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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Mar 05. 2019

라디오 방송 원고 작성법

<망한 글 심폐소생술> 저자 인터뷰 사례

방송작가로 일할 때 원활한 방송을 위해 인터뷰 질문지를 미리 작성해 출연자에게 보내는 일이 일상이었습니다. <망한 글 심폐소생술> 출간 후 잡지나 방송에 출연할 기회가 많아지니 답변서 작성에 점점 익숙해지는 제가 낯설어 보입니다. 그래도 방송 출연 시 답변서는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궁금한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단 마음으로 인터뷰 원고를 올립니다.


-프로그램 : 더 인터뷰 (방송 : 월-토 11-12)

-방송사 : 부산 영어방송

-방송일 : 2019년 1월 28일



1. 먼저 부산 영어방송 청취자들에게 직접 소개와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지난 99년부터 방송국에서 라디오와 TV 프로그램 구성작가 일을 했고요. 현재는 미디어 비평가이자 에세이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글 쓰고 강의하는 김주미라고 합니다.        


2.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은데요. ‘망한 글 심폐소생술’이라는 책은 어떤 책인가요?    

20년 동안 글을 쓰면서 터득한 나름의 방법들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요.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는 식의 성공담들은 이미 다른 책에도 많으니까, 저는 방송작가로서 겪었던 실패담들을 모아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망한 글’을 숱하게 썼던 저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이 정도면 나도 쓰겠다, 혹은 작가가 될 수 있겠다는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쉽고 친근하게 자기 이야기를 펼치는 방법들을 담아낸 책이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3. 독자들의 반응이 뜨겁다고 하는데요. 어떤 피드백들을 받으셨나요?    

일단 처음 평은 제목에 속았다!인데요, 이 책만 읽으면 망한 글을 하루아침에 살릴 묘책이 있을 줄 알았는데, 결국은 꾸준히 쓰란 얘기라 실망했다고 웃으면서 얘기하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대부분은 방송작가가 어떤 일을 하는지, 방송 글이 어떻게 완성되는지 알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는 분들이 많았고요. 쉬운 문장으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쓰거나, 말하듯이 쓰는 방송 글쓰기 기술들이 실생활에 도움이 됐다는 독자들도 계셨어요. 제일 반가운 피드백은 역시 이 책을 읽고 나니 글을 쓰고 싶어 졌다, 없던 용기가 생겼다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4. 요즘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분들이 참 많더라고요.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글을 발표할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실제로 글 잘 쓰는 방법이 뭔가요... 하는 질문 많이 받으시죠?    

 초등학교 1학년인 저의 조카도 저한테 어떻게 매일 일기를 쓸 수 있냐고 질문하고요. 총장 후보자로 나오신 교수님들도 자기소개서가 어렵다며 저에게 문의하기도 하시죠. 글쓰기의 어려움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4-1. 그럴 때 어떻게 대답하시나요?    

글쓰기가 어렵다는 분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머릿속엔 생각이 있는데 글로 풀어내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합니다. 그럼 한 번에 실패 없이 글을 쓰겠다는 욕심이 너무 앞서는 건 아닌지 되묻습니다.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모두 머릿속에 있어서 한 번에 글을 써 내려가는 작가는 많지 않습니다. 저처럼 건축을 하듯 미리 설계도를 그려놓고 글을 쓰는 작가들이 더 많거든요.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시작부터 완벽한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쳐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5. 그럼 본격적으로 글쓰기 노하우를 여쭤볼게요. 먼저 글을 쓸 때 소재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으시나요?    

글감이나 아이디어는 늘 가까이에 있다고 믿는 편입니다. 못된 취미인데, 평소 지하철이나 카페, 식당에서 남의 이야기 엿듣기를 좋아합니다. 또 예전에 미술 공부를 하던 친구가 사람이 많이 다니는 시내 한복판에 앉아 지나가던 사람들의 얼굴이나 동작을 스케치하던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요. 주위 사람이나 사물을 관찰하는 습관은 글을 쓰는 작가에게도 큰 도움이 됩니다.  대중을 상대로 한 글쓰기를 해야 하니, 언제나 요즘 사람들의 관심과 걱정은 무엇인지,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지 관찰하고 귀에 담도록 해야 하죠. 이렇게 글감을 찾으면 그때마다 간략하게라도 메모를 해두고요. 글감과 아이디어를 찾은 후에도 마인드맵이나 글쓰기 관련 앱들을 써서 정리를 해둡니다. 일종의 ‘글감 창고’를 만들어서, 나중에 어떤 글을 쓰든 유용하게 꺼내 쓸 수 있도록 준비해 둡니다.  


6.  글을 시작하려면 일단 첫 문장을 시작해야 하잖아요? 매력적인 첫 문장은 작가 지망생들뿐만 아니라 베테랑 작가들에게도 늘 어려운 일이라고 하는데요. 첫 문장을 매력적으로 쓰는 노하우는 무엇인가요?    

첫 문장이라고 의식하지 말고 쓰라고 권합니다. 글을 여는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뭔가 근사하게 써야 할 것 같아 부담을 갖게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처음엔 그저 생각의 흐름대로 쓰고, 나중에 이미 쓴 문장들의 위치를 바꿔서 배치할 때가 많습니다. 글을 수정할 시간이 없을 때는, 물론 첫 문장을 의식하고 쓰기도 하는데요. 나름의 노하우는 일단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시작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읽는 사람, 듣는 사람을 주목시키는 효과가 있거든요. 방송도 시작 5분 안에 시청자의 이목을 사로잡아야 승부가 결정된다는 말이 있거든요. 그래서 글을 써 놓고 가장 재미있는 에피소드, 나중에 반전이 될 만한 요소가 있으면 글의 앞머리에 배치해서 주목을 끌려고 하는 편입니다.      


7. 내 글은 심심하고 재미가 없어...라는 분들에게는 어떤 소생술이 필요할까요?    

크게 두 가지 조언을 드릴 수 있을 텐데요. 먼저 문장을 쓰는 기술을 말씀드리면, 단문과 장문을 번갈아 쓰면서 리듬을 만들어 보라는 겁니다. 단문만 이어지면 너무 글이 딱딱하게 읽히고, 장문만 이어지면 지루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음악에 장단음을 골고루 섞듯이, 문장도 짧은 문장, 긴 문장을 골고루 쓰면 훨씬 읽기에 재미있는 글이 됩니다.

두 번째 방법은 글을 구성할 때 반전의 묘미를 살려보라는 겁니다. 막장 드라마를 욕하면서 보는 이유가 뭘까요? 이야기에서 갈등 요소가 파도치듯 계속 흘러나오고, 앞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전의 매력은 독자들의 예측을 깨고 허를 찌를 때 느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들이 다 이렇다....라고 생각하는 바를 부정하며 글을 시작하거나 끝맺는 것도 한 방법인데요. “나는 엄마 밥이 정말 싫다”로 문장을 연다면 어떨까요? 독자들이 뒷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재밌어하지 않을까 합니다.         


8. 자기소개서 쓰기로 힘들어하는 취업준비생들도 많은데요. 이런 분들에게 어떤 팁을 주시나요?    

저는 새로운 물건을 사면 사용설명서를 챙겨서 읽는 편인데요. 나에게 꼭 필요한 기능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그 부분만은 자세히 읽습니다. 자기소개서도 기업이나 학교 등에서 보면 ‘한 사람에 관한 설명서’라고 할 수 있는데요. 회사마다 추구하는 방향이나 원하는 인재상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를 쓸 때는 지원처에서 내가 왜 필요한지, 나에 대한 설명서를 쓴다는 마음으로 접근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각 항목별 내용을 채우실 때는 결과 위주로 쓰지 마시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이나 발견한 의미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써주세요. 예를 들어 어학연수를 다녀왔다면, 어디에 얼마나 있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얘기죠. 낯선 나라에서 문화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혹은 낯선 친구들과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글로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자기소개서를 쓴 후 꼭 소리 내어 읽어보시면 좋은데요. 눈으로 읽을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오류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9. 작가님은 ‘치유의 글쓰기’라는 강의도 하셨는데요. 글쓰기가 정말 치유가 되나요?    

저의 경우를 말씀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2, 30대 때는 직업으로서 치열하게 글쓰기를 했어요. 그러다 슬럼프가 오기도 했죠. 글쓰기가 부담스럽고 두려운 시간도 있었거든요. 그땐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말 것을 그랬다는 후회도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글을 쓰며 겪은 슬럼프를 극복하게 해 준 것 역시 글이었습니다. 저보다 먼저 어려움을 겪은 선배 작가들이 쓴 책이나, 진짜 솔직한 감정을 써내려 간 제 글들을 보며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내가 살면서 이룬 게 뭐가 있지’라며 자존감이 떨어질 때도, 인생을 돌아보며 글로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꽤 잘 살았구나’하는 위안을 얻게 됩니다. 글쓰기는 분명 나를 위로하고 다독이는 효과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10. 20여 년 방송작가 생활을 하셨다면 에피소드가 참 많을 것 같은데요. 식은땀이 나는 일, 혹은 방송 사고를 경험한 적은 없으신가요?    

역시 방송사고의 백미는 ‘생방송’ 아닐까요? 제가 ‘6시 내 고향’이란 프로그램을 꽤 오랫동안 썼는데요. 명절 때가 되면 꼭 부산역이나 시장에 중계차가 가서 현장 분위기를 묘사합니다. 이럴 때 예기치 못한 사고가 많아요. 한 번은 부산역 앞에서 귀성객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미리 섭외해서 스탠바이하고 있는데 방송이 시작되자 한분이 화장실이 급하다며 도망가 버리셨어요. 할 수 없이 인터뷰하실 분들 순서를 급하게 바꾸어 위기를 모면했죠.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을 중계하는 방송에서는 진행자가 입장하는 배우나 감독들의 이름을 모를 때가 많아요. 차라리 말을 안 하면 괜찮은데 잘못 말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땐 정말 등줄기가 오싹해지죠. 당황하지 말고 방송 중에라도 정정해서 위기를 넘긴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11. 작가님은 앞으로 어떤 글들을 쓰고 싶으신가요?     

저는 지금도 온라인 상에서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있어요. 온라인 글쓰기의 매력은 제가 쓴 글을 올리면 독자의 반응을 바로바로 만날 수 있다는 거예요. 마치 라디오 방송처럼요. 제가 쓴 에세이에 공감을 해주시고, 위로가 됐다는 댓글을 읽으면 정말 많은 힘을 얻습니다. 앞으로 제가 쓰는 글들이 우선은 저를 행복하게 하는 글쓰기였으면 좋겠고요. 더불어 제 글을 읽는 후배들에게는 글을 쓰며 가졌던 고민들을 조금이나마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그리고 일반 독자들에게는 일상에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할 거리를 준다면 보람 있을 것 같습니다. 글쓰기는 저를 표현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해서요, 앞으로도 꾸준히 즐기면서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갈 것 같습니다.        


12. 마지막으로 부산 영어방송 청취자들과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글쓰기가 두렵다 하시는 분들은, 그 두려움이 어디에서 왔는지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누군가에게 글을 보여주기가 두려워서 망설이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럼 내가 자신이 있을 때까지는 글을 써도 세상에 내놓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글을 한번 써보세요. 누군가에게 평가받기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나의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글쓰기라면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질 겁니다. 글쓰기만큼 돈이 들지 않고 재미있는 취미도 없거든요. 노트와 펜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쓸 수 있으니까요. 2019년엔 글쓰기가 여러분만의 ‘즐거운 놀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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