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500일

미끄러질 듯하지만 절대 넘어지지 않지

D-487, 486, 485

by 세라

2024. 12. 27. 금. D-487

<콩콩>


탄성: 물체에 외부에서 힘을 가하면 부피와 모양이 바뀌었다가, 그 힘을 제거하면 본디의 모양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성질.


지면에는 일종의 탄성이 있다. 연필을 들고 종이에(또는 타자기에) 힘을 가하면, 쓰여진 마음은 잠시 활자의 모양으로 주조되었다가 연필을 떼는 순간 서서히 본디의 감정으로 복구된다. 마치 한순간 플래시를 터뜨려 붙잡아 놓은 빛처럼, 쓰는 순간의 감정이 종이 위에 서서히 인화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한번 붙잡혔다가 풀려난, 복구된 나를 읽는다. 이 복구에는 내 의지와 무관한 탄성이 깃들어 있어서 돌아오긴 돌아왔으되, 마치 쏘아 올려진 듯한 환각이 동반된다. 끝으로 그만 쓰며 펜을 내려놓으면 마침내 거기에, 종이 위로 날아오른 내가 보인다.


콩콩.떤 동네는 퐁퐁이라고 부른다던데, 우리 동네는 콩콩이라 불렀다. 고무 매트 위로 올라가 몇 번쯤 몸을 튕기다 보면 어느 순간 하늘을 향해 콩…… 내려가다가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 하늘이, 내려가다가 올라오는…….


어쩌면 나는 유년시절에 이미 탄성의 매혹을 알아버렸는지도 모른다. 몇 번쯤 쓰고 지우다 보면 서서히 하늘로 변해가는 기분. 다시 하늘에서 인간으로 복구되는 아찔함. 콩콩거림. 펄쩍거림.


쓰는 나는 지면 위에 감정들을 내려놓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닌지도. 날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콩콩. 아니 나는. 날아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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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은 그렇지 않다. 러닝타임이 끝나는 순간 추락이다. 복구되지 않는다. 보는 내내 격하게 튀어오르던 감정도 결국 내 것은 아니다. 나에게 있어 더 역동적인 매체는 영상보다는 사진이고, 사진보다는 종이다. 비디오그래퍼지만 비디오그래퍼보다는 포토그래퍼의, 포토그래퍼보다는 쓰는 자의 자아를 내가 가지고 있는 이유다. 나는 영상을 만들 때보다는 사진을 찍을 때, 사진을 찍을 때보다는 글을 쓸 때, 나 자신에게 좀 더 용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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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콩 위에서는 희망과 절망도 함께 논다. 좋음도 싫음하고 같이 놀고, 살고 싶음도 살고 싶지 않음도 같이 그냥 콩콩, 논다.




2024. 12. 28. 토. D-486

<비상 도서 비축 작전>


책을 4권 샀다. 아직 펼쳐보지도 못한 새 책들도 있는데 냉동식품처럼 책을 쟁여두고 있다. 기회만 생기면 저장하려는 고질적인 습성이 책을 폭식하게 한다. 폭식에는 잉여가 뒤따른다. 방 안에는 먹다 남은 밥처럼 읽다 남은 책들이 생겨난다. 그러나 머지않아 곤핍한 시대가 오면 이것들을 해동해 먹으리라. 이것들의 진짜 정체는, 퇴사를 대비하는 나의 비상 도서가 되시겠다.


정말로 배가 고파지면 내 방에서 가장 먼저, 책부터 팔려나가게 되겠지만.


오늘은 반듯한 책등을 손끝으로 쓸어보며, 왕궁의 공주가 된 것 같았다.




2024. 12. 29. 일. D-485

<넘어지지 않기>


출근길 버스 창밖. 나무 뒤에 나무 뒤에 나무. 일정한 나무처럼 날짜를 세어가며 쓰는 이 일기는 무엇을 향해 궁극적으로 달려가고 있는 걸까. 만약 그것이 이 생의 마지막이라면. 거기가 내 세상의 끝이라면.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그다음이, 내게 또 주어진다면. 나는 거기서 또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 생을 나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 자초한 숫자놀음에 이상하게 목이 메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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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메모해 놓고 일하던 오후, 부산한 손님들의 대화 중에 "많이 죽었대"라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불길한 예감에 뉴스를 찾아본 순간. 국내 발생 역대 최대 피해 항공기 사고. 탑승자 181명 중 179명 사망. 순간 휘청거렸다, 이게…… 무슨? 그 이후로 눈물을 질금질금 훔치며 안절부절 속보만 추적했다. 아니, 속보가 뭐가 이렇게 업데이트가 안 돼! 한 줄짜리 속보 뜬 지가 2시간이 지났는데 기자들 뭐 하는 거야? 탄핵의 탄핵 시국 속에서 애써 부여잡고 있었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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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바로 옆에는 항공사·여행사의 주가 하락이라는 믿을 수 없는, 아니 가장 믿을 수 있는, 그 무엇보다 수학적인 속보가, 함께 배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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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진정한 인간이고,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 순간 내 앞에 있었던 법정 스님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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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고통의 거인들 앞에서 나는 한없이 무력하고 미약하다. 그러나 더 늦은 밤에……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진짜 기만은, 속보보다 더 빠른 저 속보들 아닌가. 돌이켜 보면 세월호 때도, 이태원 참사 때도, 반복되는 탄핵 시국에도, 가까스로 배운 것이 있다. 나의 일상을 지킬 것. 필사적으로 지킬 것.


그럼에도 후회하겠지만. 다 지워버릴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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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러질 듯하지만 절대 넘어지지 않지'


김사인의 시 <뵈르스마르트 스체게드>에서 이 문장만 가져와 읽었다. 맥락과는 상관없이 뻔뻔하게 오독하면서. 그렇게도, 그렇게라도, 단 한 줄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그러니까 나도. 넘어지지 않기. 감히 내가 넘어지지 않기.



*미약한 마음 보태어, 희생자 분들과 유가족 분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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