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마케팅이 안 되는 게 아니다. 정의가 없다.

by 언덕파



거리측정기는 숫자를 준다. 하지만 클럽은 골라주지 않는다. 그래서 골프는 스윙이 좋아도 망한다. 결정이 흐리면, 좋은 샷은 ‘가끔’ 나오고 스코어는 ‘자주’ 깨진다. 요즘 많은 브랜드가 딱 그 상태로 일한다.

대표들은 바쁘다. 마케팅 회의를 하고, 광고를 집행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데이터를 본다. 그런데 이상하게 결과는 제자리다. 광고 효율은 점점 떨어지고, 채널은 늘어나는데 매출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때 대부분은 실행을 더한다. 예산을 조금 더 올리고, 채널을 하나 더 열고, 대행사를 바꾸고, 콘텐츠를 더 쌓는다. 문제를 ‘실행의 부족’으로 정의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그림은 다르다. 이건 실행의 문제가 아니다. 정의의 문제다. 지금 이 브랜드가 무엇을 파는지, 누구에게 왜 선택받아야 하는지, 어떤 구간에 서 있는지에 대한 정의가 없다. 정의가 없으면 전략은 늘 추가가 된다. 무엇을 할지 묻고, 무엇을 더 붙일지 고민한다. 하지만 전략의 본질은 더하기가 아니다. 지금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자르는 일이다. 자를 수 있으려면 먼저 문장이 서야 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결하는 브랜드인가.”


예를 들어 신규 유입이 줄었다고 하자. 회의실의 첫 반응은 대개 같다.

“광고를 늘리자.”

하지만 실제 데이터를 뜯어보면 전혀 다른 문제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유입이 줄었다기보다, 기존 고객 이탈이 더 큰 구멍인 경우다. 멤버십이 약한지, 구매 후 경험이 부서졌는지, 재구매를 막는 마찰이 있는지, 고객이 떠나는 이유가 무엇인지가 먼저인데, 정의가 유입 부족으로 굳어지는 순간 처방은 자동으로 광고 추가가 된다. 잘못 정의하면, 잘못 처방한다. 그래서 계속 바쁜데 계속 제자리다.

브랜딩도 마찬가지다. “우리 브랜드를 더 알리고 싶다”는 말은 정의가 아니다. 누구에게, 어떤 결핍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 브랜드인지가 먼저다. 이 문장이 선명하지 않으면 슬로건은 계속 바뀌고 콘텐츠는 흔들리고 조직은 지친다. 내부에서 열심히 만든 결과물이 바깥에서 그럴듯한데 왜 사야 하지?로 돌아오는 이유는 대개 여기서 시작된다. 메시지가 나쁘다기보다, 메시지가 서 있는 땅이 없다.

퍼포먼스 마케팅의 숫자도 착각을 만든다. CTR이 오르고 CPA가 내려가도 브랜드가 선명해졌다는 뜻은 아니다. 데이터는 결과를 보여주지만 방향을 정해주지는 않는다. 방향은 정의에서 나온다. 어떤 팀은 지표가 좋아지면 더 자신 있게 실행을 늘리고, 어떤 팀은 지표가 좋아져도 계속 불안해한다. 둘의 차이는 실력이 아니라 기준이다. 무엇을 성공으로 볼지, 무엇을 실패로 볼지, 어떤 지표가 우리가 가는 방향과 연결되는지에 대한 정의가 있느냐 없느냐.


많은 조직이 실행자 중심으로 움직인다. 기획은 실행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 취급되고, 판단은 회의가 끝나고 나서 일단 해보자로 대체된다. 하지만 실행은 판단이 끝난 다음 단계다. 판단이 흐린 상태에서의 실행은 속도만 낭비한다. 골프에서 일단 쳐보자가 가장 비싼 선택이듯, 마케팅에서도 일단 돌려보자가 가장 비싼 선택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부터 실행은 성장이 아니라 불안을 숨기는 방식이 된다.

그래서 먼저 묻는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더 할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지금 당장 멈춰야 할 채널은 무엇인가. 당분간 포기해야 할 타깃은 누구인가. 줄여야 할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브랜드는 평균으로 수렴한다. 시장은 노력의 총량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선택의 정확도로 움직인다.

정의가 선명하면 실행은 줄어든다. 정의가 흐리면 실행은 늘어난다. 지금 결과가 답답하다면 무엇을 더 해야 할지를 고민하기 전에, 무엇을 잘못 정의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실행은 이미 충분하다. 문제는 판단이다. 그리고 판단은, 실행보다 어렵다.


<정리>

정의가 없으면 실행이 늘고, 실행이 늘면 성과는 흩어진다. 먼저 문장을 세우고, 그다음에 잘라야 한다.

실행은 그다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