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나침반을 다시 돌려보자
심하게 지쳐서 휴학을 염불 외듯 말하며 처음 고려한 작년부터, 이번 겨울방학에도 여전히, 휴학은 나의 고민거리였다. 지금 휴학을 할까, 아니면 언제 할까, 왜 할까, 휴학하면 무엇을 하고 살까, 난 교환도 갈건데 낭비이지 않을까 등등등 얽히고 설킨 것들을 함께 고려하고 답을 내려야 했기에 "결정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3학년 1학기 수강신청을 불과 몇일 앞두고 휴학 신청을 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였다.
1학년 여름방학부터였던 것 같다. 난 매학기 다가올 새로운 학기와 서울살이를 너무나도 두려워했다. 다음 학기도 나에게 많이 힘들지는 않을지 걱정되고, 인간관계를 어떻게 꾸려나가야 타지에서의 나의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을지 도저히 모르겠고, 서울만 가면 여러모로 건강하지 못한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무언가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걸 하기보다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대비하는 데 에너지를 정말 많이 소모하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고 난 이후로 예전에 비해 많은 자유와 여유가 분명히 주어졌음에도, 몇몇 특별한 순간들을 제외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고 느꼈다. 지금 휴학하지 않으면 개강과 동시에 3,4학년도 나의 계획에 따라 속도를 내고 진행될 것이지만 결국 불행하고 지친 이 굴레를 또 벗어날 수 없겠다 싶었다.
계속 무언가에 쫓기듯 살고있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작년에 처음으로 아주 심한 번아웃을 경험한 이후로 그간의 삶을 돌아보면서 gap year 따위 없는 한국 현실에 분노했다. 제도가 마련되어있지 않으면 내 인생에 내가 스스로 들여도 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체는 물론이고 정신 건강이 많이 나빠져본 것도 계속 나를 발목 잡고 있기 때문에 이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아무 부담없이 편히 나를 돌보고 하고싶은 걸 하는 시간을 6개월 정도는 써도 되지 않을까.
이쯤에서 평소엔 별로 의미를 두지 않던 ‘나이'를 떠올리게 된다. 대학교 학년을 떼고 본 “22살”은 솔직히...정말 어리다. 인생 시계가 이제 아침인 정도 아닌가... 젊고 활기찬 나이를, 즐기고 행복해도 아까울 나이를 뭔가 무거운 짐을 지고 어둡게 걸어가는 것은 너무 슬프다. 조급해할 필요 없는 충분히 괜찮은 나이다.
내 휴학의 가장 큰 과제는 “일상을 즐기는 것”이다. 삶에서 발견하는 작은 행복과 즐거움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느낄 수 있는 시기를 보내는 연습을 하고 싶다. 어떤 큰 성취를 이뤄내려 강박을 가지지 않아도 되니 내가 현재에 하고 있는 것을 즐기는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 그리고 서울살이에 마음의 적응하기!
이 기간동안만이라도, 일단 해보는 것이다. 미래를 걱정하고, 삶의 이유와 대단한 목표를 찾아 헤매기보다는 현재를 사는 것. 작은 성취를 이뤄내는 것으로부터 다시 일어서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