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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soo Jung Nov 17. 2019

영국에서든 생각들


창문을 흔드는 바람이 거세질때마다, 이번에 올 때는 두꺼운 옷을 챙겨오라고 일러 준 친구를 향한 감사의 마음 또한 함께 커짐을 인지한다. 1월의 허더즈필드는 9월과 비교해 매우 춥고 비가 많이 온다. 지난 방문 땐 이 작은 마을에서도 학교에 가려면 15분을 걸어야 하는 호텔에서 묵었는데, 좋았던 기억에 얽매여 다시 예약했다면 무척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학교에서 5분 거리인 이곳을 택한 과거의 나를 칭찬하며 방문을 잠갔다.


주일 오전 거리에는 사람이 없다. 카드, 목도리, 랩탑만을 챙겨 들고 한적한 거리를 지나 카페로 향한다. 카페 바로 옆 교회의 종소리가 울리는데 까치가 깍깍거리는 타이밍이 갑작스러운 종소리에 화가나 윽박지르는 것처럼 보인다. 미안하지만 네가 더 시끄럽다. 소이 플랫 화이트와 간단한 아침 식사를 시켜 놓고 창가에 앉는다. 아마 이 카페가 맥도날드를 제외하고는 이 시간에 문을 연 유일한 곳일 거라 생각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허더즈는 흐리고 춥고 비가 내린다. 축축한 것은 싫지만 비 오는 날에 나는 더욱 생기 있어진다. 빗줄기에 적셔진 땅에서 나는 향을 참 좋아하는데 내가 플랫 화이트나 카푸치노를 항상 두유로 바꿔 마시는 이유도 그 이유 때문이다. 소이 옵션은 커피에서 비 온 뒤 땅의 맛이 나게 한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멍하게 있다가 갑자기 밀려오는 격한 기대감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생각해보았는데, 내일 있을 특강 때문임을 인지한다. 비범죄자군에서의 사이코패시. 학교 이메일 계정으로 내가 영국에 있는 기간에 강의가 있을 예정임을 알리는 공지가 전달되었고 미리 참석 신청을 해두었고, 시험일임에도 불구하고 내일이 빨리 왔으면 하는 이유는 이 격한 기대감이 귀찮음을 이겼기 때문이리라.


지난 일 년 반 동안은 참 바빴다. 가해자 심리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은 후 수사심리 석사과정에 지원했다. 수사라는 것에 대해 자세히 알고 가면 좋을까 하여 부전공을 하나 더 추가하였는데 그것은 심리학과는 거리가 있는 경찰학이었다. 남아 있던 전공, 기존 부전공 과목들과 더불어 새로 들어야 할 과목들을 수강하며 일 년이 갔고, 그렇게 졸업을 한 후 한국에 돌아와 지내다가 석사과정이 시작되어 영국을 오가며 지냈다.


사이코패시에 대해 특별히 깊게 생각해볼 시간이 부족했지만 중간중간 나는 보편적이기보단 사이코패스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사건들이 있었다. 한 사건은 사이코패스의 ‘상황 조작 능력’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사건이었는데, 학교 한인학생회와 교회의 리더를 맡은 적이 있었다. 구성원들과 소통할 일이 많았기에 자연스레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고, 그들 중에서도 유독 카톡을 끊임없이 하고 자주 보자고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느 날 나는 이 친구가 다른 이들에게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나의 속성을 말하고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희수는 친구 A를 억압한다. A가 불쌍하다’라는 이야기와 ‘희수는 전 남자 친구랑 어떻게 친구로 지낼 수가 있느냐. 희수의 전 남자 친구가 불쌍하다’라며 ‘희수는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폭군’ 등의 여론을 형성하려고 노력했는데, 노력은 가상했지만 멍청했던 것은 이 커뮤니티는 나와 친밀했지 그 친구와 친밀하지 않았다. 하루 이틀의 어울림으로 오랜 기간 소중한 관계를 뒤집을 수 없는 게 당연하기에 그 친구의 만행은 나의 귀로 다 들어왔다. 나는 먼저  ‘A’와 ‘전 남자친구가 맞지만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친구’에게 혹시 내가 원치 않는 것을 강요해서 기분이 언짢은 적이 있었나 물어봤고, 도리어 화를 내는 이 친구들을 보며 그런 적이 없었음에 안도했다. 그리고 이간질하려던 친구는 직접 상대하기보단 상황을 조작해 그 친구의 언행이 커뮤니티에 영향을 주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런 일들은 삶에 많았는데 나에게 악의를 가지고 해를 끼치려는 사람을 나는 한 번도 직접 상대한 적이 없다. 상황을 조작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고, 쉬우며, 또 재밌기까지하다.


그렇지만 사이코패스가 충동적인 것은 초반에 생각했던 것과 같이 말도 안되는 것 같다. 나는 충동적이지 않다. 그저 판단과 행동을 빨리 할 뿐이다. 그렇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이 대부분 판단의 요인으로 넣어 놓는 것들 보다 더 많은 것들을 고려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생각해야할 것들이지만 나는 그것이 빠른 시간내에 가능하기에 충동이라는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앞머리가 자르고 싶으면 당장 자르러 간다거나, 전공에 흥미가 없음을 깨닫고 새로운 것을 찾아 빠르게 바꿔버린다. 안어울리는 또 자랄것이고, 흥미없는 일은 내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것이다. 나는 내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나의 환경이 나의 선택을 받아들일 형편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런 선택을 하였던 것이지 충동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랜기간 생각해보려고 한 적도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고려요인이 늘어났던 적은 없었다. 어떤 친구는 매번 저런 나의 모습을 보며 초반엔 섣부른 판단이 아닐까 걱정을 하며 ‘보통은 주변 사람들의 그런 경우 의견을 구하는데 넌 참 멧돼지 같은 추진력을 가졌어’라고 말했지만, 빠르게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직접 확인 한 후에는 묘하게 어감이 마음에 안드는 멧돼지라는 단어를 더 이상 듣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런 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언가를 결정할 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이코패스는 자기애가 강하다는데 나도 그렇다. 아. 그렇지만 자기애성 인격장애와는 다른 것은 타인에게 그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냥 나는 내가 마음에 든다. 이것은 나의 삶에서 한번도 변한 적이 없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삶에서 내가 제일 중요하다. 또한 나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즐긴다. 그런 주제를 놓고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날 수록 나의 장점이 무엇인지 단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며 취향 또한 깨달아 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나의 삶에서 나를 가장 큰 요인으로 두어 결정해야 할 경우에는 누구보다 빠르게 결정 할 수 있다. 이런 모습들은 어찌보면 충동적으로 보여질 수 있을 것이다.


멧돼지 친구가 떠오른다. 자동적으로 그 시절 함께 시간을 보냈던 소중한 이들이 생각난다. 미국과 비슷할 줄 알았던 영국은 그렇지 않다. 새로운 환경에 설레기도 하지만 익숙한 장소가 생각이 나는 이유는 그 사람들 때문인 것 같다. 의식의 흐름의 끝이 뉴욕에 도달하니, 뉴욕에 있는 소중한 이들이 그립다. 그렇지만 그리움이란 감정은 지금은 불필요하기에 따뜻한 플랫 화이트를 한 모금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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