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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디울 Sep 14. 2020

#4. 다른 사람이 권하는 아이는 갖고 싶지 않아요.

아이 권하는 사회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은 어른들이 던지는 “넌 공부 잘하니?”라는 질문이라는데, 중학교까지 그럭저럭  상위권을 유지하던 나는 가족 모임 중 어른들에게 받는 이런 질문에 “예?  네...” 하고 작은 소리로 넙죽 대답도 하곤 했다. 그러면 곧바로 “ 반에서 몇 등 하는데? ”라고 아주 구체적이고 당황스러운 질문이 이어졌다. 맙소사! 전교에서 1등을 하지 않는 한 이런 곤란한 질문에 대답하고 싶은 아이가 있을까? 열등감은 비교우위 상대를 찾기만 하면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쉽게 발현되는 것이니 이런 질문은 누구에게나 당혹감을 안겨주기에 안성맞춤 아닌가! 

고등학교에 올라가 성적이 한참 떨어지고 나와 동갑인 사촌들이 모인 장소에라도 가면  이런 질문이 다시 돌아올까 안절부절못하게 됐다. 세 명의 같은 학년이 모인 장소에서 내가 가장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대 입시 준비에 학원비를 쓰고서도 나만 대학에 떨어지는 건 아닌지 생각만 해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반에서 누가 대학에 붙고 떨어지고 보다  이 비교 대상이 되는 셋 중에 나만 입시에 실패한 낙오자가 되느냐 마느냐가 더 신경이 쓰이고 민감한 문제로 다가오곤 했다. 사실 대학이라는 곳에 가는 목적이 이 비교 대상에서 뒤지지 않으려는 부분이 반 이상이라 해도 될 만큼 이런 부질없는 질문에 은근히 압도당하고 있던 게 사실이어서 당시의 불안을 떠올리면 요즘 말로 웃퍼진다.     



이렇게 “너 공부 잘하니?”라고 묻던 어른들을 커서 만나면 연이어 벌써 네가 대학 졸업이야? 그래 직장은? 연봉은? 애인은 있고? 결혼은? 평생의 이런 무례한 질문 공세를 이어갔다.

 그런데 분위기를 보아 세대불문 아직도 우리나라 전체에 이런 어른들이 존재하는듯하니 요즘 아이들은 조금만 커도 집안 모임에 끌려가지 않으려 한다는 소리가 너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이런 어른들의 압박공세를 뚫고 남들과 비슷하게 대학도 가고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하다 보니 어느덧 21세기가 도래했다.

옛날 즐겨보던 SF의 영화에선 밀레니엄 시대에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우주를 제집처럼 넘나드는 과한 상상이 판을 쳤지만 막상 펼쳐진 밀레니엄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는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챙겨야 하는 경조사를 다니기에 바빴고 세상은 지루할 정도로 변함이 없어 보였다.     

경조사 중에도 여러 돌잔치를 다니다 보면 더욱, 우리처럼 결혼 후 아이를 갖지 않은 부부는 좀처럼 없는 듯 보였으나, 바로 이맘 즈음인 2002년부터가 바로 우리나라가 저출산 시대에 접어들어 17년째 지금까지 하강곡선을 그리게 된 시작이라고 하니, 주변에 흔치 않다 여겼던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이 확인되는 되는 셈이다. 출산 문제뿐일까? 서른이 넘으면 노총각 노처녀라 불릴까 걱정하며 결혼을 서두르던 생각이 사라지고 결혼에 신중한 싱글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밀레니엄 시대에 공상과학 같은 우주시대가 열리진 않았지만 IMF를 극복하며 우리 세대들의 가치관도 같이 많이 변했던 시점임은 분명해 보인다.      



         

 돌잔치에 가면 회사 상사나 집안 어른들의 질문 패턴이 아이로 연결되는 건 당연했다.     


“그래 결혼했는데 애는 왜 안 낳아? 넌 이 집 보다 먼저 결혼했잖아 ”

“네. 낳아야죠. 한 일 이년 뒤에 낳을까 해요”

“빨리 낳아야지 뭔 일이 년 뒤야! 빨리 낳아”

“ 아...네... ”     


막상 아이를 낳아도 더 나으라는 종용을 당했을 이런 노골적인 어른들의 훈수가 자행되던 밀레니엄 시대에, 아이는 덕담을 가장한 부담스러운 주제 1순위로 끝없이 화두에 오르고 있었다. 이런 싫은 점도 있지만 우리 결혼식에도 참여했던 많은 분들, 내 인생의 관심을 가져주던 가족 구성원이자 선배인 이들을 아이처럼 안 보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런 질문공세도 감수하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여겼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런 사사로운 질문들이 얼마나 우리를 옭아매는지... 때론 어른들이 툭 던지는 조언이 인생을 가르는 지침이 될 때도 있듯이, 누군가의 이런 질문공세가 생각보다 우리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세상 누구보다 부모님, 가족 친구에게 더 이해받고 존중받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우리의 인정 욕구 아닐까? 우리 인생에서 이런 가까운 가족과 지인들에게 받는 피할 수 없는 질문들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것이 될 때가 많지만, 매번  이런 예민한 주제의 대화는 아주 거칠게 다뤄지기 십상이고 우리 인생의 힘을 빼게 하는데 충분한 것이 되곤 한다.          


어느 날 출판사 미팅에서 처음 담당 직원을 만나는 자리의 어색함을 풀고자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가다가 나도 모르게 담당 동성 직원에게 “결혼하셨어요?”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 두 사람이 모두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대답하니 별 진전도 없이 그냥 호구조사성 질문이 된 것 같아 미팅이 끝나고 내내 그 대화가 마음에 걸렸다.

 왜 내가 거기서 평소에 안 하던 그런 사사로운 질문을 던졌을까? 굳이 변명을 하자면 대화의 공통점을 찾아 친밀감을 찾으려 했던 노력 중에 나도 모르게 나왔던 말이 아닐까 되짚어 본다. 어쨌건 후로 더욱 다시 그런 개인적인 질문을 삼가려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막상 그런 질문을 하고 보니 나에게 아이 유무를 묻는 다소 껄끄러웠던 질문도 이런 대화의 한 단계일 수 있겠구나 하며 마음속 날을 세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누군가 ‘아이는 있으세요?’라는 질문을 넘어 ‘아이를 권유’하는 단계로 나간다면 이해의 차원을 넘는 것이 되어 불편해지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져봐서 좋은 것, 자기가 겪어봐서 좋은 것을 권하는 것이 좋은 권유라 여기는 것에는 거리낄 것이 없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개인의 취향으로 좋은 것이 진리처럼 남에게도 좋은 것이 되느냐는 함부로 침범해선 안 될 경계임이 분명하다. 그것이 종교이던, 아이이던, 무엇이던 그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글 · 그림   반디울


                                                  https://www.instagram.com/bandiul/?hl=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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