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024-2025년 한 해 시작을 위한 팀 회식을 진행할 때 디렉터가 12월 휴가를 빨리 말해달라고 했다.
또 시작이다. 이놈의 휴가 타령.
나는12월 크리스마스에 맞춰 일주일을 휴가를 내겠다고 했다.
그리고 12월 1일 인사부 관리용 앱으로 휴가 신청을 했다. 하지만 이미 전에 프랑스 알프스 숙소를 예약한 상태였다.
올해는 크리스마스와 남편 생일을 스키장에서 보낼 계획이었다.
크리스마스 바캉스가 시작되기 전 동료들은 다들 "죠아유 노엘, 본 페뜨, 본 아네" 하며 크리스마스와 새해 인사까지 나누었다.
연말은 거이 8월 여름휴가 기간처럼 다들 일을 안한다고 보면 된다. 내가 출근해도 다들 휴가이기 때문에 연말에는 일 없이 여유롭다.
프랑스 사람들은 휴가를 떠나기 위해 일한다는 말에 100% 공감한다.
휴가 떠나기 바로 전 날, TF1 뉴스에서는 알프스 지역에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차들이 눈길에 서 있는 장면들이 소개됐다. 우리 차가 사륜구동이고 바퀴 체인도 있어서 큰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최악의 경우, 그르노블에 사는 지인을 만난 후 하루 대기하다 다음날 알프스로 넘어갈 계획을 세웠다.
작년 샤모니에서 본모습과는 다른 설경이 펼쳐졌다.
스위스 인터라켄처럼 보는 것 자체로 힐링이 됐다.
눈이 쌓인 구간에는 차들이 한 줄로 서서 바퀴에 체인을 끼고 있었다. 우리도 차를 멈췄다.
남부에서 살 땐 6년 동안 눈을 본 게 한 번이다. 그나마 파리에 와서 눈을 봤는데 올해는 11월부터 눈이 펑펑 내렸다. 알프스에 오니 한국에 온 듯 쌓인 눈을 볼 수 있었다.
레 두 알프 Les 2 Alpes 도착
파리에서 7시간만에 알프스에 도착했다.
마을로 들어가니 입구부터 스키 렌털 매장들이 쫙 줄지어 있었다. 우리 숙소는 메인 거리에 위치해 있어서 숙소 근처에 운 좋게 주차를 했다. 우리 방은 1층이었는데 문 바로 앞에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캐리어도 쉽게 옮겼다.
새끼 고양이도 차 안에서 쉬야랑 응가도 안하고 잘 자고 잘 놀았다. 첫 여행인데 기특하다.
체크인할 때 고양이가 있다고 말했는데 '괜찮다'며 추가요금 29유로를(애완동물 일주일 요금)받지 않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고양이 화장실을 준비했다. 때서야 쉬야와 응가를 했다. 차 안에서 밥도 대충 먹었는데 숙소 오자마자 밥도 줬다.
3개월 된 우리 아기 고양이 너무 착하다.
18시에 시청에서 준비한 '매직 에브뉴' 행사를 보러 나갔다.우리가 머무는 일주일 동안 크리스마스 행사가 3개가 있다. 참 잘 왔다.
DJ음악에 맞춰 댄스 타임
저녁에 스키 대여점에 가서 가격을 문의했다.
3일 동안 스키 패키지 대여 가격은 1인 100유로 정도였다. 나는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내가 봐놨던 프리베 할인 사이트에서 40프로 할인된 금액으로 대여를 예약했다. 당연히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골랐다.총 4명이니 160유로를 아꼈다.
프랑스에는 프리베 할인 사이트가 굉장히 많다.
동료들은 매년 스키를 타러 가는데 항상 할인 사이트를 찾아예약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다음날 아침 창문을 통해 산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스키 대여점에 가서 사이즈 확인 후 대여했다.
숙소에서 2분 거리 코스로 가서 스키를 탔다.
무슬림 옷을 입고 보드를 타는 사람, 1살 된 아기와 함께 스키 타는 가족들, 중국인들은 단체로 개인 강사를 예약해 수업을 받았다.
다시 한번 충격을 받은 건 참 프랑스 사람들은 애기들 데리고 여행을 잘한다.
아기들이 이제 한 달, 세 달 정도 돼 보이는데 그들의 여행에 애기들은 방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올해 낙태법 통과 이후 출산율이 줄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여전히 주변에 애기들은 넘쳐난다.
다른 문화 탓에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가 한국에 비해 덜하고, 결혼과 상관없이 애만 있으면 정부에서 지원해 준다. 갓난아기들 데리고 여행 다니는 모습이 놀라우면서도 한편 부럽다. 나는 애기들 때문에 여행을 포기하고 살았는데... 내 삶도 잠시 멈췄는데...
아기에 내 삶은 맞추는 게 아니라 내 삶에 아기를 맞추는 프랑스 생활방식이 옳다고 판단됐다.
패러글라이딩도 할 수 있다.
이제는 키가 나만큼 큰 딸아이가 무슨 스포츠던 나보다 잘한다. 최근에는 나보다 볼링을 잘 쳐서 자신감이 많이 상승했다. 게다가 학급 수영 수업 중 7개의 그룹 중 가장 잘하는 그룹에 속하면서 자신감이 최고다.
이번 3월에 학교에서 10일 동안 스키를 타러 가는데 아마도 가장 잘하는 그룹에 속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빵집을 들려 노엘 뷔슈를 예약했다. 24일부터 사람들이 산타 모자를 쓰고 돌아다녔다. 24일 저녁은 동네가 시끄러울 만큼 요란한 파티가 진행됐다.
산타 퍼레이드도 펼쳐졌다.
그르노블에 사는 지인도 남편 생일이라고 와주었다.
남편 취미가 위스키 모으는 건데 센스 있게 지역 위스키를 선물로 주었다.
뉴스에서 속보가 계속 뜬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산사태로 Haut Savoir 지역에서 15명이 사망했고 알프스에서도 2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케이블카가 멈춰서 이백 명이 3시간 동안 공중에서 추위에 떨다 헬리콥터로 구조 되기도 했다.
13살 청소년이 보드를 타다 눈에 깔려 사망했다는 소식은 또래 아이를 가진 내 마음을 철렁 주저앉게 했다.
작년엔 눈이 너무 안 와서 스키장이 문을 닫는다고 걱정하더니 올 해는 눈사태로 사람들이 죽는구나.
선물가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26일이 되자 아침이 고요하다.
마치 모든 축제가 끝난 것처럼 말이다.
스키를 삼일 탔더니 근육통 약 없이는 움직이지도 못한다. 감기는 이미 도착한 날 걸렸다. 온몸은 아픈데 그래도 알프스는 멋있다.
"오길 잘 했어~~"
마지막 날 밤, 스키쇼를 보러 나갔다. 카메라로는 차마 담을 수 없는 장면들이 펼쳐졌다. 스키를 타며 횃불을 들고 산에서 내려오는 장면, 선수들이 스키 묘기를 부리는 장면을 보았다.
몇백 명이 스키를 타고 꼭대기에서 내려오는데 멋있었다.
그리고 스키쇼의 마지막은 역시 불꽃놀이로 마무리 됐다.
산 꼭대기에서부터 내려오는 스키 부대
한 해가 끝났다는 게 몸으로 와닿았다.
또 한 해가 갔구나.
벌써 2025년이네...
우리 학교 다닐 때 2025년도에는 택시가 하늘에서 돌아다닌다고 했는데.. 로봇이 인간 세상을 지배한다고 했고..
1999년에서 2000년대로 넘어갈 때 다 두려워했었는데 2025년도 우리의 상상보다 평범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