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정안 Jan 15. 2023

회장님, 첫만남에 그런 걸 물어보시다니요

금기된 질문을 받은 면접의 최후


“축하드립니다. 면접에 합격하셨어요. 마지막으로 회장님과 면접이 남아 있는데 언제가 괜찮으세요?”


두 번의 면접 후 들려온 소식. 공교롭게도 기쁨보다는 허무함이 밀려왔다. 아니 면접을 또 봐야 한다고? 차라리 확실하게 실패를 말해주면 마음이라도 편하지(물론 진짜로 그러면 안되지만)


그래서일까, 하나도 떨리지가 않았다. 그냥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랑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와야지. 결국 똑같은 사람인데 뭐 다른 게 있겠어?

그렇게 정신 승리 반, 붙었으면 하는 환상 반으로 평소와 같은 일상을 지내며 그와의 만남을 기다렸다.


"정안 씨 맞으시죠?"


면접 당일. 통유리로 둘러싸인 건물로 들어가니 다들 사원증을 목에 두른 채 커피를 한 잔씩 들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소리의 주인공 역시 똑같은 사원증을 매고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얼어있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인지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여러 가지 정보를 속사포로 알려준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내 머릿속이 점점 새하얘져 아무 말도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뿐.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된냥 그분의 목소리만 의지하며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쫄래쫄래 걷다 보니 어느덧 몸뚱아리는 소위 ‘VIP 층’ 같은 곳으로 옮겨져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시선을 압도하는 대리석 바닥과 고동색의 벽재. 그리고 곳곳에는 회사의 연혁과 상징물이 번쩍번쩍 빛났다. 뭐지. TV에 나올 것만 같은 이 무거운 분위기는.


그때부터였을까. 갑자기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온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 무슨 생각으로 여길 온 거지. 준비를 좀 더 할걸. 가벼운 마음으로 올 자리가 아니었구나.


“안으로 들어가면 큰 책상이 있을 거예요. 회장님이 가운데에 앉아 계실 테니 정안님은 들어가서 왼쪽 끝에 앉으시면 돼요”


뭐라고요? 솔직히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듣질 못해 그분의 손짓만 따라 기계처럼 다리를 움직였다.


비서분이 열어준 방 안쪽에는 참 이상한 것들이 많았다. 책상 위에는 간디 조각상과 마더 테레사의 사진, 그리고 수많은 인도풍의 조형물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 조형물들이 아니었다. 바로 가운데에 앉아 나를 지긋이 쳐다보고 있는 한 남자의 시선이었다.


“음. 그래요. 반가워요. 본인 소개 좀 먼저 해볼까요”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 나를 보며 질문을 하고 있는데 초점이 분명하지 않았다. 무표정, 무초점, 하지만 무언가를 지긋히 응시하는 듯한 눈빛. 도대체 이 사람은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저는 이런 성격이고 ~~~ 이런 단점이 있고 ~~~ 이렇게 살았고 ~~~ 저렇게도 살았고 ~~~”


떨렸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나를 보여줬다. 겨드랑이에 땀은 흥건했고, 때로는 흥분했다가, 때로는 풀이 죽었다가, 다시 우렁차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나름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누며 면접은 마무리가 되어가는 듯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황당한 질문을 던지는 그.


음. 이런 질문은 실례인 걸 알지만, 부모님은 어떤 분이신가?


아니 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 건가요?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지만, 나는 그냥 평소에 부모님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더 안 물어봤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음… 한 분은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한 분이시고요, 한 분은 어떻게 하면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최대한의 효율을 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분이에요.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제가 태어났습니다.”


나름 짱구를 굴려 본 대답이었다. 이 정도면 제대로 한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 정보도 안 준 것과 마찬가지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내 예상을 정확히 빗나갔고, 나는 그 자리에서 차갑게 얼어붙고 말았다.


“하하하. 아마 그래서 정안 씨의 성격이 그렇게 만들어진 모양이구만. 한 분이 조금 고생을 하셨을 텐데,  아마 그게 어머니였겠고. 거기서 자네는 그분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 했을 거고, 그러다 보니 타인에게 공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됐을 가능성이 컸겠어요.”


갑자기 온 방을 가득 채운 웃음소리. 그리고 정확하게 펼쳐진 나의 과거.


사실이었다. 일과는 거리가 조금 멀었던 아버지, 그리고 일 자체가 인생이었던 어머니.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갈등을 흡수하는 완충제였던 나. 그러다 보니 좋게 말하면 공감 능력이 좋고, 나쁘게 말하면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으로 30년을 지내온 것이 인생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공감이라는 건 참 가슴 아픈 일이죠. 사람은 행복한 일에 공감하지 않으니까요. 슬픈 일에 대해서만 공감을 하잖아요. 종교는 없지만 그래서 예수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 아픔을 다 짊어졌으니.


생각해 보니 그랬다. 기쁨은 끌어안을 필요가 없었다. 그냥 엄마가 일을 조금 덜 했으면, 아빠가 조금 덜 불행했으면 싶은 마음뿐이었고, 그 마음들에는 온통 슬픔이 가득했다.


본능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아픔을 덜어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인간이 이렇게 최상위 포식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이런 공감 능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만 제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사람이 남의 아픔까지 짊어지려고 할 때는 다소 안타까운 상황이 만들어질 뿐.


그렇게 호탕한 웃음과 비참한 과거가 동시에 펼쳐지며 면접은 끝이 났다. 사실 호탕한 웃음이 이상한 방을 크게 울렸을 때 직감했다.


 ‘나 합격하겠구나’


그렇게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두운 밤에도 건물들은 어찌나 밝게 빛나는지. 퇴근하는 직장인들 사이를 걸어가니 나도 마치 '사원증이 있는 직장인' 무리 중 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오늘 저녁은 기필코 맛있는 메뉴를 먹으리. 그렇게 횡단보도에서 휴대폰으로 OO맛집을 검색하는 순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축하드립니다. 합격하셨어요. 면접이 끝나자마자 정안 씨를 뽑으라고 하시더라고요.”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기쁨의 소리를 질렀고, 동시에 수만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드디어 끝났다!

와 나도 사원증 받는 건가?!

가만있어봐 여기 연봉이 얼마더라

그럼 오늘은 좀 비싼 거 먹어도 되나?!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의문.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진짜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대답했는데, 그분은 어떻게 단번에 알아챘을까?


그렇게 내가 없던 시간 동안 펼쳐졌던 그의 시간이 점점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입사했더니 회장님이 오타쿠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