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 불륜

동거인의 직감

by 정루시아

수능이 끝나자 남편은 미국 대학 진학을 알아봤다. 민이도 동의했고, 졸업 후 바로 유학을 갔다.
어쩌다 부부 관계가 소원해졌는지, 수연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밀물과 썰물처럼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흐르며 모래가 쌓였고, 어느새 각자의 언덕에 서게 되었다.


민이가 서울로 간 뒤부터는 거의 별거 상태였다. 남편의 일상적인 말들이 수연을 파도에 밀려나가는 죽은 조개껍데기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주말에 서울에 올라가도, 늦은 밤 남편이 다가오면 수연은 자신도 모르게 남편을 밀어냈다.


민이를 몰아붙이는 사람과 부부의 즐거움을 나눈다는 게 도무지 용납되지 않았다.

결국 부부 생활에서 내밀한 관계는 완전히 사라졌다.
민이가 유학을 떠난 뒤, 두 사람은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는 "동거인"이 되었다.

민이에게는 여전히 아빠와 엄마였지만, 부부는 아니었다.


민이가 유학 간 그해 가을, S대에서 학회가 열렸다. 수연은 남편과 함께 갈 거라 생각했는데, 남편은 이른 아침 학교에 간다며 학회장에서 보자고 했다.

현장에서 등록을 마치고 포스터 전시장으로 들어서니, 남편과 대학원생들이 둥글게 서 있었다.

남편 옆에는 "희연 박사"가 있었다. 남편은 팔짱을 낀 채 포스터를 바라보며 희연 박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편이 한 발 움직이면 희연 박사도 따라 움직였고, 둘은 함께 웃었다. 그 광경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찰나였다. 희연 박사가 웃으며 상체를 기울이자, 남편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어 번 쳤다.
희연 박사가 움직이다 살짝 균형을 잃자, 남편은 반사적으로 그녀의 팔꿈치를 붙잡았다.

너무 익숙한 광경이었다. 남편이 자신을 사랑할 때 무심코 했던 배려와 동작이었다.

남편은 아무에게나 쉽게 스킨십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냉정하고 절제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다른 여자의 공간을 자연스럽게 넘고 있었다.


수연은 멍해졌다.
지방에서 올라온 석사생 두 명과 함께 구두 발표장을 찾았다가, 제자들을 포스터 발표장으로 보낸 뒤 로비 한쪽 의자에 앉았다.

몸 안으로 얼음물이 흐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남편은 학회가 끝나자 제자들과 간다며 떠났고, 수연은 제자들을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려준 뒤 서울 집에 들어왔다.

가슴이 휑했다. 남편은 술에 취해 밤늦게 돌아왔다.


“웬일로 술을 마셨어?”


“석박사생들이랑 한잔했지. 당신도 알잖아, 우리 희연 박사. 오늘 우수논문상 받았잖아. 석사생도 우수 포스터상 탔고. 그냥 올 수 있나? 축하해야지. 근데 당신 제자들은 어쩜 그렇게 촌스러운지. ‘나 지방대 학생이에요’ 하고 다니는 것 같아. 당신도 그렇고. 나랑 함께 오는 학회인데, 좀 차려 입지. 그게 뭐야?”


남편은 소파에 앉아 와이셔츠 단추를 풀며 비아냥거렸다.
수연은 아침에 본 광경이 떠올라 차갑게 말했다.


“당신, 술이 과했네. 제자들이 상 받은 날, 아내에게 와서 왜 못난 말을 해?”
“말귀 좀 알아들어. 자기관리 좀 해. 학회에 올 때 옷 하나 잘 챙겨 입는 게 그렇게 어려워? 지방대 교수라고 대문짝만 하게 써 붙이고 다녀야 직성이 풀려?”
“당신… 잘난 거 알겠는데, 그만해. 왜 이렇게 사람을 함부로 대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남편은 벌떡 일어나 양말을 벗어던지며 소리쳤다.

keyword
이전 17화차가운 우월감