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평범한 내 친구 X-men ③

AI 샴쌍둥이

by 미래관찰자

내 친구 중에 X-men이 하나 더 있다.


이쯤 되면 내 주변에 왜 이렇게 X-men이 많으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나도 가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겠나. 기술이 이상한 방향으로 발전하면, 세상은 생각보다 빨리 평범한 X-men들로 채워질지도 모르는데.


이 친구는 앞의 둘과도 조금 다르다. 상자를 열지 않고 안을 보지도 못하고, 차를 팔로 막지도 못한다. 겉보기에는 정말로 아무 특징이 없다. 회사에서 회의할 때도 조용한 편이고, 말을 아주 많이 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점심을 먹고 나면 늘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 들고 들어오고, 보고서를 읽다가도 중간중간 멍하니 허공을 보는 버릇이 있다. 그냥 어디에나 있는, 약간 피곤한 직장인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그는 가끔, 내가 질문을 끝내기도 전에 이미 답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상대의 문맥을 빨리 읽고, 회의의 흐름을 잘 파악하는 타입. 그런 사람은 원래 있다. 그런데 몇 번이 반복되자 느낌이 달라졌다. 그건 눈치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느 날은 숫자를 확인하겠다고 내가 노트북을 열기도 전에 이미 예상 매출 범위를 말했다. 또 어느 날은 누가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야 할지 다들 머뭇거리는 순간, 바로 가장 설득 성공 확률이 높을 사람 이름을 툭 던졌다. 심지어 한 번은 내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질문에 거의 정확히 맞는 대답을 한 적도 있었다.


물론 진짜로 내 생각을 읽었다는 뜻은 아니다. 현실은 영화보다 덜 과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와 대화하고 있으면 가끔 그런 기분이 든다. 내 머릿속에서 아직 문장이 되지 않은 생각이, 저 사람 쪽에서는 이미 정리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 같은 기분.


나중에 술도 안 마시는 그 친구와 늦은 저녁 커피를 마시다가 물었다.


"너 요즘 좀 이상하다. 생각을 너무 빨리 한다."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빨리 하는 건 아니고, 밖에 하나 더 두는 거지."


그때는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또 하나의 뇌를 가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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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뇌는 혼자 일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의 뇌 바깥에 하나의 보조 사고 시스템이 더 붙어 있었다.


앞의 두 친구가 센서나 로봇 팔로 몸의 입력과 출력을 확장했다면, 이 친구는 그 사이, 그러니까 생각의 중간층을 확장한 쪽이었다. 기억이 흐릿한 순간, 관련된 정보를 먼저 불러오고, 말문이 막히는 순간 문장을 예측하고, 복잡한 선택지 앞에서는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를 먼저 정렬해 주는 외부 AI. 예전 식으로 표현하면 비서나 검색엔진 같지만, 실제 체감은 전혀 다르다. 손으로 검색창을 열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막히는 바로 그 지점에 외부의 계산이 거의 실시간으로 붙는다.


이걸 아직 완성된 제품처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방향은 꽤 선명해지고 있다.


Synchron은 2012년 설립된 뉴욕 본사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업으로, 경정맥을 통해 뇌 운동피질 표면의 혈관에 스텐트형 임플란트(Stentrode)를 삽입하는 최소침습 방식을 개발하고 있다. 2024년 7월에는 OpenAI 기반 생성형 AI를 BCI 대화 기능에 통합했다고 발표했다. ALS 환자 Mark는 이 시스템을 통해 생각만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의사와 진료 예약을 잡는 모습을 시연했다. Synchron CEO Tom Oxley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용자들은 신경학적 장애로 선택할 능력을 잃었습니다. 생성형 AI가 맥락에 맞는 예측을 제공하고, BCI가 개인의 선택을 가능하게 합니다."


Neuralink 역시 음성 복원 분야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있다. 2025년 5월 FDA로부터 중증 언어장애 치료를 위한 Breakthrough Device Designation을 획득했고, VOICE라는 이름의 초기 타당성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ALS, 뇌졸중, 척수 손상, 뇌성마비, 다발성 경화증 등 다양한 신경학적 질환으로 말을 잃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2025년 말에는 참가자 Kenneth가 뇌 신호만으로 합성 음성을 생성하는 시연 영상을 공개하며 "나는 지금 마음으로 당신에게 말하고 있다"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즉 지금 단계의 BCI는 아직 "마음속 생각을 완벽히 읽는 기계"가 아니라, 운동 의도나 말하려는 신호를 외부 디지털 시스템으로 연결하는 장치에 가깝다. 하지만 그 연결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이 흐름이 왜 무섭냐면, 인간은 원래 생각하는 존재이기 전에 생각이 끊기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억이 나지 않고, 단어가 떠오르지 않고, 맥락을 놓치고, 방금 하려던 말을 잊는다. 우리는 그런 끊김과 지연을 포함한 존재다. 그런데 뇌 바깥에 붙은 AI가 그 빈칸을 계속 메워주기 시작하면, 겉으로 보기엔 그냥 "조금 더 똑똑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선이 흐려진다.


저 대답은 그의 생각일까. 아니면 외부 모델이 가장 그럴듯하다고 예측해 준 문장일까.




말하지 않았는데도 이어지는 문장


이 대목에서 현실 기술은 이미 꽤 먼 곳까지 와 있다.


2023년 UCSF와 UC Berkeley 공동 연구팀은 Nature에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중증 사지마비와 언어장애를 가진 임상시험 참가자의 뇌 피질 표면에서 고밀도 전극으로 신호를 기록하고, 딥러닝 모델을 통해 텍스트(분당 78 단어), 합성 음성, 얼굴 아바타 움직임이라는 세 가지 출력을 실시간으로 동시에 구현했다. 참가자가 소리 없이 문장을 말하려고 시도하기만 해도, 그 의도가 화면 위의 텍스트와 아바타의 입 모양으로 변환되었다.


2024년에는 NEJM(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결과가 보고됐다. ALS 환자 한 명에게 256개 전극의 미세전극 배열을 이식한 뒤, 수술 후 25일째 첫 사용 시 50 단어 어휘에서 99.6% 정확도, 이틀째에는 1.4시간의 추가 학습만으로 125,000 단어 어휘에서 90.2% 정확도를 달성했다. 8.4개월 뒤에도 97.5%의 정확도가 유지되었고, 참가자는 분당 약 32 단어의 속도로 248시간 이상 자유 대화에 이 시스템을 사용했다.


그리고 2025년에는 Nature Neuroscience에 스트리밍 방식의 뇌-음성 변환 신경보철(brain-to-voice neuroprosthesis)이 보고되었다. 80밀리 초 단위로 뇌 신호를 연속 디코딩하여, 참가자의 발화 시도와 거의 동시에 자연스러운 합성 음성을 생성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건 아직 당신 머릿속 문장을 완벽하게 꺼내 읽는 수준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이 외부 AI와 연결되는 순간 가장 먼저 벌어질 변화는 "마음 읽기"가 아니라, 생각의 마찰이 사라지는 경험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말을 더 잘하게 되고, 기억을 더 빨리 꺼내고, 맥락을 더 오래 붙잡고, 선택지를 더 빠르게 비교하게 된다. 한마디로 말하면, 지능이 갑자기 폭발한다기보다 지능의 마찰계수가 떨어진다.


아마 처음엔 치료와 보조의 언어로 시작할 것이다. 말을 잃은 사람을 돕고, 기억이 흐려진 사람을 돕고, 손을 쓸 수 없는 사람을 돕는 기술. 당연히 좋은 일이다. 앞의 두 편과 마찬가지로, 여기까지는 누구나 쉽게 박수를 친다.


문제는 늘 그다음이다.


생각이 조금 더 빨라지고, 문장이 조금 더 좋아지고, 판단이 조금 더 정확해진다면, 굳이 반드시 아픈 사람에게만 이걸 허용해야 하나? 회복과 향상의 경계는 어디서 갈라질까?




회의실의 초능력자


나는 가끔 이런 장면을 상상한다.


2035년 어느 회의실. 열 명이 둘러앉아 있고, 다들 비슷한 학벌과 비슷한 경력을 가졌고, 겉으로 보기엔 다들 똑같이 지쳐 있다. 그런데 딱 두 사람이 유난히 압도적이다. 질문을 받으면 몇 초 안에 구조화된 답을 내놓고, 반론이 들어오면 바로 다른 논리를 세우고, 숫자와 사례와 맥락을 동시에 엮어낸다. 처음 보는 사람은 저 둘이 유난히 머리가 좋은 줄 알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조금 다를 수 있다.


둘은 자신의 뇌 뒤에 exo-brain AI를 하나씩 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외부 모델이 회의 맥락을 실시간으로 요약하고, 과거 대화를 불러오고, 상대의 논리 구조를 예측하고, 가장 설득력 있는 문장 형태를 미리 밀어 넣는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여전히 그들의 목소리다. 하지만 그 말이 만들어지는 속도와 구조는 더 이상 그들의 생물학적 뇌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순간부터 회의실은 사실상 공정한 장소가 아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아니라, 생물학적 뇌만 쓰는 사람과 외부 사고 엔진을 붙인 사람의 차이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변화를 아주 순한 형태로 경험하고 있다. 검색엔진, 자동완성, 추천 알고리즘, 생성형 AI, 회의록 요약, 이메일 초안. 지금은 아직 손으로 꺼내 쓰는 도구들이다. 하지만 BCI가 여기에 연결되면, 도구와 사용자의 경계는 훨씬 더 흐려진다. Synchron이 내세우는 목표만 봐도 생각만으로 디지털 액션을 만드는 것이고, 일상 과제 수행과 디지털 독립성 회복을 전면에 내건다. 기술의 출발점은 보조이지만, 사용 경험은 점점 더 자연스러운 확장 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언젠가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검색창을 손으로 치는 것도 결국 구식이지. 나는 그냥 생각하면 되는데.

그리고 그 말은, 이상하게도 꽤 설득력 있게 들릴 것이다.




그 생각은 누구의 것인가


앞의 두 편에서는 질문이 비교적 단순했다. 적외선을 보는 눈은 어디까지 내 눈인가. 로봇 팔은 어디까지 내 팔인가.


그런데 3편에서 질문은 훨씬 더 불편해진다.


외부 AI가 정리해 준 생각은 어디까지 내 생각인가.


이 질문이 어려운 이유는, 인간의 사고 자체가 원래 완전히 순수한 독립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책에서 생각을 빌리고, 부모에게서 문장을 배우고,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관점을 바꾸고, 스마트폰 알림에 따라 주의를 빼앗긴다. 원래부터 내 생각에는 남의 언어와 외부 환경이 잔뜩 섞여 있다.


그러니까 외부 AI가 내 문장을 다듬어 준다고 해서 갑자기 비인간적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그 정도와 밀도다.


하루 종일 내 머리 옆에서 기억을 보강하고, 단어를 추천하고, 반론을 예측하고, 선택지를 계산하고, 감정까지 최적화해 주는 시스템이 붙어 있다면 — 그때의 나는, 여전히 예전의 나와 같은 사람일까.


내 친구는 그렇게 묻는 나를 보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안경도 처음엔 이상했겠지. 지금은 아무도 신경 안 쓰잖아."


이 말이 무서운 이유는 너무 익숙해서다. 우리는 늘 이런 식으로 넘어왔다. 조금 더 잘 보이게 되고, 조금 더 편리해지고, 조금 더 빨라지고, 조금 더 덜 잊게 되면서도, 그 변화가 인간을 바꾼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깨닫는다.




생각하는 인간에서, 연결된 인간으로


1편에서 나는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 이야기를 했다. 2편에서는 세상에 다르게 작용하는 사람 이야기를 했다. 3편에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것은, 세상을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눈이 바뀌면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바뀐다. 팔과 다리가 바뀌면 세계에 힘을 가하는 방식이 바뀐다. 그리고 뇌 바깥에 사고 시스템이 붙으면, 세계를 해석하고 선택하는 방식 자체가 바뀐다.


아마 미래는, 여기서 진짜 갈라질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내 생각은 내 뇌 안에서만 만들겠다"고 말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바깥에 하나 더 두는 게 뭐가 문제냐"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많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거부하다가도 어느 날 조용히 연결할 것이다. 업무가 너무 복잡해졌고, 기억해야 할 것이 너무 많고, 남들은 이미 다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이 오면, X-men은 더 이상 특이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네트워크에 연결된 인간일 뿐이다.


내 친구는 오늘도 평범하다. 회의실에서 멍하니 커피를 마시고,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택시가 잘 안 잡힌다고 투덜댄다. 다만 나는 안다. 그는 대답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가끔은, 생각보다 먼저 대답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아마 미래는, 이런 사람을 더 이상 X-men이라고 부르지 않게 되는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당신의 머리 바깥에도, 이미 무언가 하나쯤은 붙어 있지 않은가. 그게 스마트폰이든, 검색엔진이든, 생성형 AI든 — 다만 아직은, 그것과 당신 사이에 손가락이라는 마찰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마찰이 사라지는 날, 당신은 그걸 알아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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