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침반이 다시 방향을 찾길
난 파워 J다.
무엇이든 결정이 되면 바로 실행을 위한 소요 시간을 역산해서 계획을 촥촥촥 짜는 편이고 그 계획에 따라 준비하는 것을 익숙하고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런 나의 성향은 나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일을 할 때는 거의 고문 수준이다. 그래도 이제는 제법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힘든 부분이 많긴 하다.
파워 J답게 난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매년 올해는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연초에 계획을 쭈욱 나열해 놓곤 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내 예전 노트북/데스크톱의 하드를 발견하고 예전 파일들을 열어보다 그때 나의 ‘버킷리스트’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80% 정도는 이미 이룬 상태였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내가 꿈꾸던 일들을 이루었다는 것보다, 그때나 지금이나, 십여 년의 세월의 간극이 있는데도 내가 원하는 것들이 꽤나 유사하거나 심지어 같았다는 게 소름 돋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이런 것들을 꿈꾸며 살아갔구나.. 를 느끼며 과거의 내가 얼마나 애써 살아왔는지 스스로 대견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내가 예전에 원했던 내 모습 중 지금 이룬 것이 뭐가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놀라운 포인트가 아래와 같았다.
1. 내가 중2 때 자기가 미래에 살고 싶은 집을 평면도로 그려오라고 했었는데, 그때 그렸던 집에 꽤나 특이해서 선생님께 지적 아닌 지적을 받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지금 내가 사는 집이 그때의 평면도와 매우 유사함을 깨달았다. 소오오오오름
(물론 지금 그리라면 절대절대 이렇게 그리지 않았을 거다)
2. 난 어릴 때부터 멋진 여자,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다. 그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다고 늘 생각하고 말하곤 했었는데, 웬걸...
난 요즘도 일 년에 서너 번은 여자 후배들에게
“선배님 너무 멋있어요.~”라는 얘기를 듣는 커리어우먼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때 내가 상상한 것만큼 멋지지 않다)
3. 성수선 작가를 좋아해서 “나는 오늘도 유럽 출장 간다”라는 책을 읽으며 나도 이런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해 왔었다. 되돌아 생각해 보니, 난 어쩌면 작가님보다 더 해외를 많이 다니며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이것 이외에도 소소하게 내가 꿈꿨던 많은 일들이 실제로 이루어진 현재의 나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버킷리스트를 쓰길 멈추기 시작한 후로 정말 신기하게도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멈추게 된 계기는 내가 꿈을 다 이루어서, 더 이룰 게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은 방향을 잃은 시기라 어떤 꿈을 꾸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꿈꾸기를 멈춘 내가, 이제는 다시 꿈을 꾸고 싶어졌다. 여전히 나는 지금의 내 삶에서는 어떤 꿈을 꾸어야 남은 삶을 살다 뒤돌아 봤을 때,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애쓰면서도 잘 살아오고 있구나. 란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나는 생기를 잃은 지 오래되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이 작은 시작이 내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내 나침표가 다시 방향을 찾을 수 있는데 불쏘시개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