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전국 노래자랑 예심에 도전해 본 적이 있는가? 예심에 오는 주 연령대를 봤을 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는 없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혹시TV 화면 속 출연자들을 보며 실력이 대단하다 생각했나요?아마 그렇게 느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예심현장에직접 가서 보면가수도 개그맨도 가득하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전국 공중파 방송의 벽이 높음을 느끼게 된다.
2년 전호기롭게 전국노래자랑 예심에나갔다
큰 체육관을 빌린 예심장소에는 옷까지 맞춰 입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연습에 매진 중이었다.장구, 꽹과리, 트럼펫 등 여러 악기들도 함께.
도전자들과 그들의 지인으로 이루어진 수백 명의 관중들을 앞에 두고 무대로 나간다. 반주는 없다. 오직내 목소리만으로 체육관을 가득 채워야 한다.
혹시 알고 있었는가? 전국 노래자랑은 예능 방송이다.즉, 재미도 있어야 한다.
나는 떨어졌다. 1차 예선에서. 떨다가.진동 중인 휴대폰 마냥 정말 벌벌 벌 떨다 내려온 것 같다
사실
나의 노래실력은 애매하다.
그럼에도 이것에 도전하기까지 나의 서사는 제법 대단한 편이다.
어린 시절 놀러간 바닷가에서 열린 멕스웰 캔커피 노래자랑에 대뜸 나갔으며 고등학교 축제 가요제도 나갔다. 대학교 축제 가요제에 예심을 거쳐 본선 무대에 오르기도 했고,결혼식 축가를 부탁받아 몇 번 하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가정의 달 행사로 열린 노래자랑에도 나갔다. (정말이지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끌어모았다.)
아이들의 학부모로서 품위를 헤치지 않는 적정선의 무대퍼포먼스 수위를 정하느라 고심한 기억이 난다.
노래 곡목 선정부터 연습까지 어찌나 열심히 했던지 노래도 늘어버렸다.
그러다 최근에 우리 동네를 다시 찾은 전국 노래자랑에 도전하게 된 거다.
목표는 1차 예선 통과다.
3-400명에 달하는 예심자 중에 1차에서 몇십 명이 걸러지고 2차 예선에서 15명의 출연자가 추려진다.
휴대폰 케이스에 천 원을 끼워 다니며 코인노래방이 보일 때마다 들어가 연습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전국 노래자랑에 나온 노래들을 검색해 보고 곡목을 정했다. 유튜브에 있는 3시간짜리 예선 풀영상도 시청하며 탈락자와 합격자의 패턴도 파악해 본다.
사실 나의 내면에는 노래실력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 있었다.
내 안의 돌아이를 꺼낼 것인가. 교양 있는'척'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고민이 된다
나를 어디까지 내려놓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나는 학창 시절 제법 까부는 아이였고, 나서는 걸 좋아했다.
튀다 보니, 나를 잘 모르는 친구에게 미움을 받기도 한다. 괜히 나서서 적을 만드는 꼴.
그것이 내 마음을 괴롭게 했던것 같다.그렇게 서서히 변해 갔다. 미움받지 않기 위해 움츠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에 대한 '떨림'이 커졌다.
사십이 넘어, 어린 시절의 나에게 말해준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것에 대해 너무 염려하지 마. 그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모두가 너를 좋아할 수는 없어.
그렇지만 너를 잘 모르면서 너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기도 하잖니. 너에게 따뜻한 마음을 주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면 된단다."
까불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우황청심환을 샀다. 무려 만원이나 주고.막상 순서가 닥치자 약효를 이기고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후회 없이 하자.
목표는 예선 1차 통과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떨어졌다.
아드레날린 분비로 인해 혈압이 상승하고 심박수가 급격히 올라가고 있는데 노래가 잘 될 턱이 있나.
속상하고 부끄러웠다.
가방이 놓여있던 내 자리까지 오는데 얼굴이 화끈거린다.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잘했다, 수고했다며 토닥여 주시는 어르신들
나를 내려놓고 열심히 했기에 후회 없고,망가지며 열심히 했기에 후회되는아이러니.
자리로 돌아오니, 내 옆에 앉아계시던 할아버지가 위로의 말을 건네신다.
" 진짜 잘하던데 붙을 줄 알았는데 안붙이주노 수고했구마이"
어떤 일이 벌어졌는데 속상하다면 진심이어서 그렇다는 말이 있다.
맞아.
진심이었던 것 같다.
미움받을 용기인 것 같았고, 내가 나답게 사는 방법을 찾아가는 길 같았다.이전의 나를 뛰어넘는 일이며, 나에게는 도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