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하는 것보다 어려운 끊을 수 있는 능력
공감 가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염없이 듣는 것만으로도 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특히 한마디 말도 꺼내기 힘들고, 한 문장도 노력하며 읽기 버겁고 싫은 날은 더욱 그렇다.
요조와 장강명 작가가 진행하는 '책 이게 뭐라고' 팟캐스트에 이서희 작가님(관능적인 삶, 유혹의 학교, 이혼 일기의 저자)이 나오셨다. 같은 여성으로 결혼 일기도 육아 일기도 아닌 이혼 일기를 쓸 수 있는 솔직한 작가님의 이야기에 정말 빨려든 듯 듣다가 마지막 문장에 후다닥 가방을 뒤져 만년필을 꺼내 적은 그녀의 말.
많은 경우에 우리는 익숙한 불행을 굉장히 안전하다고 느껴요. 미지의 어떤 것보다 익숙한 불행에 안정감을 느끼고 택해요. 그것을 끊을 수 있는 능력만으로도 사람은 뭔가를 결정할 수 있고 새로운 걸 시도할 수 있는 힘을 받아요.
대다수가 익숙한 불행을 굉장히 안전하다고 느낀다는 말은 메아리처럼 울리며 머리 끝까지 뾰족하게 다가왔다. 나는 얼마나 많은 익숙한 불행들을 불행 인지도 모른 채로 끌어안고서는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30대 초반 이건 제대로 된 사랑이 아니고, 끝내야 할 연애임을 알면서도 나이 걱정, 결혼 걱정에 남자 친구와 헤어지지 못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1년 넘게 고민만 하다 결국 용기 내어 이별했다. 익숙한 사람과의 평온했던 일상은 와장창 무너졌다. 하지만 그 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평온한(어쩌면 불행했을) 내 삶에 새로운 사람과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겨났다. 관계를 끊는 것은 시작보다 더 큰 결심이 필요하며, 용기로 끝내야 새로운 시작도 있다는 교훈이었다.
서른 즈음 울면서 적응했던 새 직장도 그러했다. 20대 때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영화사에서 지독한 야근에 시달리고 몸이 망가지면서도 쳇바퀴 돌듯 익숙한 반복 때문에 정신없이 돌아가며 끝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눈총 받는 백수라도 올해는 절대 일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마음으로 사표를 냈다. 이후 퇴직금을 들고 한 달간 스페인 여행을 떠나며 내 삶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졌다.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힘들게 끝냈던 일들은 결국 새로운 시작의 근간이 되어주었다.
난 오래전부터 'deep change or slow death' 문장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이 문장은 지금까지 내게 동경의 문장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만큼 내 삶을 뿌리까지 흔드는 변화에 취약하다. 사회의 기준, 타인의 시선, 가족의 의견에 따라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것이 안전하게 느껴진다. 엄마는 종종 내게 살면서 한 번도 속 썩인 적 없는 네가 가끔은 너무 대범해서 무섭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 말은 어쩌면 엄마는 내가 크면서 한 번도 속 썩인 적 없는 착하고 순종적인 딸로의 역할을 바라는 것 같단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 삶에 큰 변화를 필요로 하는 시점, 또는 끝을 내야 하는 상황은 언젠가 분명히 찾아올 것이다. 그 결정의 주인은 나이며, 그땐 누구보다 내 마음의 방향에 따라 결정하길 바라본다. 비록 그 결정이 사회의 기준과 다르고, 타인의 시선에서 어긋나고, 가족들의 의견과 다르다 해도 말이다.
착한 딸, 착한 여자로 살다 보면 남들을 만족시켜주는 것에 익숙해져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남자도 그렇다.
때마침 얼마 전 친구와 마주 앉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과 관계를 끊기 위한 노력 중 무엇이 더 힘들 까에 대한 대화를 나눈 것이 생각났다. 누군가는 힘든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소중한 나 자신의 에너지를 더 쓰게 되는 게 싫어 관계를 정리한다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관계를 끝는 그 자체가 더 힘들어서 차라리 애써 유지하는 편을 선택한다고 했다. 나 역시 관계를 끊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에 익숙하다. 새해부터 유지 결속보다 끝내는 힘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한다니 조금 이상한 기분도든다. 하지만 팟캐스트에서 들려오던 작가님 책의 문장을 다시 되새겨 본다. 언젠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익숙한 불행에서 벗어나는 용기를 낼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나 자신에게 빌어주는 밤이다. 피쓰-
두려워서 헤어지지 못하는 이는, 두려워서 사랑하지 못하는 이보다 고통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