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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익 Jul 16. 2023

너무나 당연한 저출산


저출산, 큰 일이다. 이렇게 가다간 나라 망한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어쩌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에 이르렀을까. 모두 저마다 답을 알고 있다. ‘집값 때문이다’, ‘입시 경쟁이 치열해서 그렇다’, ‘개인주의 문화 때문이다’ 등등. 0.78이란 숫자는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 모든 요인이 버무려진 결과일 테다.



합계출산율 : 가임 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 (통계청)



진화학자 장대익은 초저출산 현상을 “주위 환경에 맞추어 오래된 인간 마음이 적응적으로 반응한 결과“로 설명한다. (장대익, <공감의 반경>, 바다출판사 2022.)  진화론적 관점에서 저출산은 경쟁압이 강력한 사회에 개체가 적응해 나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설명에 따르면, 생명체는 '유전자 보존(자기복제)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설계된 기계'이다. 번식이 곧 생의 목적이며, 이를 이행하는 방법은 종마다 다르다. ’빨리 많이 낳는 경우(r선택)'가 있고, '늦고 적게 낳는 경우(K선택)가 있다. 동물 세계에서 K선택은 주변에 자기와 같은 종의 개체가 많을 때 발생한다. 낳아봤자 경쟁이 치열해 후손의 생존 확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출산을 미루는 대신 자기 경쟁력을 더 높여 다음 짝짓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K선택 종인 인간은 각자 환경에 따라서도 조금씩 다른 생애사 전략을 택한다. 개인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 및 생애 주기를 고려하여 번식과 생존의 방법을 결정한다. ‘빠른 생애사 전략’을 취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자녀를 많이 낳고 양육에 덜 신경 쓴다. 반대로 ‘느린 생애사 전략’을 선택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적게 낳고 양육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여러 통계들에 근거하면, 생애주기 선택과 인구 밀도 사이에는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 인구 밀도가 높을수록 사람들은 느린 생애사 전략을 선택한다. 서울이 한국에서 가장 많은 청년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출산율 꼴찌를 기록하는 이유다.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경쟁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서 번식보다는 자신의 성장에 투자할 동기가 더 크고,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는 쪽으로 행동전략을 수정한다.


2020년 기초자치단체별 인구 밀도와 합계출산율 상관관계.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서도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이다. 인구 절반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학생들은 어린 시절부터 치열한 입시경쟁에 내몰려 산다. ‘좋은 일자리’에 입성할 수 있는 관문도 좁다. ‘내 집 마련의 꿈‘도 결코 쉽지 않다. 젊은 한국인들에게 경쟁은 일상이다.


여기에 사회심리적 요인도 작용한다. 벼농사 문화권인 동아시아 사회는 서구에 비해 상호의존적이고 집단적인 문화가 강하다. 한국은 ”일대일의 개인적 관계를 중시하는 관계주의 성향“도 짙게 나타난다. 그렇다 보니 한국인은 타인과 자신의 삶을 연결 짓고 비교하는 데 민감하다. 타자 간의 연결성이 강함에도 다양성 지수는 낮고, 각종 사회 의제를 둘러싼 갈등 지수는 높다.


이렇게 각박한 환경에서 출산을 빨리-많이 하는 전략은 비합리적이다. 오히려 자녀를 낳고 키울 여력을 자신의 성장에 투자하는 결정이 자연스럽다. 자녀를 양육하더라도 한 명 정도만 정성껏 키우는 방향이 당연해진다. 그러니 저출산이라는 ‘적응 현상‘을 바꾸려면, 한국 사회의 환경 조건이 달라져야 한다. 한국 사회를 억누르고 있는 높은 경쟁 비용을 어떻게 조정할지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경쟁 밀도가 높으니 경쟁 없는 사회로 가자 ‘는 주장이 아니다. 불필요한 경쟁 비용을 줄임으로써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자는 얘기다. '치열하게 사는' 한국인 특유의 문화 유전자는 ‘보다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발현되어야 한다. 수도권 블랙홀을 완화할 수 있는 산업정책-지역균형발전이 필요하고, 유연 안정성을 제고하는 방향의 노동개혁이 요구된다. 또한 한국 사회의 낮은 공공 사회 서비스 비중을 높여나감으로써, 돌봄 비용을 개인의 희생에 떠맡기지 않아야 한다. 사회 전반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다양성을 지향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유독 경쟁이 치열한 이유는 좋은 삶을 규정하고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성공의 잣대가 다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다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 제도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가족 문화를 수용하며, 안정적인 이민 정책도 시행해 나가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혁신으로 이어지고, 혁신으로 인한 경제성장은 공동체를 보다 여유(餘裕)롭게 할 것이다. 다양성-경제성장-민주주의 사이의 선순환을 추구해야 한다.



이쯤 와서 이런 반론도 제기될 것이다. “결국 저출산이 적응 현상이면 그냥 놔둬서 인구 감소가 문제를 해결하게 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의견 말이다. 물론 저출산은 그 자체로 나쁜 현상이 아니다. 여성해방과 개인주의의 관점에서 봤을 땐, 저출산은 우리 사회가 가부장제에서 멀어지고 여성인권이 증진되어 온 추세적 결과로 볼 수도 있다. 또한 대부분 남녀가 30대 초중반에 결혼하는 생애주기라면, ‘합계출산율 1명대'를 정상값으로 보아야 할 수도 있다.


출처: 노컷뉴스 (https://m.nocutnews.co.kr/news/5757741)


그러나 그럼에도 초저출산에 대응하는 ‘구조개혁’이 중요한 이유는, 국가적 차원에서 ‘급격한 충격’만큼은 방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저출산의 문제는 ‘인구 구조’에 있다. 초저출산의 다른 면은 ‘초고령화’이다. 한 청년이 부양해야 할 노인의 수가 많지 않다면(부양비가 높지 않다면), 인구 감소는 그런대로 괜찮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부양비는 27년간 41%에서 90%로 급증한다. 이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지금부터 아이를 한 집당 2명씩 낳는다고 하더라도 - 계산상 그렇게 태어난 아이조차 부양인구다 - 현 2030세대는 초고령화 파고를 피할 수 없는 구조다.


인구 쇼크에 대응하는 연착륙 전략(구조개혁)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이대로 가다간 10년, 15년 뒤 대한민국 시스템은 무너져 버린다. 미래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지는 지금 우리의 결심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 한국 사회의 구조는 앞으로도 지속가능한가? 과연 대한민국은 행복한 나라인가? “당신은 행복한가?”.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당장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조차 행복하지 않은 사회다. 높은 경쟁압을 해소하지 않고 “아이 낳으면 돈 주겠다”는 정책만 - 현금성 지원책이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 일관해서는, 초저출산 대한민국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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