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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Mar 26. 2024

청계천에서

청계천에서   


       

개천조차 보이지 않는 청계천 

저녁이면 어디선가 몰려드는 손수레 위

미처 동해로 돌아가지 못한 

서글픈 육신은 곱게 썰린 채 널브러진다 

    

금방이라도 끊길 듯한 자동차 배터리의 수혈로

간신히 수명을 이어가던 희미한 불빛 아래

새하얀 수의를 곱게 차려입고

퇴근하는 남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골목마다 가게마다 닫힌 셔터 뒤로 하고

후줄근한 발걸음들이

서글픈 육신의 빈소 찾아 모여든다  

   

문상객 손에 들린 소주잔에 어리는

우울한 눈동자 안에는

슬픈 눈망울의 못다 한 꿈만 어른거린다 

    

그저 입으로만 명복을 빌어줄 뿐

입 안에 넣고 질겅거리는 꿈은 

어차피 그들의 꿈은 아니다   

  

여느 장례식장처럼 소란스럽기도 하다가

술에 취한 객들은 실랑이도 벌이고     


말 없는 문상객은 부의금으로

동전 몇 개를 손수레 위에 놓는다           




첫번째 시집 <흩뿌린 먹물의 농담 닮은 무채의 강물이 흐른다>에 실린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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