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윤희는 나와 술을 텄다고 해서 갑자기 놀이터에 나오거나 하지는 않는다. 방어적인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불안정한 윤희의 성격 때문에 진수까지도 놀이터에서 놀 기회를 박탈당한다. 가끔은 진수가 안쓰럽지만 언제나 선을 지켜야한다. 특히나 술을 마실 때 괜한 충고나 육아방식에 대한 터치 같은 것은 금물이다. 이제 술친구가 생겼으니 새로운 조항도 만들어본다.
완벽한 키친드렁커가 되기 위한 열세 번째.
술은 같이 마시되 선을 지킨다.
나는 시원이를 위해 놀이터에 나간다. 다른 엄마들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어느 정도는 거리를 두지만 어느 정도는 적절히 다가간다. 언제 봤는지 상준엄마가 묻는다.
“자기. 아까 진수엄마랑 얘기하더라. 진수엄마가 누구랑 얘기하는 거 처음보네.”
“그냥요. 뭐. 숙희네 반찬 뭐 나왔나.”
“보면 자기가 친화력 제일 좋아.”
나는 그냥 웃는다. 내 소설 속에 상준엄마 캐릭터는 굳이 MSG를 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할 것 같다.
요즘 나는 윤희와 일주일에 한 번쯤 술을 마신다. 혼자 마실 때는 소설을 쓰며 마신다. 술 이야기를 술을 마시면서 쓰니까 술술 써진다. 시간가는 줄을 몰라 저번에는 시원이 픽업을 잊은 적도 있었다. 깜짝 놀라 식탁도 못 치우고 대충 술병만 챙겨 버리고는 달려 나가기도 했다. 그 때부터는 알람을 맞춰놓기로 했다. 3시30분. 애데렐라는 하원준비를 시작한다. 계절이 바뀌고 있다.
맥주와 하이볼의 계절.
여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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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많이 더워졌다. 이런 날에는 안주보다는 술에 더 집중한다. 하이볼. 원래 하이볼은 위스키를 탄산수와 얼음을 넣고 레몬이나 라임을 가미해 상큼하게 먹는 술이다. 청량함과 시원함이 맥주보다 더하고 음료수 같지만 맛있어서 마구 먹다보면 꽐라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생각한 게 와인하이볼. 길쭉한 투명 유리잔에 위스키대신 싸구려 레드 와인을 탄산수와 얼음을 섞고 레몬즙을 넣고 한번만 잡숴봐. 이것 때문에 여름을 기다릴 지경이다. 가끔 시나몬시럽을 넣으면 그 또한 알싸하고 쌉쌀한 맛이 일품이다. 나의 부엌 창가에는 작은 애플민트 화분도 자라고 있다. 초록색 싱싱한 잎을 똑 따서 물로 헹궈 하이볼 얼음 위에 띄우면 어느 칵테일바 부럽지 않은 비주얼이다. 우아한 와인애호가들이 들으면 경악할 만한 레시피이지만, 키친드렁커의 장점이 무엇인가. 남이 뭐라 하던 내 맘대로 먹을 수 있다는 거다. 사진을 찍고 나의 비공개 SNS에 올린다.
“와. 이거 뭐야. 언니.”
나는 장바구니 한가득 와인과 탄산수 레몬즙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 윤희의 부엌에서 술을 제조한다. 윤희는 단숨에 빨대로 쭉 빨아들인다. 이건 빨대로 먹어야 제 맛이다. 요즘은 간간히 파는 곳이 있지만 와인하이볼은 위스키하이볼만큼 대중적이지는 않다. 오늘은 한낮 최고기온이 35도이다. 청량함이 필요한 날씨다.
마침 윤희가 샐러드를 준비했다. 약간 쓴맛까지 나는 루꼴라와 고소하고 부드러운 부라타치즈는 정말 잘 어울린다. 거기에 차갑고 달콤한 토마토. 드레싱은 올리브유만으로도 충분하다. 고급 레스토랑 부럽지 않다. 윤희는 요리를 싫어하지만 요즘은 안주 만드는 재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반찬은 만들지 않는다. 절대. 나는 사진을 찍는다. 투명한 자주빛 와인하이볼에 입맛을 돋우는 쨍한 색감의 샐러드. 이게 브런치지. 브런치가 별거 있나.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가까워졌다. 윤희는 나에게 전수받은 스킬로 점점 완벽한 키친드렁커가 되어가고 있었다. 시어머니 숙희와의 사이는 여전했다. 숙희는 윤희를 여전히 무시하고 괄시하고 등한시했지만 윤희는 이제 괜찮다고 했다. 새벽일이 끝나고 오전이 지나 맛있는 술과 음식을 먹을 생각에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고 했다. 십일 번과 십이 번을 지키니 진수아빠와의 싸움도 열 번 싸울 것이 다섯 번으로 줄었다고 했다. 나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했다. 나는 알콜 중독에 가까웠던 한 여자를 완벽한 키친드렁커의 세계로 초대했다는 뿌듯함에 심취해있었다.
“차량이 도착했습니다.”
세 잔째 와인하이볼을 말고 있을 때, 월패드에 주차장 기계음이 울린다. 귀신이라도 본 양 윤희의 얼굴이 허옇게 질린다.
“어떡해.. 진수 아빠 왔나봐.”
윤희는 그대로 얼음이 되어있다.
“침착해. 내가 정리 할 테니까 얼른 이 닦아.”
나도 당황했지만 앞에 있는 와인하이볼을 빨대로 쭉 빨고 싱크대에 황급히 넣는다. 얇은 유리잔이 손에서 미끄러져 쨍그랑 소리를 낸다. 다행히 깨지지는 않았다. 샐러드와 접시도 그냥 싱크대에 대충 넣는다. 내가 있던 흔적을 없애고 나가고 싶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스크롤로 된 싸구려 와인병의 뚜껑을 재빨리 닫고 장바구니에 넣는다. 지하 2층 주차장에서 10층까지 올라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15초에서 1분. 엘리베이터 상황에 따라 걸리는 시간은 다르다. 나는 급히 자리를 정리하고 슬리퍼를 신고 복도로 나선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고 있다. 2층. 3층.. 나는 계단으로 향한다. 두 칸씩 성큼성큼 내려가 8층을 지날 때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진수 아빠가 10층에 내리는 모양이다.
출퇴근이 불규칙한 진수아빠는 집에 불쑥불쑥 들어올 때, 그날이 오늘인가보다. 주로 우리집에서 만나지만 윤희가 오늘은 납품 때문에 남편이 일찍 올 일이 없다고 하여 윤희네서 먹은 것이 화근이었다. 월패드에 주차장 기계음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알콜성 치매라고 소리치던 진수 아빠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웃여자가 와서 술을 같이 마시고 있으면 그 이웃여자가 얼마나 꼴 보기 싫겠는가. 굳이 내 남편도 아닌 다른 남편에게 비난을 듣고 싶지 않다. 순간적으로 계단으로 내려간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윤희도 우리 집을 올라올 때 계단을 이용한다. 9층에 사는 하율엄마라도 만난다면 소문이 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진수엄마가 우리 동 3층 가더라. 3층이 누구지? 시원이네? 둘이 친한가?”
나는 집으로 들어와 와인병을 꺼낸다. 와인하이볼 딱 한 잔만큼 남아있다. 알뜰하게 털어먹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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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은 후로는 거의 대부분 우리 집에서 만났다. 윤희네 키친은 더 이상 드렁커의 안전지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벌건 얼굴로 남의 집 남편과 그 집에서 마주치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여름이 깊어지고 있었다.
오늘 나는 오랜만에 오븐을 가동한다. 구수한 빵 냄새가 집안을 후끈하게 만든다. 올해 처음으로 에어컨을 가동했다. 오늘의 술은 깔루아밀크. 깔루아 밀크는 깔루아라는 커피향이 강한 단맛이 나는 술과 우유를 섞어 만든다. 맛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커피우유에 술을 탄 맛이다. 아이스볼을 넣어 딱 한잔 마시면 아주 부드럽게 입안을 가셔준다. 커피우유라 담백한 식사빵이 어울린다.
베이킹은 시간과 손이 많이 간다. 베이킹을 해본 사람들은 빵은 그냥 사먹는 거라고 말한다. 손이 너무 많이 가고 세상에 맛있는 빵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집 오븐에서 갓 꺼내 뜯어먹는 식빵은 아무리 맛있는 빵집도 당해낼 수가 없다. 대학 시절, 집 근처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는 그 맛을 알게 되었고 지금도 그때의 맛을 잊지 못한다. 윤희도 오늘 갓 오븐에서 꺼낸 빵의 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깔루아밀크는 너무 음료수 같다. 그리고 우유가 들어 결정적으로 배가 불러 많이 먹을 수 없다. 한 잔 씩만 마시고는 윤희는 가져온 와인을 꺼낸다. 드라이하고 묵직한 것이 만 원대의 와인치고 훌륭하다. 나도 내 와인을 꺼낸다. 각 일병. 자주 먹다보니 이제는 윤희와 아예 각자의 메인 술을 준비해서 먹는다. 이 방법은 윤희가 먼저 제안했다. 자기가 아무리 천천히 먹으려고 해도 페이스 조절이 힘들다고. 노력은 하고 있으나 깔끔한 관계를 위해 술은 각자 들고 먹자고. 아주 좋은 제안이었다. 우리는 같이 인 듯 혹은 따로 인 듯 키친을 공유하는 관계가 되어가고 있다.
윤희는 어제 응급실에 다녀온 이야기를 꺼낸다. 어제 밤, 진수가 넘어져서 발을 다쳐서 응급실을 급히 갔다 왔다고 한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지만 당분간은 조심해야 한다고. 이제는 많이 나아져서 내일 오랜만에 등원한다고. 아이들이 어릴 때 응급실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나는 더운 날씨에 붕대를 감아야 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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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진수 발에 유리가 박혔대. 피 엄청 많이 났대. 꿰맸대. 그럼 바느질을 하는 거야? 살을?”
저녁 식탁에서 시원이의 말에 나는 의아하다.
“응? 넘어졌다던데.”
“아니, 유리가 박혀서 아빠랑 가서 꿰맸다던데. 막 보여줬어. 아까.”
어른들은 조금만 아파도 나죽겠다 엄살하는 것이 주특기라면, 상처를 자랑하고 아프지 않았다고 허세를 부리는 것은 아이들의 전유물이다. 진수가 어린이집에서 상처를 자랑했나보다. 분명 윤희는 넘어졌다고 했는데 유리가 박혔다니?
“그래서 오늘 유모차 타고 갔어. 애기처럼.”
윤희가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나는 묘한 기분이 든다. 아이가 다친 이유를 엄마가 숨기거나 거짓말 할 이유가 있을까? 보통 그런 경우, 몇 가지 가능성이 있다. 아이가 다치면서 남에게 피해를 줬다거나, 다친 이유를 다르게 알려야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던가, 혹은 엄마의 잘못으로 아이가 다쳤거나. 엄마는 자기방어, 자기변명으로 작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나는 어쩐지 마지막 이유일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하지만 나는 묻지 않는다.
완벽한 키친드렁커가 되기 위한 열세 번째.
술은 같이 마시되 선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