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모든 걸 다 하려는 순간, 브랜드는 약해진다

by 언덕파



마케팅이 복잡해진 시대라고들 말한다. 채널이 늘었고, 포맷이 늘었고, 지표가 늘었다. 그래서 많은 브랜드가 이렇게 결론을 낸다.


우린 더 많이 해야 한다.


문제는 그 순간부터다. 더 많이 한다는 건 대개 더 넓게 한다는 뜻이고, 더 넓게 한다는 건 대부분 더 얕게 한다는 뜻이다. 얕아지는 순간 브랜드는 약해진다.

다 하자는 가장 그럴듯한 말이다. 아무도 반대하기 어렵다. 안전해 보인다. 그런데 골프에서 안전해 보이는 선택이 항상 안전하지 않듯, 비즈니스에서도 다 하자는 결정 회피의 다른 이름이다. 결정은 불편하다. 포기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직은 포기를 미루고, 미루는 동안 실행을 늘린다. 실행이 늘어나면 바쁘다. 바쁘면 성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성장과 분주함은 다른 말이다.


브랜드가 약해지는 첫 번째 신호는 메시지가 늘어나는 것이다.

같은 제품이 채널마다 다른 말을 하기 시작한다. 인스타에서는 감성, 검색에서는 기능, 광고에서는 할인, 오프라인에서는 프리미엄. 다 맞는 말 같지만 그 말들이 한 문장으로 묶이지 않으면 고객은 결국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되지 않는 브랜드는 비교된다. 비교되는 순간 가격으로 내려간다.


두 번째 신호는 성과가 나는 구간과 성과가 안 나는 구간이 섞이는 것이다.

어떤 채널은 당장 매출을 만들고, 어떤 채널은 신뢰를 만든다. 어떤 캠페인은 신규 유입을 만들고, 어떤 캠페인은 이탈을 막는다. 문제는 모든 채널을 동일한 KPI로 몰아넣는 순간 생긴다. 전환이 나오는 채널에는 브랜딩을 요구하고, 브랜딩 채널에는 전환을 요구한다. 그 결과는 늘 같다. 전환도 애매해지고, 브랜딩도 애매해진다. 애매해지면 더 하게 된다. 여기서 루프가 완성된다.


브랜드를 강하게 만드는 건 실행의 총량이 아니다. ‘역할’의 분리다.

해야 할 일을 늘리는 게 아니라, 역할이 겹치는 일을 줄여야 한다. 실제로 성과를 만드는 팀은 실행이 많지 않다. 대신 뚜렷하다.


이 채널은 이런 역할만 한다.

이 캠페인은 이 목적만 한다.


목적이 하나면 판단이 쉬워지고, 판단이 쉬우면 실행이 줄어든다. 실행이 줄어들면 결과가 보이기 시작한다. 많은 팀이 더 하자에 매달리는 이유는 불안 때문이다. 경쟁사가 하는 걸 놓치기 싫고, 트렌드를 놓치기 싫고, 플랫폼이 바뀌는 걸 놓치기 싫다. 그런데 불안을 줄이는 방법은 실행을 늘리는 게 아니다.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브랜드인가.

우리는 어떤 고객의 어떤 결핍을 해결하는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포기하는가.


이 질문에 답이 있으면 하지 않을 것이 생긴다. 하지 않을 것이 생기면 브랜드가 선명해진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선명함이 취향이 아니라 비용이라는 점이다. 선명한 브랜드는 덜 설명한다. 덜 설명하니 콘텐츠가 가벼워지고, 광고가 단순해지고, 팀이 덜 소모된다. 반대로 애매한 브랜드는 계속 설명한다. 설명이 길어지면 소재가 늘고, 채널이 늘고, 예산이 늘어난다. 그리고 또 답답해진다.


그러니 다 하자라는 말이 나오면 이렇게 바꿔야 한다.

그럼 뭘 안 할 건가.

이 질문이 불편하면 맞게 가고 있는 것이다. 브랜드는 결국 선택의 결과다. 모든 것을 하려는 순간, 브랜드는 누구에게나 괜찮은 것이 된다. 누구에게나 괜찮은 것은 결국 아무에게도 꼭 필요하지 않다. 실행은 누구나 늘릴 수 있다. 브랜드를 지키는 건, 무엇을 하지 않을지의 판단이다. 실행은 그다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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