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은 박사 2년 차 때, 랩실 선배와 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2년 후, 그 선배가 S대 전임강사로 자리를 잡자 바로 결혼했다.
워낙 유능하고 똑똑해서 모두들 수연 남편의 교수 임용을 당연하게 여겼다.
훤칠한 키에 젠틀하고, 말주변이 좋았다. 무엇보다 능력이 넘쳤다.
모교 교수들 눈에는 학부와 석·박사를 모두 마치며, 소란스러운 사회 변화 속에서도 철저히 관조적인 자세로 탁월한 학문적 성과를 내온 제자가 동료가 되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수연 남편은 지도교수가 퇴임하기 1년 전, 신임 교수로 학교에 들어가 일사천리로 랩실을 장악했다.
결혼 후 수연은 아이를 낳고, 기르며 박사 논문을 썼다.
남편은 ‘천천히 하라’고 했지만, 수연 성격상 그건 불가능했다.
학위가 끝나고, 연구소에 입사한 후에는 네 살이 된 민이의 어린이집과 회사를 시계추처럼 오갔다.
그러다 기회가 찾아왔다.
서울에서 두 시간 반 거리의 지방 국립대에 조교수로 임용된 것이다. 집안의 경사였다.
문제는 거리였다.
출퇴근이 불가능해 학교 근처에 작은 아파트를 구해 민이와 함께 조용하지만 바쁘게 지냈다.
직장 있는 주말부부들이 말하는 "하늘이 내려준다는, 주말부부의 삶"이 시작되었다.
전임강사였던 수연은 오전에 민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오후 퇴근까지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지냈다. 연세 지긋한 돌봄 아주머니가 어린이집 끝나는 시간에 맞춰 민이를 집에 데려와 수연이 퇴근할 때까지 정성껏 돌봐 주셨다.
아주머니는 민이를 실컷 놀게 해주고, 깨끗이 씻긴 뒤 민이가 좋아하는 밑반찬도 해 놓았다.
수연은 퇴근할 때마다 논문 작업을 위해 한아름 자료를 싸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밤 9시에 잠들면 수연은 새벽까지 논문을 썼다.
새로운 교과목은 모두 신임교수의 몫이었고, 학생들의 MT, 개강·종강 모임, 체육대회, 축제 등 주요 행사는 늘 신임교수가 도맡아야 했으니 몸이 두 개라도 시간이 모자랐다.
그렇게 꼬박 부교수 승진까지 학교와 집을 오갔다.
아들도 잘 자랐고, 남편과 수연도 자리를 잡아가는 듯 보였다.
주말이면 수연 남편이 내려왔고, 아들 민이와 둘이 자던 침대에 남편이 누우면 부러울 것이 없었다.
금요일 오후에 내려온 남편은 주말마다 민이를 데리고 과학관, 박물관, 미술관을 다녔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아들에게 소소한 질문을 던졌다.
민이는 아빠가 묻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우물쭈물했다.
그러면 남편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애는 서울에서 키워야지. 시골에선 배우는 게 느리다니까.”
“아직 어린데 뭘 그래.”
“몰라도 한참 모르네. 어릴 때부터 준비해야 그대로 상위 코스를 밟는 거야. 한가하고 낭만적인 생각으로는 1%에 못 들어가. 안 돼! 세상은 관대하지 않아. 당신은 남편 잘 만나서 교수 된 거지. 안 그래?”
수연은 거슬렸다. 남편의 도움도 있었지만, 그건 수연이 해낸 것이었다.
굳이 남편의 자부심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기에, 처음엔 맞장구를 쳤다.
“맞아, 다 당신 덕이지. 당신이랑 살아서 이렇게 됐지. 예쁜 민이도 낳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