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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May 19. 2023

결혼을 하기로는 했는데, 이제 뭘 해야 하지?

스물일곱 애송이는 결혼준비 중.

0.

오빠와의 결혼을 결심하고 실제로 결혼준비를 시작하기까지 대략 6개월 그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6개월 동안 우리는 앞으로 근 2,3년 동안 살아가게 될 우리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치열하게 나누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결혼의 시점을 언제로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결혼 시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조금은 민감할 수 있는 대화들도 나누다 보니 우리가 미래를 함께 하기로 맘먹긴 했지만, 생각보다 동상이몽 하고 있는 게 많구나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거의 반년을 그 간극을 줄여나가는 시간을 보냈다.

조금은 냉정한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혹은 조금은 구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혹은 상처가 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완전히 솔직하지 않으면 나중에 각자가 그려놓은 미래의 모습에 대한 틈이 돌이킬 수 없이 크게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 끝은 결국 이별이겠구나.

다행히 우리는 이별하지 않았고, 어쩌면 조금 더 민낯의 모습으로 손을 맞잡았다. 그 뒤에 비로소 결혼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 아닌 믿음의 결심이 섰달까.   


1.

대강 언제쯤 결혼을 하면 되겠다를 정한 뒤에는 정말 큰일이 하나 남아있는데, 그건 바로 부모님께 결혼을 한다고 말씀드리는 일이었다.

부모님께 "결혼하려고요." 이 여섯 글자를 뱉어내는 게 나에게는 이토록 머쓱하고 어려운 일일줄은 몰랐다.

결혼을 한다는 게 아직은 어린 나이여서 그런지 민망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철없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고, 걱정을 끼치는 일인 것만 같아서였다. 물론 지나고 돌이켜보니 그럴 일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오빠와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시점을 정하는 그 기간 동안 나는 아주 열심히 부모님께 밑밥(?)을 깔았다. 오빠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미래를 그리는 사람이고, 우리는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앞으로의 삶을 조율 중에 있고, 우리는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이 그림에 대해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는지 묻고, 나는 그 사람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엄마 아빠에게 쫑알쫑알 댔다. 어쩌면 나는 나의 결혼이 부모님에게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결국은 "대강 아직 멀었지만 몇 년 몇 월쯤 결혼을 목표로 준비해보려고 해요."라는 조금은 더 구체적인 말을 할 때쯤엔 이미 부모님이 나와 오빠의 결혼에 대한 마음이 진지하구나를 느끼고 오히려 언제 결혼할 거냐고 먼저 물어보실 때였다. 자연스럽게 나의 결혼을 받아들이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열심히 한 내 밑밥 깔기는 성공 했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스스로 내린 결정과 선택인데 그걸 민망해하고 주저해하는 것이 더 걱정을 끼치는 일이 될 수도 있었겠구나 싶다.

나도 결혼은 처음이라. 또 부모님도 자식의 결혼은 처음이라.

결혼 준비가 많이 진행된 지금도 여전히 시행착오나 첫 경험의 삐걱댐을 열심히 겪고 부딪혀보는 중이다.


2.

본격적인 결혼준비는 웨딩카페 가입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일단 결혼준비의 시작으로 결혼식을 하려면 어떤 걸 준비해야 하는지 파악해보자 싶었다.

결혼식을 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크게 이야기해보면,

(1) 웨딩홀
(2) 스드메 (스튜디오or스냅 / 드레스 / 메이크업)
(3) 청첩장
(4) 본식 당일 기록 (본식 스냅 / 본식 DVD)
(5) 본식 당일 진행 (사회자, 축가, 축사, 식전or식중영상, 부케, 웨딩카)
(6) 부모님 예복, 메이크업
(7) 상견례
(8) 청첩장

그 외에도
(9) 결혼 전의 양가 부모님 첫인사 방문
(10) 결혼 후의 신혼여행, 신혼집, 신혼가전가구

이러한 것들을 고려하고 정해야 한다.


3.

이렇게나 많은 것들을 준비해야 한다니. 그래, 한 번 해보자!

결심이 섰다면 그다음은 결혼준비를 어떤 방식으로 할지 정하는 것이다.

결혼준비는 크게는 동행 웨딩플래너를 끼고 준비하느냐, 비동행 웨딩플래너를 끼고 준비하느냐, 아니면 완전히 내가 두 발로 뛰느냐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더 쉽게 설명하면 결혼을 준비하는 여정을 패키지 여행으로 하냐, 세미 패키지 여행으로 하냐, 자유 여행으로 하냐로 표현하면 이해가 쉬울 거다.

동행 플래너는 플래너와 예비부부가 1대 1의 관계로 조금 더 세심한 관리를 받으면서 결혼을 함께 준비하는 옵션이다. 요즘에는 인스타를 통해 플래너와 컨택을 많이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유명한 플래너는 미팅도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 정서적으로도 케어 받고, 육체적으로 덜 힘들게 퀄리티 좋은 결혼을 준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결혼에 정말 공을 들여 내가 하고 싶은 업체들로 진행하고 싶은데, 내 발로 뛰기에는 정보나 시간이 부족하다 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옵션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플래너를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그 사람이 나와 맞는 유형의 사람인지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는 시스템이라고 전해 들었다.

비동행 플래너는 주로 웨딩카페를 통해 랜덤으로 배정받는 플래너들과 컨택하고, 그중에 가장 잘 맞을 것 같은 한 명의 플래너를 선택해서 결혼 준비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정한 업체와 제휴를 맺고 있는 업체들 중에서 골라 플래너를 통해 예약을 진행하는 방법으로 결혼 준비를 하게 된다. 비동행 플래너를 통해 준비하면 마찬가지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덜 힘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업체와 제휴를 맺고 있는 웨딩홀이나 드레스샵, 스튜디오, 메이크업샵 안에서 선택을 하기 때문에 선택지는 줄어든다. 엄청 큰 결혼 시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부분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혼준비와 관련된 도움도 받을 수 있는 데다가 예약도 플래너님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예비부부들이 많이 선택하는 옵션이다. 비동행 플래너에게 직접적으로 금액을 지불할 필요가 없고, 포인트 적립이라던가 제휴업체 할인을 받을 수 있어서 예산적으로도 꽤나 합리적인 결혼을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인 거 같다.

혼자 결혼을 준비하기란, 와.. 결혼을 준비해 보니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걸 혼자 알아보고 혼자 컨택하고 혼자 예약을 잡고 혼자 가격을 맞추고... 모든 걸 본인의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장점은 그것 하나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을 하고 있는 결혼 적령기의 남자와 여자라면 더더욱 비현실적인 결혼 준비 방법이라고 본다. 하지만 다 하고 나면 정말 뿌듯하긴 할 듯ㅎ 하지만 비동행 플래너, 동행 플래너를 끼고 진행한다 하더라도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비추천하는 결혼 준비 방식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비동행플래너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다이렉트웨딩을 통해 플래너님과 컨택했다.

나의 결혼 준비 과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구체적으로 풀어보도록 하겠다.


3.

결혼은 할 건데. 결혼식, 정말 해야 할까?

아뿔싸, 정말 결혼 준비가 이렇게나 정신적인 체력을 소모해야 하는 일인 줄은 몰랐다.

정해야 할 것이,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크게 정해야 할 것만도 열몇 가지가 되는 데다가 각 항목마다 업체는 몇십, 몇백 개가 된다.

그래도 한 번뿐인 결혼식 기왕이면 우리가 원하는 것들로 구성해서 진행하고 싶어서 바쁜 와중에 검색에 검색을 수없이 반복하게 되는데,

각각 업체의 정보들을 살피고, 후기를 살피고, 예약이 가능한지를 살피고, 예약 가능 여부에 희비를 느끼며 또 업체들 중에 하나만 골라야 하기에 엄청난 갈등을 겪으며 정해나가는 끊임없는 선택의 과정이다. 게다가 예비신부와 예비신랑의 취향의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 또한 엄청난 스트레스를 동반한 일이다. 정보수집과 선택의 고통, 양보와 설득의 치열한 과정이 바로 결혼 준비였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데, 게다가 돈까지 많이 나가는 일이다. 결혼 준비에서의 금액은 몇백 단위이다. 결혼을 준비하다 보면 결코 저렴하지 않은 금액이 저렴하게 느껴지게 된다. 노력과 돈을 많이 쏟아 붙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어떠한 경우에는 을의 입장까지 되어버린다. 예약 마감, 부르는 게 값, 추가금까지 '아니면 말고'의 마음으로 일을 진행하는 업체들에 예비부부들은 원하는 시기에 결혼식을 하지 못하게 될까봐, 원하는 업체와 계약하지 못할까봐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런 걸 겪게 된 결혼 준비 초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일인가.


현타가 정말 제대로 온 적이 있다.

이렇게나 많은 돈과 정신적인 에너지를 소모해 준비하는 결혼식, 단 그 하루 90분 정도의 시간.

이건 누구를 위한 일인가.


결혼식을 하지 말까? 아니야 그래도 결혼식은 해야지.

그럼 정말 가족만 모여서 하는 스몰웨딩을 할까? 아니야 그래도 친구들은 와야지. 그리고 스몰웨딩이라고 돈이 적게 들지도 않는다더라.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결국은 남들이 하는 평범한 결혼식이 가장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서 현타가 오더라도 가는 거다. 단 하루의 결혼식 준비를 향해.


결혼은 주로 남자의 적극성에 의해 진행된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준비는 대부분이 여자들이 진행한다. 그래서 여자들이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로망도 있는 나도 결혼 준비가 쉽지 않은데,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는 사람이 결혼식 준비과정을 겪는다면...

아, 이래서 결혼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그래야 두 손 꼭 잡고 한 명이 지치면 한 명이 끌고, 또 다른 한 명이 지치면 다른 한 명이 끌고. 그렇게 서로 잡아끌면서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바로 결혼준비 과정이구나.

그래, 인생의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일이 쉬울 리가 없지. 그렇게 애송이들은 결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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