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hee Aug 18. 2024

그리고 2025년이 되었다 12

Je m'appelle Sohee

미칠듯한 더위 속에서 하루에 샤워를 몇 번을 했다.

지난달 면접 차비로만 6만 원 가까이 나왔지만 어디에도 붙지 못했다.

면접들은 나쁘지 않았다고 당시엔 생각했는데 나보다 나은 (어린, 혹은 더 걸맞은) 지원자가 있었던 거라고 생각했다.


8월도 막바지인데 나는 가족들과 서먹서먹한 채 지내고 있었다.

오빠는 내 긴 구직생활에 피로를 느끼는 것 같고(그것은 집안 분위기로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빠는 전화통화로도 그동안의 파이팅을 주던 분위기와 다르게 ‘네가 몇 살인데 아직도 그러고 있냐’고 걱정이 뚝뚝 묻어났다.

나는 그들을 이해했지만 서운한 감정도 동시에 치솟았다.

그동안 십 수년을 경주마처럼 달려오다 고작 몇 달 잠시 쉬어갈 뿐인데.

그래. 수고했지. 그 한마디를 사실 나는 바랬을 뿐이라는 걸 문득 깨달았다.


그 주의 토요일. 그렇게 나는 하루종일 침대에 있었다.

약을 먹고 방이 어두컴컴해질 때까지 잠을 잤다.

내가 내일 죽을병에 걸렸다면 어떨까? 뭘 하고 싶을까?

같은 생각을 하다 보니 못하고 지나간 것들이 떠올랐다.

여행이 아니라, 유학이었다.

일본 유학을 준비했던 20대에 아빠는 행방불명이었고 오빠는 군대에 가있었다.

친구들은 워홀이라도 가라고 했지만 그때는 내가 사라지면 가족들은 이제 온전히 뭉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눈을 깜빡이면, 내일부터 당장 정해진 수명이 주어진다면 나는 학교를 안 간 걸 깊이, 깊이 후회할 거라는 걸 알았다.


일본어는 할 수 있었지만 학비가 비쌌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학비가 싼 프랑스 유학을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수많은 캡쳐를 하고 유학원들도 검색하고, 시간은 네모난 침대 위에 마침내 초침을 움직인 것 같았다. 달리의 그림처럼 늘어져 녹아있던 시간이 여전히 녹은 채 옆으로 바늘을 옮기고 있었다.


봉쥬, 위. 농! 메르시, 꼬망따레브? 쥬마펠 소희. 내가 아는 단어들의 전부다. 내 이름은 소희입니다.


저녁 약을 먹고 앉아서 기초 공부 학습지들도 보며 시간을 죽였다.

이 마음은 도피성일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알았다. 하지만 나는 간절했다.

학비가 저렴해도 돈을 모아야 했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라도 지원해야겠다 생각했다.

담배를 엄청 피우면서 울었다.

이전 12화 그리고 2025년이 되었다 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