그 부피감을 감당하지 못해 기억을 겹겹이 접어 가두기 시작한다. 코린토스의 처녀가 벽에 가느다란 선을 남겼던 것처럼, 우리도 연인의 존재를 '추억'이라는 이름의 정지된 평면 풍경 속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고 마는 것이다. 그래야만 남겨진 자의 삶을 비로소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기억 삭제가 가동되자, 조엘의 내면에 쌓여 있던 입체적이고 생생한 추억들은 하나둘 빛이 바랜 조각이 되어 흩어지기 시작한다. 함께 누워 나누던 소곤거림이 깃든 침대는 모래알처럼 부서지고,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리던 거리의 가로등이 하나둘 꺼진다. 연인의 얼굴이 뿌연 연기처럼 흐릿해지는 망각의 풍경 속에서 조엘은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이 지금 지워내고 있는 것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는 것을. 한겨울 빙판 위에 누워 쏟아지는 별빛을 함께 보며 나누던 따스한 온기, 무채색이었던 자신의 생(生)에 가장 찬란한 빛깔의 붓질을 남겨주었던, 우주 그 자체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2. 잊어도, 잊혀지지 않는 '마음의 지문'

늘 구부정한 어깨로 낡은 일기장에 무언가를 적으며 자기만의 세계로 숨어드는 조엘에게, 클레멘타인은 무채색의 평면 같던 삶을 흔들어 깨운 유일한 원색의 입체였다. 삭제 작업이 깊어질수록 그는 무너져가는 기억의 잔해를 붙잡고 무의식의 가장 어두운 골짜기로 도망친다. "제발, 이 기억만은 남겨주세요!"라고 울부짖는 그의 절규는, 단순히 과거를 소유하려는 욕심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던 마음의 자리를 지키려는 인간의 가장 애틋한 생존 본능이다.


조엘이 무의식의 미로 속에서 연인의 흔적을 필사적으로 껴안듯, 우리 몸 또한 기억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길을 지나치다가 우연히 맡은 향수 냄새에서 오랜 시절 망각했던 누군가를 떠올리며 걸음을 멈춰 설때처럼 말이다. 기억이란 뇌에 저장된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우리 몸 구석구석의 세포에 깃든 '사라지지 않는 계절'이다. 조엘이 기억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는 클레멘타인의 손을 놓지 않으려 어둠 속을 달릴 때, 우리가 그와 함께 숨이 가빠지는 이유도 이와 같다. 기억의 실체는 지워질 수 있어도, 그 기억이 훑고 지나간 마음의 무늬와 결은 고유한 '마음의 지문'으로 남는다. 상처가 아문 자리에 흉터가 남듯, 사랑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보이지 않는 윤곽선이 우리 삶의 지도 위에 깊게 새겨지기 때문이다.


3. 다시 상처 입을 것을 알면서도 마주 서는 용기

영화의 끝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픈 이면과 끝내 가닿지 못했던 진심이 담긴 기억의 테이프를 함께 듣는다.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해도 결국 서로를 할퀴고, 실망할 것임을 두 사람은 예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응시하며 나지막이 건네는 한마디, “Okay.” 이 짧은 대답은 고통을 제거하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기꺼이 고통을 포함한 채 함께하겠다는 동의에 가깝다. 매끄러운 사랑을 꿈꾸는 대신, 투박하고도 입체적인 삶의 결을 기꺼이 껴안겠다는 선언이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기억은 희미한 선으로 남겠지만, 그 선 안에 무엇을 채워 넣을지는 오롯이 남아있는 사람의 몫이다. 추억은 캔버스 그림처럼 고요한 평면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눈을 감고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언제든 다시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입체가 된다. 조엘이 '기억의 삭제'를 통해 끝내 마주한 것은 자신의 영혼 깊은 곳에 남겨진 고유한 '마음의 지문'이었다.


빛의 세계에서 모든 색을 섞으면 결국 무구한 검은색으로 수렴하듯, 연인과 함께했던 찬란한 환희와 짙은 슬픔, 그리고 수많은 감정의 색채들은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의 그림자로 겹쳐진다. 벽에 그려진 검은 윤곽은 단순히 빛이 사라진 공백이 아니라, 우리가 나눈 모든 계절의 색깔이 가장 밀도 높게 응축된 사랑의 총합이다.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증거는 찬란했던 기록뿐만 아니라, 수많은 희노애락의 색이 섞여 내 마음의 벽에 선명하게 새겨진 짙은 그림자 윤곽 그 자체다.


지금, 당신의 벽면에는 어떤 실루엣이 흐르고 있는가. 지워내려 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번져가는 그 마음의 지문을, 당신은 기꺼이 사랑할 준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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