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지영 작가
하고 있는 작업 위주로 지금은 사진작가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제는 옛날처럼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어졌어요. 종합적으로 사진과 그림 기반의 시각(이미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미술을 하다가 2015년에 처음 세운상가에 와서 예술단체 <스페이스바> 선생님들 덕분에 공공미술 맛보기를 하게 되었고, 지금은 을지로의
<알3028>에 소속되어서 공공예술과 개인 작품 활동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는... 류지영입니다.
@jyreu
류지영 작가 ( R3028 )
◎ 공공미술과 함께 이미지 작업을 하신다고요. 공공미술에 매력을 느낀 계기는 무엇일까요?
그동안은 쭉 혼자만의 미술을 해왔기 때문이에요. 예술은 생존의 필수요소라고 여겨지지 않잖아요. 공동체의 생존과 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기술과 과학과는 대우가 다른데, 그럼에도 예술이 사회에 영향 미치는 바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공공미술을 떠올리게 된 거예요. 직접 참여해보면 궁금증이 해소가 될 것 같았어요. <스페이스바>에 계시던 선생님들 덕분에 처음 시작하게 됐고, 그러다 을지로에서 제 또래들을 만나 지금은 알3028에서 공공을 위한 예술 활동을 하고 있어요.
◎ 사물을 담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것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제가 이론에는 집착하지 않아요. 사진 이론은 파고들면 너무 방대하더라고요. 물론 기술적인 걸 다 숙지한다면 잠재적으로 훨씬 많은 작업을 할 수 있겠지만, 저는 요즘 세상에 사진은 찍기 쉽다는 점이 최고의 매력이라는 생각을 해요. 이제는 전문성의 벽에 부딪히지 않고 누구나 본인의 관점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다는 ‘무슨 생각’으로 찍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사물 사진에서 관점이나 철학이 유독 잘 보이는 듯해요.
제가 사진 이론에 대해서 크게 집착하고 그런 게 없어요. 사진 이론이란 게 파고들면 어마어마하게 광대한 세계가 있거든요. 그런 걸 모두 다 한다면 훨씬 더 기술적으로 많은 걸 할 순 있겠지만 저는 사진은 찍기 쉬운 게 가장 장점이라는 생각을 해요. 사진은 본인의 시각을 그대로 찍어서 낼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이 있어가지고 관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에요.
◎ 인물과 사물 사진을 찍을 때에 어떤 차이가 느껴지나요?
사물 같은 경우는 발굴한다는 느낌이 있고, 인물 같은 경우는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발견을 하는 느낌이 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인물 사진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게 인물사진은 인물 그 자체로도 매력적일 수밖에 없어서 그만큼 더 어렵고.
◎ 계획중인 전시가 있나요?
일단 제가 브라운커피 사장님께 질러놓고 오긴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갤러리처럼 공간을 활용하고 계시더라고요. 사장님 다음 달에 저도 할려고요. 이러고 오긴 했어요. (웃음) 언제든지 환영이라고 해주셨고, 그런 프로젝트를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생활공간에 스며들 수 있는 그런 전시들을 좀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올해 목표 중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사진 다 풀어서 인쇄물이든, 책이든지, 전시로든지 어떻게든 써보자 생각이 있거든요. 그렇게 사진을 좀 일단락을 짓고,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자 이런 생각이 있어요.
◎ 그림에 갈증을 느끼시는 건지.... 전공이 만화고, 이력을 보니 프랑스에서 사진으로 수석 졸업 하셨다고.
고등학교까지는 만화창작과라고 해가지고 그림을 많이 그렸죠. 그리고 대학교 때는 종합미술로 시작해서 사진으로 졸업했어요. 이력서에는 원래 좋은 말을 많이 써야 되가지고...... (웃음)
◎ 작품 중에서도 인상적이었거나 의미가 남다른 그런 작품이 있을까요?
빨간 배경의 필라멘트 작품이 있어요. 저는 “백열등”이 을지로의 대표적 키워드 중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백열등 필라멘트를 보면 그 자체로 굉장히 강한 인상을 받아요. 아무래도 열기라는 것이 아주 노골적으로 잘 보이니까요. LED가 조명으로는 훨씬 쓰기가 좋은데도 일부 불편함을 감수하며 굳이 백열등을 선택하는 현상도 이 지역의 모습과 닮은 부분이 있어요. 제멋대로 말하자면, 시대가 바뀌며 자연히 도태되었어야 할 어떠한 산물이 시간이 부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특정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 마치 사고처럼 다음 세대를 만나버린 것과 같아요. 미래로 가는 한 더욱 편안한 삶을 위한 개발은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 흐름 속에서 자라온 어린 세대에게는 유물과도 같은 옛 것들이 자료에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동시대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겠죠. 꼭 백열등이 아니어도 말이에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부터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물건들에게는 당연히, 세대 차이를 훅 뛰어넘는 “매력”과 “기능”이 전제되어 있다는 거예요. 살아남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런 생명력을 시각언어로 말한다면 저에겐 백열등 사진인 것 같아요.
◎ 일산에서 오신다고 했는데, 을지로로 계속 오게 되는 이유가 있나요?
한참 사물 작업에 빠져 있었을 때니까 을지로에는 사물이 많잖아요. (웃음) 그리고 처음 왔을 때 활발하게 돌아가는 이곳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여러 가지 배경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도 좋았고, 역사적인 부분이 있으면서도 그런 잔재들이 눈앞에 보이는 게 재미있었어요. 생각해보니 세운교나 LG트윈 타워가 없었을 때부터 을지로에 왔네요. 저는 흘러가는 대로 지내는 편인데, 저도 어쨌든 이곳을 좋아하지만 변화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안 변하면 좋겠다- 이런 식의 마음만 가지고 있죠. 공모사업을 한번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주제가 지금의 우리 환경을 기록으로 남기는 거였어요. 이미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는데 할 수 있는 거는 기록밖에 없겠다- 이런 생각으로 최대한 각자가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기록했었죠.
◎ 요즘도 을지로를 다니면서 풍경을 담고 있는지요.
풍경도 찍긴 하는데 특히 철가루를 많이 찍어요. 공업사에서 철을 갈아내고 남은 쓰레기인데, 그 더미를 자세히
보면 푸른색 물감을 갖다가 휘저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은빛 수풀 같기도 하고 그래요. 형태만으로 충분히 매력
적이죠. 사실 사진을 잠시 쉬고 싶다고 말하긴 했지만 앞으로도 다시, 계속 할 수밖에 없는 게 이런 부분 때문이
에요. 실재는 있는 그대로잖아요. 그런데 같은 실재를 놓고 보아도 관점에 따라 각자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건 너
무 다르고 다양해요.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관점의 경우의 수에도 불구하고 늘 정답은 0(=사실, 실재)이라는 것. 그런 게 저는 좋아요. 한편으로는 그런 부분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기 때문에 단순한 사물의 사진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볼 때 사진보다 순수하고 정직한 작업인 그림을 다시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고요. 창작이 된 자체로 감상하며 음미할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싶어졌어요.
◎ 사람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나요?
사진을 할 때는 같은 공간에서 다른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림을 그릴 때는 제 내면을 파고
들어서 꺼내보고 싶어요.
◎ 앞으로의 목표나 을지로에서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을 지 궁금해요.
5년 전 프랑스 작가 JR의 작업에 영감을 받아 세운상가 4층으로 가는 계단 면에 필라멘트 사진을 시공하는 작업을 했었어요. 나름 오마주였죠. 저는 공간에 이미지를 접목하는 작업을 굉장히 좋아해요. 단순히 갤러리 벽면이 아니라 공간과 전체와 조화롭게 녹아들어 늘 그 자리에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사진집 만들기. 그게 가장 구체적인 목표인 것 같아요. 오랫동안 모아온 사진들을 하나씩 책으로 만들고 싶어서 올 초부터 사진을 계속 정리하고 있어요.
◎ 을지로에서 좋아하는 곳들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N/A 갤러리>
작업실과 가깝기도 하고, 전시 보러 자주 가는 곳이에요.
<이원경 / 을지천체>
을지천체를 운영하는 이원경 작가. 정말 대단한 언니거든요. 까면 깔수록 많은 게 나올 거예요.
을지천체는 잠재력이 많은 공간이에요. 신희옥 사진작가라고 을지로 하면 떠오를 만큼 초창기부터 을지로를 찍어온 유명한 사진작가 분이 계세요. 그 분 사진을 사서 현판에 걸어놓기도 했어요. 지붕도 기와로 되어있고, 쇼룸의 구조가 있어서 사심으로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위은혜 / Den>
이 언니도 많은 걸 했어요. 패션을 했는데, 뭔가 아트 스피릿이 있어요. 지금은 그래픽이랑 편집 디자인 쪽을 하고 있구요.
<R3028>
이곳은 알리고 싶은 곳이에요. 제가 여기서는 소속감 없는 걸로 활동하고 있어서 자세하게 소개는 못 드리겠네요. (웃음) 처음에는 작업실 셰어인 줄 알고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환영파티를 해주더라고요. 멤버가 됐다고.
인터뷰이_ 류지영
취재 _ 백유경, 홍주희
글&편집 _ 홍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